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농農, 청년을 위하여

김선아

‘인구학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농업의 ‘정해진 미래’는 짐작한 대로 매우 비관적이다.
‘인구학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농업의 ‘정해진 미래’는 짐작한 대로 매우 비관적이다.

인구학자 조영태는 2016년 발간된 책 《정해진 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판단하는 수많은 프레임 중 가장 정확한 예측 수단은 ‘인구’다. 인구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미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며, 설명 가능하다. 그것을 아는가 모르는가가 개인과 사회의 운명에 큰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인구학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농업의 ‘정해진 미래’는 짐작한 대로 매우 비관적이다. ‘전체 농가 수 103만 1000가구, 경영주 평균 연령 67.2세, 60세 이상 경영주 비중 77.3%, 40세 미만 0.8%(2021년 기준).’ 2022년 4월 발표된 통계청의 ‘농림어업조사’ 수치들은 ‘이미 늙어버린’ 농업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계속 쪼그라들고 있는 농가인구의 ‘양’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미래 농업을 책임질 40세 미만, 20~30대 경영주가 0.8%, 고작 8000가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농업을 이어갈 후계세대가 없다는 얘기고, 이대로는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저출생 고령화’로 이미 인구절벽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이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는 아직 남아있는 걸까.

청년농 영농정착지원 5성과와 한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청년창업농 패키지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22년까지 농업 혁신성장의 주역이 될 청년창업농 1만 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때 설계된 대표적인 지원정책이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이다. 만 18~40세 미만에 독립경영 3년 이하(예정자 포함)인 청년농을 선발, 1년차 월 100만 원, 2년차 월 90만 원, 3년차 월 80만 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운 영농 초기에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자금’을 지원, 안정적인 정착을 돕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이다. 일본의 청년취농급부금 제도, 프랑스의 청년농업직불제 등을 벤치마킹했다. 여기에 △창업자금 최대 3억 원 융자 △농지 임차 및 매입 알선 △농신보 보증비율 95%로 확대 △선도농가 장기현장실습과 컨설팅 우선 지원 등의 혜택도 얹었다.
  시행 첫해였던 2018년, 5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4.3:1에 이를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선발 규모를 연간 1600명(2018~2020년)에서 2021년 1800명, 올해는 2000명으로 확대했다. 지난 5년간 총 8600명이 선발됐다.
  선정자 중 창업예정자 비중은 첫해 42.5%(680명)에서 2020년 65.7%(1051명), 2021년 67.6%(1217명), 2022년 70.5%(1409명)로 해마다 늘었다. 창업예정자는 농지 등 영농기반이 준비되지 않아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지 못한 청년들이다. 농지 등을 임차해 경영체 등록을 마쳐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농식품부는 이를 근거로 “이 사업을 통해 청년들의 신규 유입이 의미있는 수준으로 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보았듯 지난해 40세 미만 농가경영주는 8000가구에 불과하다. 2020년 1만 2000가구에서 다시 뒷걸음질 쳤다.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틀림없지만, 청년농업인 감소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청년농 3만 명 육성’을 목표로 한다. 2027년까지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인력 유출을 감안할 때 매년 5000명 이상의 신규 육 성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청년농 3만 명 육성’을 목표로 한다. 2027년까지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인력 유출을 감안할 때 매년 5000명 이상의 신규 육성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청년농 3만 명 육성공약
윤석열 정부의 청년농업인 육성 공약은 문재인 정부보다 한발 더 나갔다. ‘청년농 3만 명 육성’이 목표다. 2027년까지 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인력 유출을 감안할 때 매년 5000명 이상의 신규 육성이 필요하다.
  먼저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을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국회에 제출된 2023년도 농식품부 예산안을 보면 우선 선발 규모를 기존 2000명에서 4000명으로 늘리고 1~3년차 지원단가를 각각 10만 원씩 올리는데 551억 원이 반영됐다. 2022년 예산 389억 원보다 162억 원이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지급기간을 현재 3년에서 준비기간(2년)을 포함, 5년으로 늘리려던 계획은 재정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마상진 박사는 “일본의 농업차세대인재투자사업(옛 청년취농급부금)의 경우 창농 준비기간 2년, 창농 이후 5년 등 최장 7년간 급여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우리는 현재 독립경영 개시 후 3년간 지원하는 것으로 설계돼 있는데, 준비기간 없이 3년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그가 1~2년의 창농 준비 과정 신설을 제안하는 이유다. 청년들이 생활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영농설계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마상진 박사는 “농사의 기본인 농지를 구입하거나 임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이 마을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라면서 “지역의 농업법인에 취업하거나 선도농가, 교육기관 등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영농기반이 없는 청년들의 정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지·자금 문제 해결 없인 결국 헛바퀴
실제 농지는 청년들의 진입 문턱을 높이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구입하기엔 가격이 너무 비싸고, 자금이 있다고 해도 좋은 조건의 땅은 청년들의 차지가 되지 않는다. 농지은행을 통한 ‘맞춤형 농지지원정책’도 청년들의 실제 수요와는 거리가 멀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
  농식품부는 ‘장기임대’에서 답을 찾고 있다. 2023년부터 시행하는 ‘선임대 후매도’ 제도는 농지은행이 구입한 농지를 청년농에게 장기임대 해주고, 토지 매매대금이 완납되면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사업이다. 유휴농지나 국·공유지 등 저활용 농지를 대상으로 농업기반을 정비한 후, 청년농업인에 임대·분양하는 ‘농업스타트업 단지’ 조성사업도 추진한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이향미 책임연구원은 “저활용 농지는 주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영농 어려움, 영농조건 불량, 부재지주 소유 등으로 발생하는데, 앞으로 우리나라 저활용 농지 비중은 매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영농조건이 불량한 농지를 대상으로 생산기반시설을 구축한 후 영농수요에 맞게 지원하면, 저활용 농지의 효율적 활용은 물론 청년농업인의 농지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현장의 수요에 비해 사업물량이 적어 정책의 체감도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정책자금 지원에 대한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거치·상환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담보가 부족한 청년농을 위해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 보증 비율을 90%에서 95%까지 확대했다고 홍보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이 개선되지 않았다. 상환기간도 지난 2020년 ‘3년 거치 7년 상환’에서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이다. 3억 원의 자금을 이용했다면 5년 후 연간 3000만 원씩 10년을 갚아야 하는데, 영농경력 5년 이하 농업인의 98.8%가 ‘3000만 원 미만’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상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농식품부는 2023년부터 후계농 정책자금의 대출한도를 3억 원에서 5억 원까지 확대하고, 신규 농업인의 이자율은 1.5%로 0.5%p 인하할 계획이다. 상환기간은 5년 거치 20년으로 늘릴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책의 초점을 ‘출산 장려’가 아니라 도농간, 지역간 격차 해소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책의 초점을 ‘출산 장려’가 아니라 도농간, 지역간 격차 해소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상한 대책, 파격적 지원 필요한 때
1970년대 농고·농대 등 농업계학교 육성정책, 1980년대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정책, 1990년대 한국농수산대학 설립·운영, 그리고 2000년대 후반 귀농·귀촌사업까지 그동안 다양한 청년농업인 육성대책이 추진돼 왔지만, 청년농업인은 제대로 육성되지 않았다.
  정부가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출산을 장려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2021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떨어졌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동안 정부 정책의 효용성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로, 최근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중에서도 ‘지역 청년인구의 유출과 수도권의 자원독점’이 인구 감소의 핵심 고리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지역의 소멸 위기는 격화되고,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에선 ‘사회적 경쟁’의 심화로 출산율이 급락하여 국가 전체의 인구 감소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1년 서울의 출산율은 0.63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다. 정책의 초점을 ‘출산 장려’가 아니라 도농간, 지역간 격차 해소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점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2022년 4월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일자리 사례와 모델’ 연구보고서를 통해 소개한 경북 의성군의 ‘이웃사촌시범마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지방소멸위험지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의성군은 안계면 일대를 ‘이웃사촌시범마을’로 지정하고, △일자리 창출 △주거단지 조성 △생활여건 개선 △마을공동체 강화 △청년 유입 등 5대 분야 40여 개 사업을 진행, 2년 반 동안 총 162명의 청년인구가 유입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대해 이상호 연구위원은 “청년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일자리와 주거 공간을 핵심에 두고 마을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의료·교육·문화·생활 인프라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 주효했다”면서 “청년인구 유입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뚜렷한 목적하에 지역에서 동원 가능한 대규모 지원과 종합적인 정책 개입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지속 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청년농업인이다. 지난 5년간 ‘청년농 영농정착지원사업’에 지원했다 탈락한 이들이 해마다 1500~2000명에 달한다. 지원조건이 맞지 않아 아예 신청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청년을 농촌으로 강제로 이주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농업에 도전해보겠다고 어렵게 나선 청년들을 내쫓지는 말아야 한다. 파격적인 방식이 아니면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세심히 살필 일이다.

필자사진(김선아)필자 김선아: 한국농어민신문 기자. 1995년 첫 직장으로 한국농어민신문에 입사한 후 편집부, 국제부, 전국사회부, 기획부 등을 거쳤다. 지방자치, 로컬푸드, 사회적 경제, 귀농·귀촌 문제 등에 관심을 두어 왔으며 지금은 농업부 데스크로 농정 전반을 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