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란 무엇인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국립공원.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국립공원.

 “워싱턴의 대추장(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 우리는 이 땅이 사람에게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1854년, 북아메리카 인디언 수쿠아미쉬족 시애틀 추장

‘흙을 묻히지 않는’ 농지의 주인들
 우리는 부모가 집이나 땅을 사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부모 잘 만난 사람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출발선이 달라진다. 긴 인생의 마라톤 경주에서 이미 그들은 10km 혹은 20km를 앞서가는데 혹자는 그것을 ‘공정’이라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의 산물인 토지를 개인의 소유물로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을까? 왜 이러한 소유와 부의 대물림은 당연시되었을까.
  2021년 9월 13일, A의원의 사직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A의원 아버지의 부동산 투기 의혹 때문이다. 이번 사퇴는 농지 투기가 단순하지 않은 문제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같은 해 3월에 불거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광명, 시흥지구 투기 문제로 다수의 사람이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었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땅 투기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왜 문제가 되는지 두 사례를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2016년 3월, B씨는 세종시에 1만871㎡(약 3300평, 16마지기 반) 규모의 논을 매입했다. 당시 그는 농업경영계획서와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서를 농지 소재 면사무소 산업계에 제출했을 것이다. 이것이 농지 취득 절차의 전 과정이다. 두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농지를 살 수 없다. 농지 업무 담당자는 현장 실사를 해야 하지만 서류만 확인하고 도장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서류의 처리 기간이 4일이므로 다른 업무로도 바쁜 직원이 현장을 가보고 영농계획서를 꼼꼼히 살펴볼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B씨는 문제없이 농민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B씨는 농지 취득과 동시에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농지법에서는 사인간私人間의 임대차를 허용하지 않지만(일부 예외가 있음),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해 농지를 임대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런데 B씨가 무슨 마음을 먹어서인지, 2021년 1월에 전 임차인과 직접 임대차 계약을 했다. 이 부분은 농지법을 위반했다고 보아야 한다.

2004년 1월, C씨는 제주 서귀포시에 2023㎡(약 616평, 3마지기) 크기의 농지를 구입했다. 농업경영계획서 등 서류는 지인이 대신 작성했다는데, 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2009년, C씨는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 영농을 신청했지만, 장기간 방치된 밭의 상태 때문에 거부당했다. 공사에서는 C씨에게 농지 정비 후 6개월 뒤에 재신청하라고 통보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비도 재신청도 하지 않았다. C씨는 농지를 구입하여 농업경영을 하겠다고 신고를 했지만, 농지를 사들인 이후 한 번도 밭을 경작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우리 농지법은 1994년에 만들어 1996년에 시행되었다. 그 후 25년 동안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무너졌고 부재지주는 확대되었으며,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농민은 농사지어서는 농지를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말 그대로 농지법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농지는 투기의 주요한 대상이 된 것이다. 앞선 두 사례를 보면 이들이 농사를 너무 좋아해서 농지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는 게 합리적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농지법은 이러한 부재지주의 농지 구입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규정이 없다. 말 그대로 아무나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농지법 제정 이후 25년간 17차례의 농지법 개정의 역사는 끊임없이 농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이었고, 농민 중심이 아니라 도시 자본의 유입으로 농촌을 유지시키려는 알량한 정치인들의 ‘배려’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농지법 제정 이후 25년간 17차례의 농지법 개정의 역사는 끊임없이 농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이었다.
농지법 제정 이후 25년간 17차례의 농지법 개정의 역사는 끊임없이 농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이었다.

‘진짜 농민’을 울게 만드는,
농지법과 관련 제도의 6가지 문제점

첫째, 해당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이 농지를 구입하는 문제가 있다. 농지와 거리가 멀수록 농사를 짓겠다는 의지가 반비례하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농지법 이전에 존재했던 농지임대차관리법 시행령 안에서는 농지를 구입하기 6개월 전에 그 지역에 살지 않은 사람(가족 전원이 거주해야 가능)은 농지를 구입할 수 없었다. 1994년 이 시행령은 폐지되었다. 또한 1996년 이전에는 농지를 취득하고자 하는 이는 농지와 20km 이상 떨어진 자는 구입할 수 없었다. 이 또한 폐지되었다. B씨는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세종시에 땅을 구입할 수 있었고, C씨는 서울에 살면서 제주도에 농지를 구입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바야흐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농사짓는 세상이 된 것이다.
  둘째,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없다. B씨와 C씨는 한국농어촌공사에 농지를 임대하거나 임대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 부분은 농지 투기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농지법 개정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하루속히 농지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셋째, 농림축산식품부가 매년 시행하고 있는 농지이용실태조사는 실효성이 없다. 이 조사는 해마다 많은 재원이 투입되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농지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거나 불법으로 형질을 변경하는 등의 문제가 발각되면 처분통보-처분명령-이행강제금 부과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제주도청은 왜 17년 동안 C씨의 농지를 방치했을까. 국가 및 지방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불법을 방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농업경영계획서는 형식적인 서류일 뿐이다. B씨와 C씨는 분명 영농계획서를 관할 지자체에 제출했을 것이다. 농지의 주인은 땅에 대한 일반 현황과 재배할 작목, 영농 거리, 내가 가진 영농 장비 등을 작성하여 읍·면 사무소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이 서류에 적시된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공무원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6마지기, 3마지기 농사를 지으려면 그에 걸맞는 농기구와 농기계가 어느 정도 구비되어야 하지만,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하는 자들은 대부분 거짓으로 꾸민 서류를 제출하고, 공무원은 그것을 알면서도 통과시키고 있다.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는 영농계획서는 “대충 써내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다섯째, 농지취득자격증명 제도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 제도의 단어적 의미는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행정이 증명해 주는 제도이다. 이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농지 구입을 국가가 허가’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농지취득허가서’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이다. 단어만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니나, 농지를 소유함에 있어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농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제도는 형식적인 행정자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농지취득자격증명 제도는 조속한 시일 내에 바꿔야 한다. 적어도 ‘영농 경력 2년 이상인 자’를 대상으로 해야 B씨와 C씨와 같은 이들이 농지를 구입하는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두 사람은 “남들도 다 하는 농지 투기 좀 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다. 성실히 일해서 집을 마련한 것보다, 투기를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자랑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러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기도 한다. 농지는 그들의 복마전이고 놀이터다.
  여섯째, 가짜 농민이 진짜 농민의 행세를 하게 된다. B씨와 C씨는 자신의 농지를 향후 자식에게 물려 줄 것이다. 8년 자경을 했다면 양도소득세가 면제(감면)된다. B씨는 사인간 임대차를 함과 동시에 임차인과의 계약에서 직불금을 본인이 직접 수령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본인이 직불금을 8년간 수령하면 농사를 지은 것이 증명되니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타인에게 양도할 때 일정 부분 양도소득세를 감면받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진짜 농민’과 ‘가짜 농민’이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진 자들은 이것을 잘 알기에 부재지주가 진짜 농민 노릇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 비농민들이 물을 것이다. “왜 당당하게 직불금을 요구하지 못하냐”고. 갑을관계에서 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임차인은 늘 쫒겨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제기를 하면 “그래요, 그럼 내년부터 농사짓지 마세요”라는 말이 돌아올 수 있다. 이 말은 임대인에게는 그냥 성대를 타고 넘어오는 말이지만, 임차인에게는 생명줄이 걸린 칼날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농지를 살 수 없는, 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농지를 살 수 없는, 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농민의 자격을 묻는다
두 사례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헨리 조지라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는 “우리는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We must make land common property)”고 말했다. 농지를 공유화하자는 이야기는 오래된 구문 같지만 현 시기 우리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시애틀 추장이 “어머니의 대지를 어떻게 돈을 주고 사고팔 수 있는 것이냐”고 질문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농지를 사고팔 수 없는 나라도 많고, 농지를 사고팔더라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허술한 농지 관리 체계는 국민의 욕망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농지 강의를 다니며 농지취득자격증명 신청서라는 서류를 본 농민이 있는지 물으면 90% 이상이 무엇을 하는 서류냐고 되묻는다. 이처럼 농사를 지어서는 농지를 살 수 없는, 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농지 문제를 정상화하는 길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 대가로 생활하며 여유가 생기면 농지도 살 수 있는 그런 방향이 아닐까. 아니면 국가가 농지를 공유화하고 농민이 무상으로 임대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농지법 제6조에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B씨와 C씨는 이 문구를 한 번이라도 보았을까? 그 땅을 물려받을 두 사람의 자식들은 이 말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공정’이라는 말의 뜻을 다시 새겨본다.

조병옥※ 필자 조병옥: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지분과위원장.
경남 함안군 산인면 숲안마을에서 이장을 맡으며 벼와 매실을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농민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