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식량도 에너지도 생산할 수 있을까?

글·사진 이유진

에너지자립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은 주민 주도로 에너지자립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 곳이다. 2003년 부안군수가 위도에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면서 부안은 들끓기 시작했고, 방폐장 건립 군민 투표 결과 반대가 91%를 차지해 마침내 백지화되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고통과 갈등을 겪은 지역에서 오히려 대안을 찾아 에너지를 자립하겠다는 활동이 벌어졌고, 주민, 종교계, 시민단체 모두가 나서서 2005년 부안성당 지붕 위에 시민햇빛발전소를 올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마중물 1호기, 2호기, 2009년에는 부안 나눔발전소를 설치했고, 바이오디젤 유채 사업,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집수리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등용마을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 효율화, 태양광발전기 설치 등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자립하는’ 마을 만들기가 진행되었다. ‘원전 전기’ 말고 ‘태양 전기’ 쓰겠다는 마을 만들기는 이후 전북 임실군 중금마을, 강원 화천군 느릅마을, 경남 산청군 갈전마을, 경남 통영시 연대도, 서울 동작구 성대골로 확산하였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을 발표했다. 농촌 마을에서 바이오매스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자립도 40%를 달성하도록 10개 마을을 시범으로 조성하고, 이후 2020년까지 600개 마을로 확대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마을당 투입되는 예산은 50억~60억 원 규모였다. ‘저탄소 녹색마을’ 사업은 가는 곳마다 실패였다. 마을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마치 뉴타운 개발사업 하듯이 에너지 생산설비 설치 중심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고, 운영하고, 활용하려면 지역민들의 참여와 지역자원 순환체계가 구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빠진 것이었다.

반복되는 농촌 재생에너지 갈등
10년 전의 농촌에서 벌어졌던 에너지자립 마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치면서 농촌 지역에 설치된 태양광과 풍력발전기가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농지를 잠식하는 태양광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대규모 태양광발전이 설치된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태양광 반대 집회가 벌어졌다. 지역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주민들에게 태양광발전 사업 추진단계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점과 외지기업과 개인이 추진하고 있어 태양광발전의 이득이 외부인에게 집중된다는 점, 발전사업으로 인한 ‘난개발’ 요인 등 다양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민들의 반대가 ‘태양광’, ‘풍력발전기’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정보의 공유, 소통 방식, 개발 주체 등 과정의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전소 자체에 대한 반감은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갈등 해결을 위한 수많은회의가 열렸지만, 구체적인 이행대책은 나오지 않았고, 이어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2036년까지 원전 6기를 추가 건설하고 12기는 수명 연장하겠다고 밝혀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역주행하고 있다. 언론은 연일 태양광발전 비리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대통령까지 관련자를 엄하게 다스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도 에너지 전환도 멈출 판이다.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 지역에너지 전환
한국 사회에서 시급하면서도 가장 안 풀리는 문제가 바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배출원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은 석탄발전소다. 전국에 60여 기가 있고, 지금도 강원 강릉시와 삼척시에서 신규 발전소를 짓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앞으로 10~15년 이내에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
  2022년 9월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힌남노’로 침수되면서, 1973년 쇳물 생산을 시작한 이후 49년 만에 모든 고로가 가동을 멈췄다. 힌남노가 포항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주를 치고 지나가면서 발생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원전 사고는 노후 설비와 인간의 실수로도 일어나지만, 기후재난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면서 원전 안전 문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 주도의 중앙집중적인 전력 시스템으로 구축해 온 석탄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이제 지을 수도 없고, 지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형 발전소가 빠지는 공간을 채우는 방법은 지역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분산형 지역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크기변환]2
독일의 한 농장에서 내건 간판에 “우리는 지역에서 우유도 생산하고, 전기도 생산한다”고 적혀 있다.

우리는 독일의 펠트하임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200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에너지자립 마을 답사를 다녀왔다. 총 10여 개의 마을에 다녀왔는데, 패턴은 비슷했다. 지역주민들이 만든 에너지협동조합에서 태양광, 풍력, 바이오가스, 바이오매스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시설에서 생산한 전기와 열을 판매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기본적인 시설 운영과 관리는 마을에서 하고, 지역 정부와 중앙 정부가 기술적인 지원을 하며,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마을에서 금융대출을 받아 발전소를 만들면 안정적인 수익으로 시설비를 갚아 나갈 수 있었다.
  유럽이라고 재생에너지 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갈등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갈등이 생기면 사업자와 주민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정부와 재생에너지갈등 관리 전담기관이 나서서 갈등을 조율한다. 독일 답사 중에 달리는 차 안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 있는데, 소를 키우는 농장에서 내건 간판이었다.
  “우리는 지역에서 우유도 생산하고, 전기도 생산한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다르다. 농업정책도, 농가소득도, 농가구성인구도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하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문제를 풀려고 해도, 농촌의 토지 소유 구조, 고령화, 소득, 지역분권 등 농촌에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일의 펠트하임처럼 농촌에서 식량도 에너지도 같이 생산하면서 지역민의 소득도 올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크기변환]3
초록색 들판과 풍력발전기.

햇살마을과 원천마을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자립 마을이 잘 되는 곳을 꼽으라면 두 군데가 있다.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햇살마을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활용해 주민 주도로 햇살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2009년 마을발전기금 7억 원에 은행에서 태양광발전기를 담보로 20억 원을 대출받아 총 27억 원을 투자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판매해 월 2400만~3000만 원의 수익이 생겨 대출금도 상환하고 마을을 위한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이 어떻게 태양광발전에 투자할 생각을 했을까? 마을 이장과 지도자들이 한림대학교와 인제군에서 실시한 ‘마을리더’ 교육에 참여해 에너지와 환경교육을 받으면서 태양광발전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현재 남전리 주민들은 마을기업 주도로 태양광발전 사업, 햇살체육센터 운영, 구상나무·만병초 복원 및 숲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소득과 일자리 모두 늘어나고 있는 사례다.
  충남 홍성군 결성면 금곡리 원천마을에는 34가구가 살고 있는데, 2014년 “마을과 축산이 상생하는 에너지자립 마을”을 발전 계획으로 확정하고, ‘마을발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2016년에 주택에 태양광과 지열 냉난방 보급을 시작하고, 마을에 상업형 태양광발전 시설이 들어왔다. 2018년에는 ‘가축분뇨 에너지화 사업’이 마을에서 추진을 결정한 지 4년 만에 확정이 되었고, 패시브하우스 개념의 돼지 축사를 준공했다. 2020년 마을 주택 90%에 태양광 보급을 완료하고, 마을 주택 단열사업에 들어갔다. 이 해에는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완공되었고, 마을기업 ‘머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머내 협동조합’은 에너지화 시설에서 발생하는 폐열 활용, 원예시설, 태양광발전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 분야 말고도 원천마을 조롱박 축제나 원천마을 동화를 펼쳐내는 등 마을의 이야기를 문화와 연결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햇살마을과 원천마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주민 주도성이다. 주민들이 결정하고, 책임지고, 성공도 실패도 주민들이 감당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다. 한참을 토론하고, 합의가 안 되면 기다린다. 원천마을도 2014년에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드는 것을 결정하고, 실제 지어지기까지 6년이 걸렸다. 세 번째는 마을에 논의를 주도할 리더가 있었다. 햇살마을의 박주열 전 이장과 성우농장의 이도헌 대표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마을공동체의 합의와 단합을 끌어냈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이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농촌 에너지 전환을 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잘못된 방식으로 농촌에 재생에너지를 설치하려고 했다. 정부는 이익공유 방식으로 지역주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에 참여할 경우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중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일부 주민 참여형 사업은 주민이 직접 자기 돈으로 투자하지 않고, 사업자의 대출에 의존해 배당금만 받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직접 투자하고 책임지는 참여의 개념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설비가 건설되는 것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주민참여 방식이 아니라 주민참여라는 포장을 쓰고, 민원을 해결하는 데 활용하는 셈이다. 이미 우리는 농촌 지역에서 재생에너지를 설치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많은 경험이 있다. 이제는 그 교훈으로부터 정부가 펼쳐온 정책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서 고쳐야 하는 시점이다. 한편으로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펼칠 때까지 기다릴 일은 아니다. 농촌에서 먼저 지역에서 먼저 농촌에너지전환 포럼이나, 농촌 에너지자립 마을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주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유진필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지역에너지전환 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본위원, 국무총리 그린뉴딜 특보, 서울에너지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했다. 서울특별시의 원전하나줄이기, 태양의도시, 그린뉴딜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안 정책을 연구하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전환도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