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젊은 층이 도시로 빠져나가 노인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초고령 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의 위기감이 커진 결과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지방소멸지수를 우리나라 지자체에 적용한 보고서가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되면서 지방소멸 논의는 폭증하였다. 고령층 대비 젊은 여성 비율로 산출한 지방소멸위험지수에 근거할 때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지목된 탓이다.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자체는 사실상 모두 농촌 지역에 해당되니, 지방소멸은 곧 농촌 소멸로 이해할 만하다.
지방소멸론이 사회적인 경종을 울리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지방소멸지수 집계 결과가 발표될 때면 어느 지자체가 30년 내 사라진다는 식의 기사가 지역 언론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영향인지 정부는 2020년 말에 ‘인구감소지역’을 지정·고시하고 지원하는 내용으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을 개정한 바 있다. 소멸위험지역 지원과 관련한 의원 입법을 추진 중인 국회의원들도 여럿 있다.
지방소멸 현상보다 더 눈여겨볼 농촌의 변화
지방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까지는 좋으나, 지방소멸 논의가 과열되거나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경계하고자 한다. 압축도시 개발 주장이 한 예다. 지자체 인구가 줄어들고 소멸 위기에 처하는 데 대응하여 거점지역에 도시 기능을 집중시키는 것이 압축도시론의 요체다. 고도 성장기를 이미 벗어난 지금, 신규 도시개발이 외곽에 분산되는 것을 억제한다는 취지에서는 타당한 접근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배후 농촌에까지 무분별하게 확대 적용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규 개발보다는 기존 마을의 서비스 확충과 정주기반 정비가 급선무인 농촌에 대한 재정 투자 축소 논리로 비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소멸론의 발원지인 일본에서도 이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고하는 얘기들이 나온 바 있다.
지방소멸 주장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 트렌드와 농촌이 마주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방소멸론의 거품을 걷어내고 최근 우리 사회의 인구 문제를 이해할 몇 가지 단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저출산 고령화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인구 위기의 진원지는 농촌이 아닌 도시에 있다. 그것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대도시 지역 말이다. 지방의 젊은 인구를 계속 흡수하고 있는 서울 대도시권에서는 인구 집중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취업난까지 더해져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다. 자연히 출산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임여성 수와 합계출산율을 나타낸 <그림>에서 확인된다. 젊은 여성 수가 많은 수도권 주요 도시들이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반면, 전통적 농촌에 속하는 지역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들 농촌 지역은 공통적으로 지방소멸지수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지역들이다. 농촌 지역들이 겪는 고령화 심화, 인구 공동화는 우리나라 인구 문제의 결과일 뿐, 원인일 수는 없다.
둘째, 젊은 연령층과 달리 중장년층에서는 인구이동 흐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표>는 광역시에 속하지 않으며 비수도권에 위치한 군 지역을 대상으로 2000년과 2020년의 인구 순유입 지자체를 집계한 결과를 보여준다. 전출인구보다 전입인구 규모가 큰 인구 순유입 지역이 2000년 4개 군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 15개 군으로 늘어났다. 대략 45세에서 64세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한정할 경우 거의 모든 군(93%)에서 인구 순유입이 이루어진 것으로 집계된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이도향촌離都向村 인구이동으로 상황이 변화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베이비부머 세대는 산업화 시대 이촌향도離村向都 인구 흐름의 중심에 서 있던 인구 집단이다. 이들이 지금 농촌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농촌으로 삶의 무대를 옮기려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은퇴하였거나 가까운 장래에 은퇴 시기를 맞이할 이들 상당수에게 미래 삶의 해답이 대도시가 아닌 농촌에 있음은 분명하다.
셋째, 국민들의 일상적인 활동 공간 변화 양상도 살펴보아야 한다. 교통·통신 발달, 여가시간 증대 등의 영향으로 다지역 거주형 생활양식이 확산되고 있다. 거주지 이전을 전제로 하는 인구이동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5도2촌형, 4도3촌형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도시민들 중에는 각자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삶의 버킷리스트를 농촌에서 실행해보려는 경우도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2019년 8월 실시한 전국 도시민 설문조사(2291명 응답) 결과에 의하면, 5년 내에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의향을 지니고서 구체적으로 준비 중인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31%로 나타났고, 이들 가운데 45%는 농촌에서 자신의 희망을 실행하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국 도시민들 중 14%가 농촌을 무대로 활동을 하고자 구체적인 준비를 하는 셈이다.
농촌이 지닌 잠재력과 가치를 재인식하기
이상에서 살펴본 바를 종합해본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성 위기의 근원 중에 수도권 대도시 일극 집중 문제가 한 몫을 차지한다. 반대로 농촌은 국가적인 인구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단서를 지니고 있다. 대도시 지역과 농촌의 출산율 차이, 인구이동 양상 변화, 도시민의 농촌 활동 수요 등 여러 측면에서 장래 농촌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이 확인된다. 깨끗한 자연환경, 일과 여가의 균형 달성, 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삶의 질 확보 등이 국민들이 장래 농촌에서 기대하는 가치일 것이다. 이미 은퇴연령층 상당수가 그런 가치를 찾아 농촌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으며, 많은 수는 아니지만 청년층의 농촌 활동 이야기도 조금씩 접하게 된다.
하지만 잠재력은 어디까지나 잠재력일 뿐 이를 온전히 실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농촌에 대해 국민들이 보이는 관심과 수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도록 하려면, 전통, 환경, 경관, 문화 등 농촌이 지닌 고유한 자원들이 지닌 가치를 재인식하고 되살리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의 근본적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럽 국가들의 그림 같은 농촌을 부러워만 했지 우리 농촌의 가치를 높이고 보전하는 일을 등한시했다. 오랜 세월 농촌은 방치된 채 도시개발의 후보지역이거나 유보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때로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는 혐오시설 입지 장소 역할도 했다. 농촌은 ‘비非도시’일 뿐 농촌으로서 온전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지방소멸 문제보다 더 험난한 숙제
대한민국 같은 특수한 여건을 지닌 나라에서 농촌이 지닌 가치를 되살리는 일은 특히나 힘든 과업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와 비슷한 국토 규모를 가진 나라들은 많아야 1000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보통이다. 우리는 그 5배인 5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한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집을 짓느라 그동안 우리는 막대한 도시 용지를 새롭게 조성해왔다. 국가 부가가치의 27%를 넘는 세계적인 제조업 규모를 유지할 공장 용지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앞으로는 국가적인 탄소 중립 목표 실현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부지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런 요구들을 수용할 토지 대부분을 그동안 농촌에서 확보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 농촌경제의 근간인 영농활동을 유지하려면 농업용 시설과 축사도 어딘가에 들어서야 한다.
농촌이라는 공간에 이처럼 다양한 토지이용 수요들이 얽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농촌이 상이한 가치들이 경합을 벌이는 각축장임을 의미한다. 보통 ‘난개발’로 얘기되는 농촌의 어지러운 모습들은 상이한 가치들이 대표하는 토지이용 요구가 조율되지 않은 채 농촌 공간에 펼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농촌의 고유하고 가치 있는 자원을 보전하는 과업에 국가적으로 매달리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농촌공간계획 제도를 도입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만이 아니라 여러 정부 부처 정책 담당자와 지자체 공무원, 관련 전문가 그리고 농촌 현장의 주민들 모두가 농촌 환경·경관·문화 등 농촌다운 자원의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농촌공간계획이 기대한 결실을 거두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농촌의 가치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관심에서 멀어져갈 때 그래서 농촌 공간이 ‘비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곳으로 여겨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농촌 소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필자 성주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농촌계획학회 이사.
농촌지역개발, 농촌계획과 관련한 분야 연구를 20년 넘게 하고 있다. 내세울 게 없는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지만 연구자의 숙명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