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업인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교차하는 정체성
‘나’는 현재 농촌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는 청년이자 비혼여성이다. 내가 일상적으로 듣는 잔소리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사람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청년) 서울에서 공부 잘하다가 시골 내려오더니(지방) 이 힘든 농사를 혼자 짓고 있을까?(농민) 여자 혼자서는 농사 못 지어.(여성) 얼른 남편이 들어와야 농사도 제대로 하고 애도 낳지! 남자친구는 있어~?(비혼)

  각각의 문장들은 변형되고 교차되고 연합하며 수많은 경우의 수로 내 고막에 꽂히고 일상을 힘들게 한다. 나는 ‘지방/청년/비혼/여성/농민’이라는 각 정체성에 결부된 차별과 억압구조 안에 놓여 있다. ‘지방청년차별’, ‘비혼여성농민차별’처럼 여러 차별을 동시에 한 번에 겪는 이중차별, 삼중차별, 기존의 차별 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니는 ‘지방청년비혼여성농민차별(?)’의 당사자다. 아무리 내 또래의 청년 여성이라도 도시에 산다면 이런 류의 말을 생방송 육성으로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농촌에 사는 여성이라도 남편과 자녀가 있다면 문장이 좀 짧아질 것이다.
  일상뿐만 아니라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업정책은 발전이 미미하고, 그중에도 청년농업인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며, 최근 몇 년간 급히 마련된 청년농업인 정책들 역시 여성청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으므로 불완전하다. 성차별의 층위에서도 등급이 나뉘어 있다. 대부분 여성정책은 도시/기혼/유자녀 여성을 위한 것이다. 지역에서 비혼으로 농업을 영위하는 여성들은 농업정책에서도, 청년정책에서도, 여성정책에서도 외면받는 공백 지점에 놓여 있으며, 심각한 차별에 시달리는 동시에 비가시화되고 있다.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존재할 수 없기에 각각의 구조를 나눠서 분석하거나, 순위를 매기거나, 단순히 나열하는 것처럼 환원적으로 분석할 수 없고 특히나 약자/소수자성을 띠는 정체성을 갖는 사람일수록 교차성은 중요해진다. 소수자 정체성은 엮여있는 그 자체로도 가중되고, 서로 교차하면서 증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체성의 ‘상호교차성’을 고려하는 과정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특정 범주 내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포착하기도 한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성별, 젠더, 계급, 인종 등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규 정된다. 마치 사거리 교차로에서 많은 차들이 오고가며 복잡하게 서로 영향받는 모습처럼 말이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성별, 젠더, 계급, 인종 등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규정된다. 마치 사거리 교차로에서 많은 차들이 오고가며 복잡하게 서로 영향받는 모습처럼 말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러한 상호교차성 패러다임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농업정책 분야가 아닐까 싶다. 농업만큼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각자가 고유한 영역이 없는 것 같다. 유동적이면서도 고정적이고, 각 사업체마다 모든 조건들이 다르며, 1/2/3차 산업이 융복합되어있기도 하다. 한편 농촌의 문화지체 정도도 심각하기 때문에 사생활, 정체성, 인권, 차별에 대한 감수성 같이 민주시민적 소양이 등한시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첨예하고 다발적인 정체성의 교차 현상, 그에 따른 차별과 억압 기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제된 라이프스타일과 개인주의를 철저히 유지하는 대도시가 아니라 농촌이다. 농촌에서는 정체성에 관련한 차별과 혐오, 억압 기제가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외국인이, 여성이, 청년이 가장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곳, 혹은 그렇게 보이는 곳은 언제나 농촌이다. 도시가 그런 차별을 잘 은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농촌을 살아내는 당사자로서 차별을 은폐하는 위선이라도 필요한 곳이 농촌이라 반박하고 싶다.

박탈감을 키우는 청년농업인 정책
청년농업인의 단계로 들어가면 더 복잡해진다. 창농, 승계농, 반농 등 외적인 형식이 다양하기도 하고 경력이나 성별, 지역, 가족 구성, 규모 따위의 내부 조건도 천양지차지만 또 어느 면에서는 중첩되기 때문에 나이로 뚝 잘라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청년농업인’라고 못박아 지칭하고 똑같이 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청년농 각자에게 필요한 점들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다르다. 이런 다양한 조건의 정책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채, 획일적인 지원사업과 ‘억대 매출 성공신화’ 시나리오를 통한 전시효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경우가 있다. 정부에서 농사로 ‘억대 매출’ 낼 수 있다고 선전하며 돈도 빌려주고 생활비도 지원해준다길래 농사를 지어보려 했는데 초기비용이 ‘십억 대’다. 무리하게 일하다가 몸이 망가지고, 부조리한 관행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판로도 개척하지 못해 빚만 잔뜩 얻고, 결국 농사를 접고 다시 도시노동자 신분으로 돌아간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일부 언론에서는 ‘싹수 노란, 무책임한 청년농업인들’이라고 표현한다. 청년농업인들은 ‘국가정책에서 소외된 농촌사회’에서도 소외되는 동시에, 자극적인 언론플레이 이미지로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에 지쳐 있으며, 농정실패 책임 전가에 항의할 목소리도 없다. 심지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도 서로 비난하고 경쟁하느라 소진되고 있다.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청년농업인들 커뮤니티 안에서는 미묘한 신경전과 대치상황이 벌어졌다. 경력이 오래된 승계농들의 경우 “나도 올해부터 농사 시작할걸”이라며 박탈감을 느끼고, 신규창업농들은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대농들이 돈을 받았다며 수군거렸지만, 청년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면 또다시 여론이 나빠질 것을 걱정하며 큰소리 내지 못했다.

농촌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다층적인 차별구조, 그에 따른 요구사항들을 들여다보지는 않고, 그저 ‘돈 더 주면 농사를 짓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발상을 하고 있다.
농촌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다층적인 차별구조, 그에 따른 요구사항들을 들여다보지는 않고, 그저 ‘돈 더 주면 농사를 짓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발상을 하고 있다.

  농촌의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다층적인 차별구조, 그에 따른 요구사항들을 들여다보지는 않고, 그저 ‘돈 더 주면 농사를 짓지 않을까’라는 황당한 발상을 하고 있다. 다양한 청년들이 농촌에서 다양한 농업을 영위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장과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있는 청년에게만 투자하고, 혹은 투자로써 생산성 있는 청년사업가로 개조한 다음 투자한 만큼 회수해서 또 선전하겠다는 방식이다. 이 결과 청년농업인들은 실망하고 지쳐 나가떨어지고, 회수는커녕 엄청난 세금 낭비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농업인 양성’ 같은 애매한 구호와 흐지부지한 체계가 아닌 구체적인 청년농업인 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이 생긴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청년농업인들 각자의 현실을 면밀하게 탐구해야 할 것이다. 교차성과 차별구조들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현장에 밀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접근성 좋게 열린 채널이라도 만들어 청년농업인들 각자의 생활상을 수집한 정보, 실질적인 피드백을 기반 삼아 세부적인 제도들과 유연한 적용방법을 고안해내야 할 것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업경영체 통계자료에 따르면 40세 미만 청년농업인 인구는 3만9000여 명이다. 전체 농업인 중 단 2.4%, 한국 인구의 0.07%다. 극소수지만 인구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점들도 있다. 5000만 명을 섬세하게 다루기는 어렵지만 4만 명이라면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청년농업인들이 스스로 만든 ‘새 못자리’
어떤 면에서는 청년농업인 개인들이 시스템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고 적응하고 있고 이미 정책에서 따라야 할 점을 몸소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농업인들은 기성농업인보다 정책이나 지원에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무턱대고 돈을 받거나 사업을 마구잡이로 벌이지 않는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갖고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에 부합하는 옷을 입길 원한다. 자력구제를 위한 노력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스템의 방향성, 가이드라인을 청년농업인들이 미리 그려놓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사는 청년농업인들이나 농업지망청년들은 결코 돈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지상주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고, 더 나은 지역을 만들고 싶어 한다. 수십, 수백 명의 청년농업인을 만나봤지만 나 혼자만 부유해지려고 농사짓는다는 청년농업인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모두들 각자의 차별 경험과 고충이 있는 것처럼, 나름대로 소망과 자부심이 있고, 돈이 아닌 다른 메리트를 보고 농업을 끌어안는다. 가족의 건강,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만드는 공동체, 자연 속에서 보내는 일상, 건강한 먹거리와 환경 보전, 사회 운동의 거점마련 등.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귀농해서 억대 매출 벼락부자로 성공한 이야기였다면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생물들을 돌보고, 자연과 계절을 느끼고, 내가 키운 것을 갈무리해 친구들과 나들이 가서 나눠 먹고, 내 공간을 꾸려나갈 수 있는 소박한 ‘작은 숲’이 고프다.

영화  스틸컷. ⓒ영화사 수박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사 수박

  대부분의 우울한 도시청년들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소비 활동에 한정되어 있다. 소비하기 위해 경쟁하고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생활의 반복이 청년들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처럼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배고프고 허기지다. 좀 더 민감한 청년들은 이런 굴레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 자연환경까지 소진하여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목격하며 지금과 다른 방향의 삶을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청년의 본성을 되찾고 싶어 한다. 그런 청년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도시를 떠나는 나’이며 농촌과 농업이다. 꽤 많은 청년들이 기회가 된다면 내 것이, 내 삶이 없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다만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이 감내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과 차별장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 농업을 실천하는 청년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농업, 농촌이라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무릎 꿇지 않고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몸소 구조를 개선해보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이다. 능동적으로 이 길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청년농업인들이 현 농정에 냉소적인 이유다. 애초에 시스템에 저항해 삐져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정부나 지자체가 내세우는 경제논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은 규모화나 이윤 창출처럼 자본주의의 언어로 도시와 대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소외된 지역의 소수자집단을 섬세하게 살펴보고 각자가 자리에서 최소한의 보장을 받으며 살아남도록 도와줘야 한다. 씨를 한 주먹 뭉텅이로 논에 박아넣는 것이 아니라 모판 골고루 촘촘하게 한 알 한 알 뿌리내릴 자리를 확보해줘야 모가 잘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농촌구조를 추구해야 한다.
  ‘40세 미만’이라는 하나의 세대 정체성을 기준으로 ‘청년농업인’ 하나의 틀 속에 3만9000명을 아우르는 농정작업이 유의미하려면 그 틀은 일률화가 아닌 구체화/세밀화 작업의 도구로 삼아야 하며, 그 도구를 사용하여 달성해야 할 목적은 그 위에 무수히 뒤엉켜있는 청년농업인들 각자의 교차성을 현실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차성을 뒤집으면 다양성이 드러난다. 뒤엉킨 차별구조들을 타파하고 자금 뿐 아니라 인프라 확충, 법과 제도, 교육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양하게 동원해 농업·농촌의 맹점들을 보완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농업인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중첩되어 있던 전체 농업인의 차별구조를 한 꺼풀씩 걷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농촌의 재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들을 지속하면 언젠가 농촌은 대안적인 삶을 꾸리기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시가 농촌의 모든 인구와 자원을 독식하며 짊어져 온 차별비용의 무게도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천국까지는 아니어도 ‘헬조선’이라는 불명예는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2※필자 김후주: 주원농원 대표. 서양철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 진로를 고민하다가 갑자기 3대째 가업인 유기농 배 과수원을 물려받기 위해 고향인 충남 아산시로 돌아왔다. 인생의 절반은 도시, 절반은 시골에서 보낸 ‘혼종’으로서 두 세계의 장단점을 경험하며 괴리를 체감하고 그 틈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