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사상 최초로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가 치러졌다. 농협, 축협, 수협, 임협 등 1,326명의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선거로 이중 농협과 축협 조합장만 1,115명이다. 이번 조합장 동시 선거는 여러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두 가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동안 읍·면 단위 동네 선거였던 것이 전국적 관심 속에서 치러지면서 언론도 전례 없이 집중적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혈연, 지연 등에 얽혀 ‘돈 선거’, ‘비리선거’로 매도되던 농협 조합장 선거가 정책선거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농협개혁에 대한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동시 선거는 ‘깜깜이 선거’라 부르며 잘못된 선거법으로 현직 조합장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약 절반에 가까운 농협 조합장이 물갈이 되었다. 이는 예년에 비해 높은 수치다. 그만큼 농민들이 농협의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역에는 다양한 유형의 리더가 있지만, 농협 조합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에서 농협은 어떤 존재인가. 농민들은 농협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농협은 농민들이 돈을 빌리고 맡기는 은행이며, 생산한 농산물을 팔고 농사짓는 데 필요한 농자재나 생활물자를 구매하는 곳일 뿐 아니라, 농사용 기계나 차량의 기름을 사는 곳이고, 심지어 죽으면 장례까지 치러주는 곳이 아닌가. 농민들은 농협이 제 역할을 한다면 농업·농촌 문제의 절반은 해결될 것이라고한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농협을 책임지는 사람이 농협 조합장이다. 조합장은 조합의 대표로 업무를 총괄한다. 이사회의 의장이고, 대의원으로 구성된 총회의 의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상임조합장이든 비상임조합장이든 실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농민들이 농협을 보는 눈은 매우 차갑다. 농민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질문한다. “여러분 지역의 농협은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긍정적 답변은 대개 10%를 넘지 못하고, 심지어 없을 때도 있다. 농민들은 “농협은 경제사업은 뒷전이고 돈 장사만 한다”, “농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다”라고 비난한다.
지역재단에서는 3.11 조합장 동시 선거를 계기로 ‘좋은 농협 만들기’를 위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하나는 농협 개혁 의지가 있는 조합장들로 2014년 2월 ‘전국농협조합장 모임 정명회’를 창립해 정기적으로 농협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또 하나는 ‘좋은 농협 만들기’를 전 국민 차원의 운동으로 전개했다. 농협개혁을 통해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 국민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며, 식량 주권 확립과 지속 가능한 도농 공생사회를 실현하는 것은 농민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과제이다. 3.11동시 조합장 선거를 ‘좋은 농협 만들기를 위한 정책 선거’로 만들어보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에 농민단체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소비자 단체가 참여하여 지난해 12월 ‘좋은 농협 만들기 정책선거실천 전국운동본부(이하 전국운동본부)’가 탄생하였다. 전국운동본부는 ‘좋은 농협 만들기 20개의 정책’을 제시하고, 158개 조합 218명 후보와 ‘농협개혁과 정책선거 실천 협약’을 맺었는데, 75명이 당선되었 다. 선거법의 제약으로 정책선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금까지 성과를 토대로 ‘좋은 농협 만들기’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3.11 선거를 대비해 결성된 ‘정책선거실천 전국운동본부’는 ‘좋은 농협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라는 상설조직으로 재편된다. 여기에는 농민단체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소비자 단체, 농협조합장과 연구자 등이 참여한다. 정책연구와 정책 제언과 함께 지속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해 국민 의견을 모으고, 농협 임직원 교육과 농협의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 지원까지 맡는다. 무엇보다 이 기구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는 11월로 예정된 농협중앙회장 선거 전에 선거법을 개정해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조합원의 뜻을 반영하는 정책선거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좋은 농협 만들기’를 위한 농협 개혁의 대장정에 모두 함께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필자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2010년 8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충남발전연구원장으로서 민선5기 충남도정에 기여하였다. 주요 저서로 『순환과 공생의 지역만들기』(2011, 교우사), 『위기의 농협, 길을찾다』(2015, 한겨레신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