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다래 먹는 청산에 살어리랏다”

강원 영월군에서 토종다래 농사를 짓는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강원 영월군에서 토종다래 농사를 짓는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

 강원 영월군, 짙푸른 여름의 끝자락에 찾은 샘말농원에 토종다래가 올망졸망 열려 있었다. 이날 다래밭에 놀러 온 초등학생들은 넝쿨에 달린 초록색 열매를 찾아다니며, 까치발을 딛고 손을 힘껏 뻗어 다래를 땄다. 단단한 것은 포장용 플라스틱 통에, 말랑한 것은 입속에 쏙쏙 집어넣으면서.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지는 다래의 새콤달콤한 맛이 좋았는지, 누군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와아, 여기가 천국이네!” 

샘말농원에 찾아온 영월초등학교 학생들.
샘말농원에 찾아온 영월초등학교 학생들.

잊을 수 없는 ‘다래의 맛’
곽미옥 씨는 아이들에게 정성껏 토종다래를 알렸다. 다래의 특징과 역사를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열매를 직접 따서 맛보게 하고, 다래즙으로 잼과 비누를 만들고, 시중에 파는 다래잼까지 아이들 손에 쥐여주었다. 지켜보던 인솔 교사가 슬쩍 와서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겠다”라고 걱정하자, 곽 씨는 “토종다래를 가장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고객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토종다래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종 식물이다.
토종다래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종 식물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산에서 따줬던 과일이다, 군대 있을 때 먹었는데 아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다, 이런 이유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곽 씨도 동네 할머니들이 산에서 따준 토종다래의 ‘환상적인 맛’을 잊지 못한다. 2001년, 도시에 살던 그가 남편을 따라 귀농할 때만 해도 시어머니를 도와 무, 배추와 같은 고랭지 작물을 길렀다. 그러던 중에 다래도 밭에서 농사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샘말’은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곽미옥 씨는 “좋은 물은 농산물도, 사람도 건강하게 해준다”며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샘말’은 샘물이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곽미옥 씨는 “좋은 물은 농산물도, 사람도 건강하게 해준다”며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곽 씨가 2000㎡ 땅에서 3년간 키워 수확한 다래는 20kg였지만, 이제는 5배가 넘는 땅에서 20여 종의 다래를 6t 넘게 수확한다. 다래 모종을 길러서 판매할 수 있는 자격도 취득했다. 그는 3년 된 다래나무의 잔뿌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뿌리가 실하고 좋지요? 이게 생명이에요.” 

캡션
3년 된 토종다래 나무 모종의 뿌리.

더불어 사는 농민들
 영월군은 2013년부터 신규과원 조성사업을 추진해 토종다래 재배 면적을 늘려나갔다. 곽미옥 씨는 2015년 영월토종다래연구회를 만들어 지역 농민들과 같이 다래 재배와 가공 기술을 연구하는 등 활발한 협력 활동을 벌였다.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현재 30여 명의 회원들이 7ha가 넘는 농지에서 토종다래를 키우고 있다.

영월토종다래연구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토종다래 단종대왕 진상 제례 행사. 곽미옥 씨 제공
영월토종다래연구회에서 매년 진행하는 토종다래 단종대왕 진상 제례 행사. 곽미옥 씨 제공

  “농촌에 와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연구회 회원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제가 회장 직함을 가지고는 있어도 회원들 한 명 한 명이 다 회장이에요.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다들 적극적으로 협조하고요. 저희가 매년 토종다래 단종대왕 진상 제례 행사를 지내는 것도 그 일 중 하나죠.”

토종다래는 9월 초에서 10월 초 무렵에 맛볼 수 있다.
곽미옥 씨는 강원도농업기술원, 산림청에서 보급한 20여 종의 다래를 농사짓고 있다.

  2019년, 곽 씨는 토종다래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 토종다래(참다래)반에 입학했다. 그는 원예학, 과수학, 토양학 등을 배우며 농사 실력을 키우는 한편, 새로이 인연을 맺은 농민들과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2021년 8월, 곽 씨와 마이스터대학 동문들이 주관하여 강원다래생산자연합회를 설립하고 지역의 농민들과 재배, 유통을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토종다래 농가들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 협조하는 관계라고 보면 돼요. 강원도에서 다래 농사를 짓는 면적이 40ha 정도 되는데 생산량은 아직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저도 15년을 농사지었지만, 아직도 다래나무에서 절반 정도밖에 안 열려요. 공급이 소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거죠.” 

곽미옥 씨는 토종다래 3000평, 엄나무 5000평, 눈개승마 1000평을 재배하고 있다.
곽미옥 씨는 토종다래 외에 눈개승마와 엄나무도 재배하고 있다.

농민은 좋은 연구자가 된다
 토종다래 농사를 막 시작했을 때, 샘말농원에는 귀한 다래를 직접 재배한다는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제가 블로그에 토종다래 모종을 심는다고 글을 올렸거든요. 그때 50여 명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다래를 사고 싶다는 거예요. 5년은 지나야 수확한다니까 그때 꼭 연락을 달래요. 제가 20kg밖에 수확을 못 했을 때도 아이들 보여주게 다섯 알만이라도 보내달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하.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온 거죠.”
  토종다래를 먹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소비자를 위해서, 상처가 나거나 무른 열매를 어찌하지 못하는 생산자를 위해서, 곽미옥 씨는 자연스럽게 가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크래커에 다래잼을 발라서 먹는 아이들.
크래커에 다래잼을 발라서 먹는 아이들.

  “잼을 만드는 게 가장 쉬울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다래를 한 솥 가득 끓였더니 색깔이 붉게 변하는 거예요. 열을 너무 많이 가하면 색이 변한다는 걸 몰랐던 거죠.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어요. 농업기술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지역에 있는 대학 교수에게 잼 만드는 법을 배우고, 또 그걸 연습하는 데만 몇 년 걸렸어요.”
  2018년 대산농촌재단에서 농업실용연구 지원을 받아 토종다래 가공품 시장을 조사하고, 시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다. 그는 다래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가공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중 하나인 젤리스틱을 11월에 출시한다. 그는 앞으로 서너 가지 종류의 제품을 더 만들어 ‘토종다래 종합선물세트’를 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미옥 씨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있는데, 남편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토종다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다래 이야기를 다시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다.
  “가정집에 연구소를 차리면 좋겠어요. 샘말농원에 오는 이들이 다래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게요. 재배부터 가공, 역사까지 전부요. 저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샘말지기 부부. 곽미옥 씨 남편 유석현 씨는 400여 년간 영월에 터를 잡고 살아온 강릉 유씨의 13대 종손이다.
샘말지기 부부. 곽미옥 씨 남편 유석현 씨는 400여 년간 영월에 터를 잡고 살아온 강릉 유씨의 13대 종손이다.

  토종다래 농사를 짓고, 사람들에게 다래의 가치를 알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곽 씨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그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