코로나19가 바꾼 농農
[편집자 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전 세계의 농업, 농촌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92년부터 꾸준히 해외농업연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협력과 연대를 해왔던 유럽과 중화권의 코로나19 이후 현지 소식을 전해주는 특별기고 2편을 소개한다.
중화권은 지금,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
우리나라와 중화권은 동아시아권에 속해있다는 공통점 외에, 이번에 또 다른 교집합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화권이 방역 시스템 모범 지역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우리나라 그리고 중화권의 각 지역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 광저우와 광둥성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페이스북과 위챗 등으로 전해 들은 중화권 상황과 소식을 나누고자 한다.
코로나19를 슬기롭게 넘기고 있는 대만
2천만 명이 넘는 대만의 인구 대부분이 산악 지역을 제외한 좁은 국토에 밀집해 살고 있다. 그런데도 누적 확진자는 458명, 사망자는 7명이다.(7월 27일 기준) 대만이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 역할에 비견할 수 있는 ‘아쭝부장’(천스중陳時中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대만 시민들의 애칭)을 비롯해서, 정부의 고위 관료들 중에 방역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 시민들도 사태의 초기부터 정부의 방침에 적극 협력하여 코로나19 전염을 방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대만은 한숨을 돌린 후 적극적으로 다른 국가에 대한 방역 물품 지원도 하고 있다.
2019년 대산농촌재단 해외농업연수팀이 만났던 단체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고 있을까. 대만의 학교급식·반GMO운동을 이끄는 대향식육협회大享食育協會는 학교가 문을 닫아 급식이 중단된 상황에서, 협력과 연대 관계인 한국과 일본이 무슨 고민 속에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세심히 모니터링했다. 이를테면 학교 무상급식 예산으로 각 가정에 농산물 등을 배송해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하는 방법을 주목했다. 그리고 ‘대만농산국가대臺灣農産國家隊’ 라는 캠페인을 펼쳐 유명 요리사나 사회 저명인사와 함께 판로가 막힌 대만 농산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하고, 개학 직후 학교급식 재료로 제공했다.
대만은 팬데믹 사태를 조기 수습한 덕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방역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래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만남이 특히 중요한 CSA 공동체와 지원단체들도 도시의 손님들을 더 빨리 맞았다. 이란宜蘭현 션꺼우深溝 마을의 곡동구락부穀東俱樂部도 이미 3월 말 타이베이에서 찾아온 대학생들과 함께 모내기를 진행했다. 타이중台中의 수합원樹合苑도 두부 만들기 워크숍을 재개했는데, 지금은 3년 후 열릴 세계 퍼머컬쳐 대회를 대만에서 유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의 기지, 농촌
중국인들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1월 말부터 매우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마을이 모두 봉쇄되고, 출입이 통제됐다. 그 와중에 많은 CSA 농장들이 한두 달 정도 코로나19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린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유명 농장은 이 기간에 매출이 무려 3배가 늘었다고 한다. 광저우의 인린銀林생태농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최고조일 때, 한동안 먹거리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던 우한 시민들에게 유기농 채소를 원조하며,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힘썼다.
중국 대륙은 코로나19 초기에 우한을 중심으로 피해가 컸지만, 강력한 후속 조치로 다른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를테면,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광둥성만 해도 7월 27일 기준 전체 확진자 수는 1600명대이고, 사망자도 10명을 넘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농촌지역의 피해가 적다는 점이다. 수억 명에 달하는 농민공을 포함한 노동자들, 학생들이 설을 맞아서 대도시에서 귀향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중국 농촌의 의료 인프라는 향진(鄕鎮, 읍면 소재지에 해당)을 포함하여,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은 자급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완전한 봉쇄 속에서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중국의 삼농(농민, 농촌, 농업) 전문가인 원톄쥔溫鐵軍 선생은 농촌이야말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세계화)이 초래하는 전지구적 위기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흡수할 수 있는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지역화)의 기지라고 역설한다. “팬데믹 이후 변화하는 세계는 더욱 삼농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투기 수요에 의해 초래된 식량위기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정부에 비해서 (도)시민들의 자발적 위기대응 능력은 낮은 중국이지만, 아직 도시화율이 60% 수준인데다가 정부가 향촌을 충분히 중시하므로, 장차 중국을 미지의 재난에서 다시 구원하는 것은 원 선생의 말대로 수억 명의 농민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시민의 균형 잡힌 기여를 통해 이번 위기를 잘 넘겼지만, 식량과 에너지 주권을 갖추지 못한 데다가, 도시화율이 지나치게 높은 구조적 리스크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국보다 한 달 정도 앞서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이미 4월 말에 개학도 했고, 파머스마켓도 재개됐다. 그래서 페이티엔培田 마을의 자농유학은 이미 여름방학 캠프의 청소년 참가자 모집에 여념이 없다. 베이징의 농수산시장 집단감염 소식으로 긴장이 살짝 고조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위기 극복을 꿈꾸며
끝으로 홍콩 소식이다. 카두리 농장은 일찌감치 개장했다. 하루 입장객 수는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홍콩과 대만은 사스SARS 경험을 토대로, 우한의 소식이 미디어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던 12월부터 이미 방역 대책 수립에 나섰다. 중화권의 이웃들 사이에는 작년 홍콩의 시위 이후 코로나 사태를 둘러싼 책임 논란과 상호 비방, 그리고 최근의 홍콩 보안법 때문에 매우 불편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홍콩과 대만이 일찌감치 방역 대책에 나선 것은 중국의 공식적 발표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또 대만농산국가대 캠페인은 사실 대만 농산물의 중국 수출길이 막힌 탓에 시작됐다. 그래서 중국 농촌과 도시에서 ‘공동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생활방식을 전파하며, 중화권과 아시아의 농민, 활동가 연대에 힘쓰는 홍콩의 PCD(Partnership for Community Development) 성원들은 중화권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할 뿐 아니라 역으로 기회로 삼아, 삼농의 가치를 수호하고, 한편으로는 지속 가능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필자 김유익: 화&동 청춘초당和&同 靑春草堂 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 방식을 가진 이들을 연결해주는 중매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인생의 모토는 “시시한 일을 즐겁게 오래 하며 살자”이다.
☞ 이어서 ‘유럽은 지금, 지속 가능한 농업을 꿈꾼다(박동수)’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