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사람들

2021년 개점한 진주텃밭 협동조합 직매장 3호점의 풍경이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2021년 개점한 진주텃밭 협동조합 직매장 3호점의 풍경이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도상헌

텃밭에서 식탁까지 함께하는 꿈
2011년, 지역 직거래장터를 열고 농산물을 판매하던 여성 농민들이 판매 후 남은 농산물들을 편지와 함께 지인들에게 담아 보냈고, 농민들이 쓴 정성스러운 편지와 함께 담아 보내는 ‘농산물 꾸러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런 직거래장터를 매일 열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2013년 9월 경남 진주시 금산면 오르막길에 작은 직매장을 마련한 게 ‘진주텃밭 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2023년이면 어느덧 협동조합도 나도 10년의 세월을 맞이한다. 협동조합이란 게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농업이 가진 공익성과 협동이란 말이 가진 힘을 믿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던 중 2018년 말, 협동조합에 심각한 경영 위기가 찾아왔다. ‘과연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은 난파선처럼 모두를 흔들었다.
  진주텃밭은 살아남기 위해 후퇴와 전진, 개선과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안전한 먹거리 직매장 3개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대상 다양한 사업과 활동에 생산자·소비자·직원 조합원 등 3800명이 함께하고 있다.

면 지역 초등학생들이 학교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상추를 직매장에  공급하고 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면 지역 초등학생들이 학교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상추를 직매장에 공급하고 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2020년에는 조합원들과 논의하여 직매장 전체를 자원 순환과 감량이 가능한 환경적 방식으로 전환했다. 무포장 판매 농산물과 자원의 재사용·재활용부터 우리밀 빵 공급 사업과 농민 조합원들의 기획생산을 연결했고, 실험과 도전의 모든 과정에는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2020년에서 2022년까지 감축할 탄소량은 1만1000㎏CO2(비닐 11만 장 혹은 페트병 1만8000병 생산 탄소량)이며, 농업·농촌 교육과 교류 425회 1만1000명 참여와 취약계층 먹거리 8900만 원 지원은 9년간 쌓아온 조합원의 성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텃밭에서 식탁까지 함께하는 밥상공동체’라는 꿈은 여전히 우리를 지탱하고 이어주고 있다.

지역농산물 무포장 판매의 현장. ⓒ진주텃밭 협동조합
지역농산물 무포장 판매의 현장. ⓒ진주텃밭 협동조합

밥상공동체를 지키는 다양성
2021년 여름, 진주텃밭에서는 ‘협동조합 우리밀 빵 사업’에 활용할 토종 우리밀 농사를 기획했고, 농민 조합원 여덟 명이 해보겠다고 나섰다.
  “어렸을 때는 밀밭이 많아서 겨울에 푸릇푸릇하고 좋았는데,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이제는 하지를 않아. 필요하다면 충분히 할 수 있지.”
  이듬해 수확 시기에 세 명의 밀 농사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에 산골짜기에서 방사 유정란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이유를 물었다.
  “닭 농장 옆에 노는 땅이 있고 닭똥도 가득하니 잘 될 거라 생각했어요.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좋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우리 닭들한테 주면 되니까 크게 걱정은 안 했거든. 동네에서 유일하게 장비를 가진 동생이 땅을 골라주기로 약속했지. 그런데 그 녀석이 삐져서 땅을 못 갈았어요. 어쩔 수 없이 씨앗 한 바가지 정도 슬슬 뿌리며 파종했는데, 어떤 날은 비둘기가 날아와서 먹고 어떤 날은 우리 닭들이 돌아다니면서 먹어버렸어. 어쨌든 몇 개라도 자라서 기분은 좋아요.”
  삐진 이유가 궁금해서 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동생이라서 틈만 나면 불러냈거든. 그 녀석은 혼자서 농사를 짓는데, 나 때문에 자꾸 농장을 비우니까 농사가 잘 안 됐나 봐.”
  다행히 얼마 전에 동생과 화해했고, 이제는 땅을 고를 수 있으니 다시 밀 농사에 도전할 거라고 말했다.

밀 농사를 실패한 농가. 겨우 자란 밀이 몇 주 보인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밀 농사를 실패한 농가. 겨우 자란 밀이 몇 주 보인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본인만의 특색 있는 농법을 연구한 농민 조합원도 있다. 감자·매실·녹차·연잎 등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탄화 후 증류해서 비화학적으로 병해충을 방제하고 식물과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농법이다.
  “부모님이 농사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어딘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에 농사가 제격이라 생각했지요. 1973년에 관행 방식으로 농사를 시작했는데, 1996년 감 농장에 큰 병이 들었어요. 병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수소문해도 해결을 못 했어요. 나중에는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수확량이 줄어들어서 1998년부터 친환경농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2007년에는 농법을 함께 연구하는 농민들의 연구회를 만들었고 ‘농민 스스로가 안전해야 농산물도 안전하고 먹는 사람도 안전하다’, ‘농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연구한다’라는 원칙으로 현재까지도 지역에서 농법 연구와 전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 농법이 널리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농약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민 조합원의 농장. 밖에서 꽃씨가 흘러서 땅에 핀 꽃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한다. ⓒ도상헌

무농약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민 조합원의 농장. 밖에서 꽃씨가 흘러서 땅에 핀 꽃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한다. ⓒ도상헌

협동조합 시작 때부터 함께한 무농약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민 조합원은 농촌에서 부모에게 농사일을 배웠고, 산업화로 농촌을 하나둘 떠나던 1981년에 ‘농사는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라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농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행 방식 영농을 하다가 자식들이 어린 시절 농장에서 뛰어놀며 약을 친 토마토의 꽃을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잠을 못 이뤘고, 그해(1995년) 친환경농업을 결심하고 전환했다.
  “농민으로 살면서 힘들지 않은 적이 한순간도 없었어요. 그래도 자식 세 명을 순서대로 진학시키고 잘 키워간 게 사는 기쁨이었지. 친환경농업은 벌도 풀어놓고 일을 하고, 사람도 원하는 때에 마음 포근히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농사는 힘이 닿는 만큼 지어보겠다던 그는, 2021년까지 변함없이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다가 연말에 쓰러졌다. 지금은 40여 년의 농업을 멈추고 회복하고 있다.

생산자·소비자·직원 조합원 등이 어우러져 교육을 듣고 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생산자·소비자·직원 조합원 등이 어우러져 교육을 듣고 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70대 후반의 연세에도 협동조합과 농업·농민에 대해 강의실이 떠나갈 정도의 강렬한 목소리로 강연하는 분도 있다. 그는 교육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고 5시간이 넘는 먼 길을 이동하고 차에 내리자마자 교육 현장으로 뛰어가는 분이다.
  “난 원래 타고난 목소리가 커요.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무서울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없지.”
  2020년 협동조합의 새로운 사업과 활동을 토론하던 어느 날, 그가 조합원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경우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더불어 협동했는가.
협동의 요구와 손길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뿌리친 적은 없는가.
그 후, 집으로 돌아와서 후회한 적은 없는가.

  그의 물음은 농업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가 우선해야 함을 깨닫게 했다. 그는 교육의 모든 순간이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을 바꾸거나, 혹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고 믿는다.

협약 어린이집 아이들의 고구마 농가 체험. 아이들도 고구마처럼 줄지 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협약 어린이집 아이들의 고구마 농가 체험. 아이들도 고구마처럼 줄지었다. ⓒ진주텃밭 협동조합

동갑내기 물류 직원 조합원은 택배 회사에서 5년 정도 일하다가 2019년부터 협동조합 실무자로 함께했다. 얼마 전 그와 소주를 한잔하는데, 엄지손가락 첫 마디에 눈에 띄는 굳은살을 발견했다. 타고나게 과묵한 사람이라, 각자 세 병쯤 마시고 나서야 속에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농산물 광구리(운반 바구니)를 하도 옮기니까 생기더라. 농담 아니고 택배 일할 때보다 진짜로 몇 배는 더 힘들다.”
  협동조합 사업에서 오가는 농산물의 양과 그에 따른 업무 강도가 상당한데, 현장 실무자들의 노력들이 보이지 않는 현장을 지탱해온 것이다.
  그는 농업이나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경제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청년이다. 그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완수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지닌 보통의 사람이다.

2021년 AI 살처분 반경으로, 하루아침에 닭들을 잃었던 농민을 위로하는 조 합원들의 편지. ⓒ진주텃밭 협동조합
2021년 AI 살처분 반경으로, 하루아침에 닭들을 잃었던 농민을 위로하는 조합원들의 편지. ⓒ진주텃밭 협동조합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우리는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업과 농민을 돕는 일들의 가치는 이해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 노동과 존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와 너 중에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나보다 못한 삶 혹은 남보다 못한 삶이라 여기기 때문에 먹거리 현장인 농업·농촌을 떠나고 농업·농촌의 실무자와 조력자도 함께 소멸해 가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사회적경제 석학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다른 사람을 이겨야 자신이 승리하는 지위 경쟁(Positional Competition)보다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농업과 농민, 그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지역사회의 복원력을 향상하는 사업과 활동이 앞으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각자가 보낸 10년에 가까운 그 시간들이 지역과 협동조합이라는 공간과 구조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신뢰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쌓여왔고, 크고 작은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며 다양한 삶들이 어울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농업은 만인萬人을 위한다. 농업·농민을 지원하는 사람들 또한 만인을 위하는 노동이다. 우리가 새로운 문을 열고 나아갈 용기를 가지거나 혹은 문을 지나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을 목격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공간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이 방식을 서로에게 풍요로운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농업이 아니라도 좋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각자가 사랑하는 지역과 서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최근 열풍이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구 씨의 말을 빌려 긴 이야기를 마친다. 우리 먹거리를 지키는 모든 이들을 “추앙한다”.

도상헌필자 도상헌: 진주텃밭 협동조합 사무처장 겸 교육위원장.
2013년부터 진주텃밭 협동조합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일 삶이 끝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결심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