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1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약 99만 년을 수렵, 채취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며 이곳저곳 이동하며 살았다. 그러다 약 1만 년(혹자는 7000~8000년이라 주장) 전 야생동물을 잡아 가두어 놓고 필요할 때 잡아먹는 ‘축산’이 시작됐고, 일정 지역에 머물며 살다 보니 야생 식물의 씨앗을 일정 장소에 파종하여 키워서 먹고살아가는 ‘농업’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농업문명이 태동하게 되었으며, 그 후 인류는 약 9700여 년 동안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소위 친환경생태농업을 통해 먹거리를 조달했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지구상의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맬서스는 18C 말에 인구론(1798)을 통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 인류는 심각한 식량난을 겪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00~400여 년 전인 17~18C 산업혁명을 통하여 인류의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되었고, 농업생산방식에도 혁명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이 발명되었고, 농작업의 기계화가 시작되었다. 고투입 고에너지 농업이 시작되고, 규모화와 단작화가 진행되면서 농업 생산성은 수십 수백 배 높아져 물량적으로는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결국 맬서스의 주장은 옳지 않게 되었는데, 이를 우리는 ‘녹색혁명’이라 부르게 되었고, 고투입 고에너지 기술 농업을 우리는 ‘관행농업’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지속된 관행 농축산업은 결국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며 먹거리의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1C 현재 친환경유기생태농업을 실행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 관리 정책을 보면 너무 아쉽다. 예컨대 그것은 정부가 웬일인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GAP(우수농산물관리) 제도이다. 이는 수확 후 관리를 위생적으로 처리한다는 것 외에는 GMO농산물, 화학비료나 화학농약을 사용해도 GAP마크를 얻을 수 있는 등 친환경농산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럼에도 정부는 친환경농산물과 똑같은 인증마크에 글자만 GAP이라고 써서 사용하게 하고 있다. 이에 친환경농산물 생산 농민들은 소비자들이 친환경농산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인증마크 디자인이라도 바꿔 달라는 간단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부는 소비자가 원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바꾸지 않고 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배후에는 화학농약·종자·GMO종자 등의 생산·유통·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다국적기업이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보다 근본적인 인증체계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잔류농약 검출 여부가 인증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일반 농산물 잔류농약 기준치 20분의 1만 검출되어도 인증이 취소된다. 그만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검출 기준은 엄격하다. 그렇다 보니 친환경농산물은 먹거리 안전성만 강조된 측면이 있다.
물론 안전성도 중요한 기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의 본질적 가치는 자연환경의 보호와 생태계 보전에 있다. 따라서 친환경농업의 인증은 얼마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생태계 보전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토양 속의 미생물 종류와 수, 그리고 농장 내의 메뚜기 등 곤충의 수를 매년 조사하면 된다. 더 정교한 기준과 평가 기준은 전문가들이 만들면 된다.
나름대로 소명을 가지고 힘들게 농사짓는 친환경농부들에게 격려는 해주지 못할지언정, 잔류농약검사라는 부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얼마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고 보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긍심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하루속히 인증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필자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양양로뎀농원 농부. 중앙대 산업과학대 학장,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쌀은 주권이다」(2016, 콩나물시루), 「농업문명의 전환」(2011, 교우사), 「농산물 시장 개방의 정치경제론」(2008, 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