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병선
올해도 ‘역대 최강’ 또는 ‘기록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여러 기상재해 앞에 등장했다. 우리의 경험치로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재해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더 늦기 전에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기후패턴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농업이 자유로운 건 아니다. 가축 사육이나 농지의 훼손, 화학비료의 생산 및 살포 등으로 농업도 기후위기에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수확품종 재배가 늘어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도 크게 늘었다. 한국의 단위면적당 화학비료 사용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하게 많지만, 지난 10여 년간 세계적으로 화학비료, 특히 탄소 배출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소질 비료의 사용량이 줄었다. 그러나 농산물 수출국의 질소질 비료의 사용량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7~2018년 사이에 세계의 질소질 비료의 연간 소비량은 2% 정도 감소했는데, 거대 농산물 수출국의 질소질 비료 소비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이 기간에 질소질 비료 소비량이 30% 줄었지만, 브라질은 80%, 러시아연방은 50%, 우크라이나는 90%, 호주는 40%, 뉴질랜드는 60% 늘어났다. 이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농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자유무역체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항생물질 등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적 영농방식과 이런 영농방식을 주도해 온 종자, 농약,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거대 농기업과 곡물 메이저들이 몸집을 키워온 사이에 기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기후위기로 농민이 직면하게 된 어려움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겨울철 기온 상승으로 월동하는 해충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방제비용은 늘어나고, 생산량은 감소하였다. 국내에서는 월동하지 못하는 열대성 해충도 월동한계선이 점차 북상하면서 국내로 날아드는 경우도 많아져서 농민들은 국내에서 월동하는 해충뿐만 아니라, 국내로 유입되는 이웃나라의 해충까지 방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폭염에 모종이 녹아내리면 다시 파종해야 하는 것도 농민 몫이고, 예전보다 무성해진 넝쿨식물을 제거하는 것도 농민 몫이다. 생산비는 늘고, 농업소득률은 줄어드는 구조가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 경고는 더 늦기 전에 생태농업의 실천에 대한 촉구였다. 농업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기후위기의 폐해를 가장 심각하게 받는 것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에 유엔UN 총회에서 채택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약칭 ‘농민권리선언’)을 보더라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농식품체계는 농민이 주도하는 생태농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생태농업이란 단순히 화학비료나 제초제, 살충제에 의존하지 않는 농업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생태적 순환을 바탕으로 지역의 자원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일에 농민 농업을 중심에 두고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농업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민과 함께하는 연대와 협력체계가 강조되는 이유도, 그리고 식량주권과 먹거리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는 농민권리가 강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겨울부터 초여름까지 전국의 여러 지역이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고, 작황도 형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농자재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정부는 밥상물가 타령만 하고 있다. 생산비가 반영되어 농산물 가격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수확량이 적어서 올라간 까닭에 농업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는데 그 부담을 오롯이 농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농가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간접적 정책을 우선해야 밥상의 위기도 피할 수 있다.
농업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책이 나올 수 있는 출발점이다. 농민 농업을 중심에 두고 농민뿐만 아니라 시민과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라”는 100여 년 전부터 회자되어 온 경구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깊이 새겨야 한다.
필자 윤병선: 건국대 인문사회융합대학(경제학) 교수. 세계 농식품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 농식품체계의 구축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푸드플랜, 농업과 먹거리 문제의 대안 모색》(울력, 2020), 《농민권리 : 유엔농민권리선언의 이해》(한국농정, 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