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꾼 농農
[편집자 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전 세계의 농업, 농촌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92년부터 꾸준히 해외농업연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협력과 연대를 해왔던 유럽과 중화권의 코로나19 이후 현지 소식을 전해주는 특별기고 2편을 소개한다.
유럽은 지금,
지속 가능한 농업을 꿈꾼다
독일 생활을 시작한지 40년이 되었다. 해마다 연수에서 전문 통역을 담당했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요즈음 생각지 않게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살면서 보고 느낀 생생한 기록을 통해 유럽인들이 코로나19 이후 겪는 먹거리와 농업에 대한 이해와 전망을 하고자 한다.
유럽의 사재기 현상, 왜?
지난 2월, 유럽인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 여행자와 접촉한 이탈리아인 감염, 중국 출장을 다녀온 독일 거주 중국인 감염 등으로 유럽에도 바이러스가 무섭게 확산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검역을 강화하고 수출입을 제한하자, 식량 생산과 유통망의 단절을 걱정한 일부 국민들이 ‘사재기’를 시작했다. 독일은 두 번의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에, 대부분의 국민이 필요한 물품을 미리미리 사두는 소비 행태를 가지고 있다. 햄스터가 먹이를 모아두는 것 같다고 해서 ‘햄스터식 사재기’(Hamsterkauf)라고 부른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밀가루, 곡식, 설탕, 국수 등의 먹거리와 휴지, 손 소독제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식료품, 생필품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나는 평소 집에 필요한 물건을 넉넉하게 사두는 편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사재기하는 군중을 보고, 실제로 마트의 선반이 텅 비어있는 모습을 확인하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런 불안 심리가 사재기 열풍으로 이어진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뒤셀도르프에 사는 딸,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해 마트에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미리 사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딸과 아들은 “사재기를 하면 정작 물건이 필요한 사람은 못 구하게 되니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한다”며 오히려 우리 부부를 자제시켰다.
사재기 현상은 약 2주 만에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총리, 장관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대국민 발표를 통해 “먹거리와 생필품 유통에 지장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덕분이다. 이제 마트에 부족한 물건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싱싱한 농산물, 꼭 필요한 식료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농사는 누가 짓는가?
지난 3월, 독일 농업부 장관 율리아 클뢰크너Julia Klöckner가 기자회견을 통해 먹거리와 생필품 공급 보장과 함께 약속한 것이 농업 인프라 확보였다. 유럽 국경이 봉쇄되면서 농번기 노동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자동화로 독일 농업은 노동집약적이지 않지만 아스파라거스,딸기 등과 같이 자동화가 어려운 작물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온 계절 노동자(일반적으로 동유럽 출신)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이러한 노동자들이 독일로 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독일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국내 인력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빠르게 내놨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직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농가에서 단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알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국 노동력이 기존의 외국인 노동자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수 작물을 다루는 계절 작업은 육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이른 아침에 오지에서 이뤄지는 농작업을 하려면 농장에서 거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임금 수준은 낮고, 노동 강도는 높은 편이니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농번기에 유입되던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온다고 해도 2주간 격리를 해야 했다. 전체 농업의 손실이 상당해지자, 결국 독일 정부는 농업 계절 근로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현장에 곧장 투입할 수 있게끔 조치하였다. 세부적으로 세법도 고쳐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단기 근로자들의 세금, 연금, 근로 기간을 예외적으로 적용했다.
축산업은 비교적 피해가 덜할 것으로 보인다. 축산 농가는 일반적으로 가족이 경영하고, 필요에 따라 훈련된 농업 노동자들을 단기적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 도축장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이게 되면 가축의 운송 경로가 길어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도축하지 못한 가축을 농가에서 직접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세계가 고민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
전문가들은 농업 노동력 부족으로 농산물 수확량 감소와 가격 상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 나라의 수출입 제한 조치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시장의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은 유리하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특히 그 나라의 사회적 약자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룩셈부르크 녹색당 소속 의원이자 유럽 의회에서 활동 중인 틸리 메츠Tilly Metz는 “위기는 또 다른 교훈을 만들어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농업 시스템은 수출 지향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런 시스템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지역 농업 구조를 강화하고 지역 축산업에 집중하며, 지속 가능한 농업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유럽연합 농업국장 야누스 보이치에호프스키Janusz Wojciechowski는 “이러한 사태는 유럽 농업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 이외의 국가에 수출하는 것도 큰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 유럽 시장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21~2027년 유럽 농업 예산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가 다 같이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민할 때이다.
한편 독일은 코로나19 초기에 이를 단순 독감으로 취급하다가 희생자가 늘어나자 즉시 ‘한국을 배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유럽은 한국과 같은 대책을 세우고, 처방하기는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개인 신상 보호 때문이다. 유럽은 절대로 개인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요구도 못하는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정보를 가지고 전염 경로를 밟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둘째, 정부에서 규제를 정해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개인의 자존심 같은 신상정보를 공개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규제도 아주 잘 지키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사상자가 생길 때, 전문가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한국처럼 하니까 안정이 된다”고 전했다. 정치인들은 “한국, 한국, 한국 같이!”를 강조했다. 이번 코로나19는 인류의 큰 재난으로 힘들고 슬픈 경험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독일에서의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고,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 교민들 사이에서 커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를 헤쳐나가는 일은 산 넘어 산이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기분이다.
※필자 박동수: 독일에 사는 한국인. 1980년 독일로 유학을 와서 함부르크Hamburg 공대 전자공학과 학사를 이수했다. 20여 년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2002년부터 개인 사업과 함께 통역, 독일 안내 업무를 겸하고 있다. 독일 제도, 교육, 신재생에너지, 농업 분야와 관련된 통역을 매년 100회 이상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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