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학교급식 중단…농가는 ‘막막’
지난 4월 초, 트랙터로 갈아엎은 하우스의 흙은 푸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서로 엉키며 짓이겨진 참나물 줄기가 잘게 부서진 토양 사이로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친환경 참나물 농사를 짓고 있는 남건우 씨는 수확 적기를 넘겨 웃자란 참나물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3월에서 4월로 개학이 거듭 미뤄지며 학교급식이 중단된 지 꼭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확하는 참나물 전량을 서울과 경기도의 학교급식 식재료로 공급해왔던 남 씨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비껴갈 순 없었다. 예년 같으면 일주일에 500상자, 2t의 참나물을 수확해 포장하느라 부모, 형과 함께 구슬땀을 흘릴 시기였건만 개학이 연기되며 발주물량이 뚝 끊겼다. 남 씨는 경기도의 ‘코로나19 피해농가 돕기’ 친환경농산물 꾸러미용으로 150상자, 인근 농가의 요청으로 40상자를 겨우 작업했을 뿐이라며 “이 외에는 이번 주 주문이 전혀 없다”고 막막해했다. 3월 한 달에만 출하하지 못해 생긴 피해액이 약 2000만 원에 달했다. 4kg 상자 1500~1600개에 달하는 물량이었다. 문제는 순차 등교와 온라인 수업이 병행되면서 현 상황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남 씨는 “답답하고 미칠 지경인데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농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다”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친환경 시금치를 재배하는 박대열 씨 상황도 남 씨와 마찬가지로 그리 희망적이진 못했다. 박 씨를 포함, 여섯 농가로 구성된 시금치 작목반은 서울과 전북 지역 학교급식에 매주 500상자, 2t의 시금치를 공급하기로 계약해 공급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시금치를 파종했다. 그러나 이곳 사정 또한 마찬가지로 ‘올 스톱’! 박 씨는 다음 주에 수확해야 할 시금치가 자라고 있는 하우스 문을 열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작목반이 공동사용하고 있는 저온저장고엔 각 농가에서 팔지 못해 보관 중인 시금치가 400여 상자에 달하는데 매주 비슷한 물량의 시금치가 쏟아지다 보니 손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생협을 통해 일부 물량을 빼내고 있지만 온전한 학교급식 공급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이에 파종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농가들의 셈법에 희뿌연 맨땅이 드러난 하우스도 더러 있었다. 박 씨는 “안정적일 것이라 여겼던 학교급식에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기에 충격이 더 크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학교급식이 시작되면 매입단가를 올려서라도 막대한 농가 피해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와 같은 지역에서 친환경 대파를 키우는 허윤행 씨는 일가족, 마을주민과 함께 총 2.5t의 대파를 수확해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예년 같으면 일주일에 700~800kg, 한 달간 꾸준히 수확해 공급할 물량이건만 코로나19로 인한 학교급식 중단이 장기화되자 장수친환경영농조합에서 수소문 끝에 싸게나마 넘길 수 있는 친환경유통업체를 알아봐 준 것이다. 허 씨는 “다음 작기도 준비해야 되는데 손 놓고 있을 순 없어 밭 정리에 나섰다”면서도 “언제쯤 어떻게 해결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니깐 더 답답한 상황”이라고 씁쓸해했다.
농가의 열악한 현실을 반영하듯 친환경 학교급식에 쓰이는 농산물을 유통하는 센터도 일감이 줄어 썰렁한 모습 그대로였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경기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 내 작업장. 하루 평균 약 80t의 물동량을 자랑했던 센터엔 친환경꾸러미 2000개 분량(8t)의 농산물만이 들어와 자리를 채우고 있다. 평소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경기도의 코로나19 피해농가 돕기 특별 할인판매에 사용될 농산물로 학교급식 납품이 중단된 농가로부터 배송해온 것이다. 홍안나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경기친농연) 정책실장은 “학교급식 중단 이후 4번째 꾸러미 작업이다. 최대한 많은 물량을 팔아보려 하지만 센터 여건상 2000개를 넘기기가 어렵다”며 “학교급식 물량에 비하면 극히 미비한 양이라 어려움에 처한 농가를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학교급식 계약농가 피해액만 60억 원
경기친농연에 따르면 3월부터 5월까지 도내 학교급식 계약농가의 피해 총액은 71억5000여만 원, 급식을 위해 생산했지만 학교로 가지 못한 채 밭에서 버려진 친환경농산물만 1640여t에 달한다. 피해농가 수만 300곳이 넘는다. 이 중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생협·마트로의 판매 금액은 10억 원에 그쳐 실제 학교급식 중단에 따른 농가 피해액은 60억 원에 달한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 고통 분담 차원에서 애써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고 심기를 반복하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렸지만 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위기에까지 이르자 농민들은 직접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15일 염천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의 친환경농민들이 아스팔트 위에 섰다. ‘3·4·5월 급식 중단 피해 71억’, ‘2015년 메르스, 2016년 식중독, 2020년 코로나19 대책 없이 급식 중단, 계약재배 안정화기금 마련하라’, ‘농민 돕자던 가정 꾸러미에 대기업 선물세트 웬 말이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선 농민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얼굴에 진 그림자는 더욱 짙었다. 농민들은 지난 4월 27일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에서 결정된 코로나19 학교급식 피해농가 지원을 위한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가정 지원사업’이 학교 측에 꾸러미 관련 결정권을 맡김으로 해서 식품대기업 가공품 위주의 꾸러미로 구성돼 버렸다고 성토했다. 계약재배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추진된 사업에서 친환경농산물이 쏙 빠져버린 어이없는 상황에 빚으로 버티고 버텨온 농민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농민들은 계약농가들의 책임 생산은 강제되나, 생산된 농산물에 대한 책임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현 학교급식 체계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가치 실천하는 농가 지켜내야
친환경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학교급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안전하고 건강한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지고 이를 취급하는 매장도 늘었지만 친환경농산물의 판로로서 학교급식은 절대적이었다. 그러했던 학교급식이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팬데믹’ 앞에 전면 중단됐다. 순차적으로 개학이 이뤄지며 학교급식이 조금씩 재개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등 불안정한 학교급식 여건에 그동안의 농가 피해를 상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6월 8일 현재 경기도 내 학교급식 가동률은 전년 대비 42%에 그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급식 납품 농가를 돕기 위해 친환경농산물 꾸러미를 만들어 택배 판매, 드라이브 스루 판매를 시도했지만 판매량은 학교급식에 출하되는 양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여전히 친환경농가로선 출구가 없는 벽을 보는 것 같다. “학교급식만큼은 안전할 줄 알았는데….” 수확할 때를 놓쳐 갈아엎은 밭을 보며 혼잣말을 읊조리는 농민들의 한숨이 깊은 이유다.
친환경농업은 1970년대 농약과 화학비료가 땅을 죽이고 생명을 죽인다는 농민들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됐다. 건강한 환경에서 안전한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농업, 이는 곧 사람과 자연 그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미래세대의 몫인 건강한 생태계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해 재배하는 친환경농산물을 우리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바로 건강한 생태계를 온전히 물려주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판로를 넓히는데 가장 유효한 정책은 공공영역에서 친환경농산물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학교급식은 바로 그 유효한 정책의 제일선이다. 판로가 없어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코로나19 확산의 어려움 속에서도 친환경농업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하는 학교급식 농가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필자 한승호: 한국농정신문 사진기자. 뷰파인더로 세상 보는 법을 배웠다. 실천하려 애쓰지만, 보고 찍고 쓰는 행위에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연차가 쌓일수록 무엇보다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허나, 잘하진 못한다. 사진으로 ‘농민 만인보’를 쓰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2014년부터 한국농정신문에 연재 중인 ‘이 땅의 농부’는 그 실천의 작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