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이 녹고 새잎이 돋는다. 초록이 무성해지기 전에, 농사일이 더 바빠지기 전에, 마을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느라 복작복작하다. 며칠 전 이웃 마을 청소에 참여했다. 60대 이장님 부부가 그 마을에서 가장 막내다. 부락마다 차 있는 집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오니 40여 명이 금세 모였다. 코로나 때문에 각자 집에만 계시다가 오랜만에 이웃을 만나니 엄청 반가우셨나 보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룹이 나눠졌다. 힘을 쓸 수 있는 60대 장년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70대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마을 곳곳 화단으로 들어가서 풀을 맨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오래 걷기 어려우신 80대 이상 어르신들은 마을회관 앞 잔디밭 담당이다. 새로 등장한 얼굴에 뭉근한 관심이 쏟아졌다. 이웃 마을에서 온 청년이라니 고운 손으로 풀은 뽑지 말고 사진이나 찍으라고 말리면서 정작 당신은 보행기에 앉아서도 호미를 놓지 않으신다. 발이 가벼운 어르신이 시시때때로 다른 분들 쓰시는 도구와 참을 챙기셨다. 일하는 건 힘들어도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함께 일하면 금세 마을이 훤해져 좋다고도 말씀하셨다. 노인회장님은 몇 해 전 함께 심은 벚나무 길을 한참 자랑하셨다. 이장님은 넌지시 10년 후 걱정을 털어놓으신다. 10년 후에는 누가 남아 마을 일을 할까. 구석구석 애정을 담아 가꾼 마을 풍경이 젊은이가 비교적 많은 우리 마을보다 정갈하고 곱다. 물 한 잔 마실 때도 살갑게 서로 챙기고 돌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한평생 그리 살아오셨을 삶이 그려져 괜스레 뭉클했다.
농촌에 살다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한정적인 관계 안에서도 계속 새롭게 다른 존재와 장소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해야 할, 또는 하면 좋을 일거리를 무궁무진하게 발견한다. 나의 일, 이웃의 일, 마을의 일이 구분되지 않고 주고받는 것들을 하나하나 셈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해되는 일들이 많으니 오히려 나의 욕구와 지역의 필요에 느긋하고 흔쾌해진다. 결국에는 받는 것이 더 많아 감사함이 크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먹고 사는지 서울에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시원하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농촌을 기웃거리는 도시의 청년들과 먼저 농촌으로 이주한 선배로서 어떻게 나의 경험과 마음을 담담하게 나눌 수 있을지, 자랑이 아닌 도움이 되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가 참 어려웠다.
농촌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진로를 찾는 청년들
‘청년 삶의 경로탐색 프로젝트 <별의별 이주◯◯>’ 참여는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기회였다. 서울시는 청년에게 지방에서 ‘자기 삶의 경로 탐색과 문제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별의별 이주◯◯>(이하 ‘이주◯◯’)을 운영했다. 다른 삶의 양식을 시도하고픈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서울 청년 누구나 2주 또는 4주 동안 농촌 지역의 농장/단체에서 다양한 일상과 구체적인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충남 홍성군의 협동조합젊은협업농장에서 <이주농부>, 충북 옥천군 주간옥천신문에서 <이주기자>, 전남 영광군 여민동락공동체에서 <이주돌봄>, 강원 춘천시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이주유학>,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이주발견>, 경북 상주시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이주다양>으로 서울 청년들을 맞이했다. 2018년 <이주농부>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 관여하기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마을연구소 일소공도에서 3년 동안 이주◯◯참가자 인터뷰, 연구, 아카이빙 작업을 함께하게 됐다. 참가자들이 남긴 말 조각, 글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왜 이곳에 계속 있는지가 선명해졌다.
3년 동안 서울 청년 93명이 지역에 다녀갔다. 연령대와 직업은 다양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그들의 공통된 물음이었다. 참여 동기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참가신청서에는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참가자들은 막연하게 그 새로움이 농촌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건강한 삶, 덜 경쟁적이고 덜 분주한 생활,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문화를 기대하고, 그곳에서 본인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사람’ – 만나고 이해하기
많은 참가자가 가장 인상 깊게 새긴 순간들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농촌 지역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아본 적 없는 청년들은 처음에 무척 어색해했지만, 결국 먼저 마음을 내어 주는 어르신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한 분, 한 분 인생의 서사에 관심을 갖고 유대감을 느끼며 경청하고 존중하게 됐다.
“마을 어르신들을 매일 찾아가서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80~90년이라는 세월의 이야기를 듣고, 또 지금의 삶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니!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삶의 진수가 느껴졌어요. 지금이 그냥 된 게 아니라 누군가 희생해서 지지기반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명 깊었어요.”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새로운 관계 맺기가 더 어려워진다. 일상에서 많은 사람을 스쳐 가지만, 의미 있는 관계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길에서 모르는 이가 말을 걸면 긴장부터 한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발견하면 바로 움츠러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농촌 마을은 면대면 사회이다.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 빈번한 인간관계 안에 ‘두터운 신뢰’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신뢰의 반경에서 청년들은 2주 동안 다른 세대, 다른 배경,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 맺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신뢰의 공동체 안에서 지내다 보면 ‘타인에 대한 반응 능력’이 극대화된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서로가 쉽게 ‘꼰대’가 되고, ‘개념 없는 요새 애들’이 되어버린다.
“오늘 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잘 만나지 못했던 50대 선생님들이 많으셨어요. 너무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르신들을 흑백 논리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께 배울 점이 많아 스스로 그런 편견을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소’ – 스미고 물들기
이주○○ 참가자들은 지역 현장에서 어디 학교 학생, 어느 회사 직원이 아니라 그저 ‘○○씨’가 된다. 특정 사회적 범주로 묶이지 않고 낯선 곳에서 자연인으로 존재하는 경험은 새롭다. 여행 온 듯하지만, 여행도 아니다. 말똥을 치우고, 어르신 댁에 방문해서 형광등을 갈아드리며 대화를 나누고, 반찬을 배달하고,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제보를 쫓아 취재를 나가고, 편집회의를 하고, 동네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어르신 목욕을 돕고, 점방 물건을 떼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팔고, 함께 농사일하고, 수업을 듣고, 동네잔치에 가는 등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던 일을 곁에서 같이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형식 교육에 익숙하다. 시장에 가면 손님이 되듯, 학교에 가면 학생이 되고, 활동에 참여하면 참가자가 된다. 이주○○에 참여한 청년들 역시 처음에는 2주 동안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정해진 프로그램 안내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지역에 내려가 이주살이를 시작하며 많은 이들이 적잖이 당황했다. 갑자기 ‘야생에 뛰어든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지역에서는 다만 낯선 청년들을 위해 일상의 ‘자리’ 한 켠을 내어줬을 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 이주 ○○의 고갱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기획한 배움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일상에서, 둘레의 사람들에게서, 함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움을 찾아야 했다.
현장 단체들은 길게는 30년에서 짧게는 10년여간 적지 않은 인내와 희생으로 지역사회 활동을 해왔다. 농업·농촌, 지역과 마을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해 시작했다. 이주○○ 참가자 역시 그 일을 함께했다. 농촌을 처음 만나고 ‘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직접 농촌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일은 대개 지역에 애착을 가지고 살피고, 돌보는 일이다. 2주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직접 일을 하는 사람으로 지역사회 안에 그의 온전한 자리가 생기고 어엿한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2주 동안 다른 관계와 상호작용을 만들어냈다.
“처음에 돌봄이라고 했을 때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정도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갔더니 무거운 걸 옮기거나 정리하거나 이런 일들이 많은 거예요. 처음엔 청년허브에서는 새로운 삶의 경로를 탐색해 볼 기회를 준다고 했는데, 약간 여기에서는 일손을 돕는 데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2주를 했거든요. 결론적으로는 얻은 게 되게 많아요. 왜냐면 공동체라는 게 말로 들었을 때는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 그런 작업들이 다 필요한 거잖아요. 대표님도 강의하실 때, 의미만 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뜻은 다 세울 수 있는데, 그걸 이뤄가는 건 정말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과정을 경험한 거죠. 모든 일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크게 배운 것 같아요.”
‘환대’ – 좋은 삶으로 나아가는 힘
이주○○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른 삶의 양식을 시도하고자 하는 서울 청년들에게 농촌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일정 시간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보는 경험과 다르다. 마을의 삶에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시적이지만 그 사람의 온전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를 환대라고 한다.
환대받은 청년들은 기꺼이 지역 활동에 책임과 존경심을 가지고 함께했다. 농촌 사회가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전망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 청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고민, 앞으로 삶의 궤적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또 지원하는 일이 농촌의 다음 세대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 우리의 일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서로의 질문과 고민을 공유하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대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배우는 동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농촌에서 살아가며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치열하고 간절하게 고민하고,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결정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이 있게 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내내 나는 내 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 누구든 이 ○○이라는 품에 들락날락하며 오갈 수 있도록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 지지기반이 되어준 사람들이 보이면서 이제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고 환대해 준 ○○ 사람들처럼 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환대를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2주간 스스로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였습니다. ○○에서의 삶을 체험해본 후 지금은 이렇게도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만 아니라, 나도 톱니바퀴가 아닌 시계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주○○은 2020년을 끝으로 종료됐다. 여러 정책 사업들이 그러하듯 지자체장이 바뀌고 단체의 수탁법인이 바뀌면서 프로젝트가 유야무야됐다. 이주○○을 계기로 이러한 의지와 역량을 갖춘 지역사회가 전국 농촌 곳곳에 더 많이 생겨서 더 많은 청년이 다양하게 지역을 탐색하고 새로운 삶의 전망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은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다른 삶의 장소를 경험하고 상상해본 적 없는 청년과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준비할 동료와 기회가 적은 농촌의 만남과 연결은 그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고 확산할 필요가 있다.
농업·농촌의 다음 세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주○○의 경험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주○○에 참여한 청년들과 또 청년들을 맞이해준 지역 분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주○○의 경험과 언어를 빌려서야 우정의 힘으로 쳇바퀴가 아니라 나선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의 지금, 여기를 더욱 애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당신들이 찾는 ‘새로움’을 어쩌면 농촌에서 발견할 수 있을 거란 말에 무게가 실렸다. 작지만 꾸준하게 나중에 올 사람들을 위한 밭을 일구는 일을 하고 싶다.
1)이 글의 일부는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청년 삶의 경로탐색 프로젝트 <별의별 이주○○> 확대 및 발전방안’, ‘새로운 삶의 방식과 진로를 궁리해보는 이주-<별의별 이주○○> 아카이빙북’의 내용을 발췌, 인용했다.
※필자 신소희: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협동조합 연구원. 농사지으러 내려간 충남 홍성군에서 어쩌다 연구를 업으로 하고 있다. ‘일만 하는 소, 공부만 하는 도깨비’가 되지 않기 위해 마을연구소에서 일하며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