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내가 좋아하는 ‘무엇’

글·사진 정광하

  요즘 나와 아내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농장으로 간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지만,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면 더워서 농장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을 농사 준비를 위해 마지막 힘을 내어본다. 어수선해진 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작물들을 돌보다가, 오전 7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일을 이어간다. 숙박 손님 조식을 준비하거나 식당 문을 열 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농장, 식당, 민박 일을 대부분 아내와 둘이 하다 보니 무엇보다 시간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아들과 보내는 시간, 휴식 시간도 꼭 포함해서 일정을 관리한다.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지향하는 삶인데 너무 바쁜 거 아냐? 요즘 우리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잖아!”
  첫해부터 육아와 농사를 병행하면서 우리는 점점 시간에 쫓겨 일하게 되었고,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기 위해 시간 관리에 힘썼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업고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아이가 걷고, 의사소통하고, 학교에 가면서, 이제는 혼자 있을 수 있고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자, 우리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시골살이를 사계절로 보았을 때 농사 열정이 가득했던 봄을 지나, 바쁘고 힘들었던 여름을 보냈다. 올해로 12년 차인 시골살이의 사계절도 가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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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농장(위)과 식당(아래). ⓒ정광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농장(위)과 식당(아래). ⓒ정광하

우리는 시골생활자
  스스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주체적인 삶이 아닐까? 나와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삶을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연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 땀 흘리며 일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로 식탁을 차리는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상상했다. 2012년 12월, 세 식구는 다양한 과일나무가 어우러진,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시간이 담긴, 정원 같은 과수원을 상상하며 시골로 향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심에 두었던 것은 주체적인 삶이다. 도시에서도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천천히 가꿔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도시냐 농촌이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스스로 원하는 삶의 형태를 그려보았다. 도시에서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겠지만, 생태적인 삶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농촌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구하는 먹을거리는 유통과 가공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어디에서 누가 생산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꼼꼼하게 포장지 뒷면을 살펴보아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찾아서 사 먹는다고 해도 스스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것은 도시에서 돈을 얼마나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도시 생활보다는 농촌에서 직접 작물을 키워 먹는 것이 나와 가족에게 더 건강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20212년, 꽃비원이 될 땅과 첫 만남. 논산평야가 보이는 확 트인 공간이다. ⓒ정광하
2012년, 꽃비원이 될 땅과 처음 만났던 날. 논산평야가 보이는 확 트인 공간이다. ⓒ정광하

농사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무엇
  우리 부부는 ‘반농반X’라는 삶의 방식처럼 시골에서 농사 외에 또 다른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있을까 고민했다. ‘반농반X’란 농업을 통해 정말로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는 동시에, 저술·예술·지역 활동 등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이다. 나 같은 경우, 젊은 시절의 다양한 경험이 ‘반농반X’라는 삶의 방식을 만나 또 다른 좋아하는 일로 연결되었다.
  씨앗을 뿌려 키운 채소를 맛보는 즐거움은 농사짓고 요리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농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채소의 수확 시기, 기후, 토질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직접 농사지으며 배웠다. 그래서 농장과 연계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식당을 열고 음식을 통하여 소비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10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시작하여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쳤다. 지금은 두부공장을 리모델링한 널찍한 공간에서 제철 채소로 피자와 파스타를 만들어 점심시간에만 판매하고 있다. 식당 옆에는 2층 주택이 있어서 1층은 우리 가족이 살고 2층 공간은 매달 참가자를 모집해서 1박 2일 머무르다 가는 농가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손님에게는 농장투어와 농장에서 수확한 제철 채소로 만든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1박을 하면서 농장과 식탁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시작한 시골 생활,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 경험, 요리 경험은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또 다른 무엇과 만나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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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모습. ⓒ정광하
제철 식재료를 담은 꾸러미. 채소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제철 식재료를 담은 꾸러미. 채소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정광하

일상 채소로 만들어가는 관계
  나는 부모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시골에서 자랐다. 해가 뜨면 밭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복잡한 유통구조를 통해 내가 키운 농작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보다 단 한 명이라도 직거래를 통하여 소비자를 만나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리고 최대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적정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고, 자급자족을 위해 관심이 있는 갖가지 농작물을 키우며 맛보기로 했다.
  내가 키운 농작물을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출점했던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채소를 매개로 다양한 도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관심 있는 작물을 키우다보니 채소를 구매한 손님에게 더욱 즐겁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었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요리를 좋아해서 심은 허브와 채소를 요리사들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인연과 오랜 시간 이어진 관계로 소비자에서 친구가 되었고, 이제는 그들이 논산으로  온다.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은 10년 넘게 우리 농장과 식당을 알고 있는 사람들, SNS에 올린 음식 사진에 이끌려 만나게 된 사람들,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 도시를 떠나 잠시 쉼을 찾는 사람들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관계이자 농촌과 도시가 함께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광하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품에 안고 농장으로 출근했다. ⓒ정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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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정광하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들
  인구학자가 말하는 저출산 요인 중 하나가 일과 삶을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생활했다면 아마 우리도 여느 맞벌이 부부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냈을 것이며,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시간은 다르다.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마트에 가지 않아도 농장에서 먹을 거리를 구할 수 있고 함께 쉴 수도 있다. 느리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간결하고 명확하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품에 안고 농장으로 출근했고,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농사일 외에는 대부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서울이며, 지역이며, 외부 일정이 있으면 항상 아이와 동행했다. 나의 아들은 부모의 일과 삶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좋은 어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며 성장해 갔다. 요리사, 제빵사, 예술가, 디자이너, 음악가, 작가 등 농촌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보다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결국 일이 삶이 되고, 삶이 교육이 되었다.
  농장은 우리에게는 일터이지만 아이에게는 놀이터이자 배우는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고 맛보는 경험을 한다.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을 갖고 먹거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농장에서 자란 채소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아이, 제철 식재료를 맛보며 계절을 기억하는 아이. 성인이 되어 도시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린 시절 경험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회화나무 아래에서 아들이 책을 읽고 있다. ⓒ정광하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회화나무 아래에서 아들이 책을 읽고 있다. ⓒ정광하

작지만 촘촘하게 연결된 공동체
  여전히 도시에서 바라보는 농촌은 오래되고 낡고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먹거리 수업을 진행하면서 농촌 풍경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논에 허수아비를 그렸다. 농촌에서 허수아비를 구경할 수 있는가? 농촌에 살아도 아파트에 살고 있거나 농촌 체험의 기회가 없다면, 책에서 본 이미지가 곧 농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우프1) 호스트로 활동할 때 도시에서 온 친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농촌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 친척 누구도 농촌에 살지 않는단다. 이렇게 도시와 농촌은 점점 단절되고 있다. 인구소멸 이야기를 하면 이제 곧 없어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해버린 농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온라인을 통해서 농촌과 도시가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 서로를 연결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사진이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추천되고 비슷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어쩌면 요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일지도 모른다.
  서로 관심 있는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관계망들은 작은 규모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 같은 목표를 위해 느슨하게 연대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단절되었던 코로나 시기에도 이 관계망을 통하여 작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학교급식 납품 예정이었던 마을 어르신의 대파 공급이 어려워졌을 때 공주에서 쌈채소를 직거래로 판매하는 선배와 함께 홍보해서 짧은 시간에 모두 판매했던 일, 농부시장이 휴장하게 되자 세 농가가 각각의 농산물을 모아 연합꾸러미를 구성해서 SNS를 통해 판매했던 일, 곡물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문화공간에 다양한 단체가 모여 ‘맛’을 주제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일까지. 모두 농촌과 도시가 연결된 관계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농촌과 도시가 연결된 작은 규모의 공동체들이 많이 늘어난다면 단절되어가는 관계들이 더욱 촘촘히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1)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우퍼(봉사자)가 호스트(친환경농가)의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 받는 활동.

ⓒ정광하
우프 활동을 하는 우퍼들. ⓒ정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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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퍼들과 함께 먹은 새참. ⓒ정광하

(NO)무리 라이프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1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를 지속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채소를 통해 만난 도시 친구들의 지지와 응원이 우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가뭄이 계속되면 안부 메시지를 보내주고, 꾸러미에 담긴 채소를 받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요리한 사진을 보내준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계절을 함께 느끼고 맛보며 살아간다.
  날씨가 좋을 때는 친구들을 초대해 농장으로 소풍을 간다. 우리의 일터이자 아이의 놀이터였던 이곳을 시골집이 없는 도시 친구들을 위해 활짝 열어둔다. 각자 준비한 음식을 풀어놓고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사이 훌쩍 자란 아이들이 농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이 어릴 적 놀던 추억을 떠올린다. 이렇게 먹거리로 연결된 삶이 아이들에게도 이어지고 농촌에 대한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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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을 때는 친구들을 초대해 농장으로 소푸을 간다. ⓒ정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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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준비한 음식을 풀어놓고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광하

  어린 과일나무를 심으며 상상했던 농장은 어느새 숲이 되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시작한 시골살이가 지금은 농부와 요리사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지만, 어쩌면 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 삶이라고 생각한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서 가끔 일에 매몰되려고 할 때, 너무 앞만 보며 달려가려고 할 때, 잠시 멈춰 정원의 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그렸던 삶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오늘도 내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시골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정광하필자 정광하: 꽃비원 대표
논산훈련소 옆 2000평 규모의 버려진 농지를 개간하여 다양한 과일나무 묘목을 심고 12년째 과수원을 가꾸며, 이를 식재료로 로컬식당 ‘꽃비원홈앤키친’을 운영 중이다. 아내 오남도 씨와 아들 원호와 함께한 시골살이 10년의 이야기를 담아 책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