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30일 정부는 2015년 1월 1일부터 누구든지 관세 513%만 내면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위 전면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하고 WTO에 통보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쌀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쌀 시장 개방 유예 시절(1995~2014)의 쌀 개방 조건을 보면 속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올해부터 513%의 관세만 물면 누구나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쌀 시장을 전면 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대가로 의무적으로 수입한 기존의무수입물량MMA 40만8천 톤은 저율 관세로 계속 수입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의무수입물량 40만8천 톤은 가공용이든 밥쌀용이든 우리 마음대로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30% 이상을 밥쌀용으로 수입해야만 했다. 즉, 우리로서는 가공용 수입쌀은 가공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국내 일반 쌀 시장가격에는 영 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가공용 쌀을 수입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었으나 그것도 우리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저율관세할당TRQ; Tariff-rate quota 40만8천 톤은 쌀 가격이 싼 나라에서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 중국,태국, 호주 등 쌀을 수출하는 나라별로 쿼터량을 설정해줬다.
이러한 나라별 쿼터량 설정과 밥쌀 수입 여부는 쌀 시장을 개방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513%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나라별 쿼터량 설정을 폐기함과 동시에 의무수입 쌀의 30%에 대해 밥쌀용으로 수입하게 했던 용도지정을 폐기하는 수정양허표를 WTO에 제출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과제는 우리가 제출한 관세율 513%를 다른 나라들이 검증하는 절차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의무수입물량 범위 안에서 느닷없이 밥쌀용 쌀 1만 톤을 수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밥쌀용 쌀에 대한 수요가 있고,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을 경우 WTO 위반(GATT 제3조4항 내국민 대우 원칙과 제17조1항 국영무역에서의 상업적 고려의 원칙)이라는 것,그리고 관세율 513%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정부의 이런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먼저 밥쌀용 쌀의 수요가 있다고 하나 현재도 밥쌀용 수입쌀이 6만 톤이나 재고가 남아 있는 상황이고 정작 수입한 밥쌀 수요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는 것은 WTO 위반이라는 주장도 지나친 수출국 입장의 해석이다.WTO 규정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 해석을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서 옳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WTO 규정 해석에서 특히 농산물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백기부터 들었고 상대 수출국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우를 계속 범해 왔다.
밥쌀용 쌀 수입과 관련해서도 의무수입물량 40만8천 톤은 가공용 쌀만 수입하더라도 GATT 제3조와 제17조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통상법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다만 의무수입물량을 초과하는 물량의 경우 정부가 가공용 쌀 수입만 허용한다면 그것은 GATT 제3조와 제17조에 위반이라는 것이다.
셋째, 관세율 513%를 관철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는 WTO 규정에도 없는 억지 주장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안일함과 무능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513% 관세율은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검증의 문제이며 정당한 근거와 논리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는 사안이다.
결국 국내 쌀 실질가격이 매년 하락하고 있고 생산기반이 점차 위축되고 있음에도 의무수입물량안에서 밥쌀용 쌀을 수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부의 안일함과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우리 쌀 농업을 지켜내고 보존해야 할 민족적 가치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필자 윤석원: 중앙대학교 교수. (사)푸드포체인지 이사장. 한국농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농업문명의 전환』(2011, 교우사),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론』(2008, 한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