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송정은
‘이어짓기’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명의 필자가 집필한 에세이를 이어서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 호 필자 장현예 씨에 이어 송정은 씨가 ‘농촌에 관한 단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쓴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
나는 친환경농산물에 애착하는 소비자로 시작해서 20여 년간 친환경 식재료와 음식을 기획, 유통, 판매하는 일을 해왔다. 내가 친환경농산물을 애정하게 되었던 계기가 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서울 토박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흙보다는 시멘트와 보도블록과 더 가깝게 지냈던 완전한 도시 아이였다. 그러던 내가 농업과 환경, 그 너머의 세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딸아이를 막 낳아 키우기 시작하던 때였다.
딸의 아토피로 알게 된 친환경 먹거리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며 재롱을 부리던 딸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을 수시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접히는 곳들은 피가 맺혔고 관절이 아프다고 울거나 벽에 등을 대고 비비거나 긁어가며 잠을 못 이루게 되면서 병원에 다니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들은 면역력 결핍으로 감기와 같은 유행성 질환이 돌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아프곤 한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당 의사는 “아토피는 쉽게 낫는 병이 아니니 아이가 클 때까지 약을 먹으며 지켜봐야 한다”라고 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증상이 더 심해졌고 약을 먹고 바르면 증상은 잠시 가라앉았다. 아토피 치료제로 사용되는 일부 약들이 피부만이 아니라 내장기관까지 영향을 미쳐서, 장기복용하게 되면 내성과 함께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약이 아닌 다른 치료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서점에 가서 아토피와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찾아 읽었다. 아토피를 가진 아이 엄마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갖가지 경험담을 보았다. 여러 정보를 모아 보니, 결국 결론은 가공식품과 화학적 합성첨가물을 철저히 배제한 친환경 자연식을 시작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식생활을 완전히 바꾸다
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하면서 그동안의 식생활을 다 바꿔야 했다. 결심이 서자 작심하고 냉장고를 뒤집었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다 버렸다. 기호식품, 가공식품, 밀가루, 백미, 설탕, 간장, 소금까지도······.
당시 나는 딸아이의 아토피를 이겨내기 위한 치료식으로 유기농 자연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하게 식단을 꾸렸다. 몸속에 알레르기 물질을 스스로 걸러내지 못하고 발진으로 돋아나는 것이 아토피이다. 그래서 몸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은 최대한 피하고, 이미 몸 안에 들어와서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을 잘 해독할 수 있는 식품을 먹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통해 풍부한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구성했다. 쌀은 현미를 중심으로 6~7가지 잡곡을 섞어서 거친 현미잡곡밥으로 지어 먹었다. 소, 돼지, 닭, 오리 등 축산업을 통해서 생산되는 모든 붉은 고기류는 물론, 계란까지 전혀 먹지 않았다. 가끔 자연산 생선이나 해조류를 먹었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비롯한 모든 유제품도 끊었다.
내 손으로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은 생협의 제품일지라도 먹지 않았고, 우리밀이라 할지라도 밀가루는 전혀 먹지 않았다.(밀가루도 아토피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간장은 모두 전통장으로 바꾸었다. 전통간장, 현미조청, 천일염, 현미식초나 감식초(당시에는 유기농설탕도 전혀 쓰지 않았다), 산야초효소 정도가 조리하는 데 사용하는 양념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밥, 국을 포함해 7~8가지 음식들을 준비하고 아이와 내 도시락을 싸는 일상을 10년 정도 지속했던 것 같다. 7~8가지 음식이라고 하지만 나의 요리법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생으로 먹고 살짝 굽거나 찌는 등 간단히 조리하는 식이었다. 아이의 학교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초등 시절 내내 학교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서 보냈다. 멀리 여행을 다닐 때에도 차 트렁크에 항상 버너와 압력솥, 청국장찌개와 밑반찬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일절 외식하지 않았다.
이렇게 식단 관리를 시작하면서 1년 정도는 꽤 힘들게 투병했던 것 같다. 음식을 바꾼다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 방법이 맞을까’, ‘이렇게 해서 나을 수 있을까’ 하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갈등들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나에게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지독하게 철저했던 10여 년이었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딸아이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병원 한 번 가는 일 없이 건강하게 컸다. 사실 엄마는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 새벽밥을 열심히 지어 먹이는 것밖에 해준 것이 없는데, 아이는 정서적으로도 몸의 건강으로도 손 갈 것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니 모두 음식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건강은 친환경 자연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와 그 이전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좋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강력하고 큰 힘을 아이와 함께 몸으로 체험하며 알게 되었다.
친환경 먹거리가 알려준 다른 세계에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일 새벽부터 음식을 해서 도시락을 싸고 가족의 먹을거리를 집에 챙기는 일상이 지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귀한 친환경농산물을 어떻게 더 맛있게 요리할까 하는 생각에 매일이 정말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미친 듯이 좋은 친환경농산물을 찾아 먹고 누리며 좋아했던 나의 지난 30대의 시간이 지금의 친환경 먹거리 관련한 일을 하는 토대가 되었다.
친환경에 관심을 가진 처음의 목적은 아이의 치료였지만 그래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찾아 공부하면서, 나의 삶도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샴푸나 린스를 쓰지 않는다. 따뜻한 물로만 씻어도 충분하다. 집안에서도 독성이 있는 세제나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는 유연제, 화학세제는 전혀 쓰지 않는다. 내가 사용한 세제가 물을 오염시키고 물속 생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와 환경과 농업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의 행동들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세상을 더 깨끗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친환경농산물로 음식을 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점은 농약이나 제초제 등 유해물질 잔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먹어도 되니 씻는 과정이 가볍고 경쾌하다. 이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도 동일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음식 재료의 90% 이상을 친환경농산물로 쓴다. 더 나아가, 기존의 친환경농업보다 조금 더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생산하는 자연재배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취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문제의 해법이 땅을 파헤치지 않고 토양의 생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탄소를 잡아당겨 보관하는 탄소농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의 작은 행동은 한 방울의 물과 같지만 이런 작은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서 시내도 되고 강물도 되는 것일 테니 이 한 방울의 역할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여름이면 늘 먹게 되는 제철 음식이 있다. 나는 올해도 친환경매장에서 호박잎을 사다가 다시마,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내고 애호박을 두들겨 넣고(이것은 꼭 두들겨 넣어야 맛있다)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내어 끓인 진한 호박잎국을 몇 번이나 먹었다. 좋은 제철 유기농산물을 가까이에서 구입할 수 있고 철마다 나오는 농산물을 보며 무엇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필자 송정은: 친환경한식레스토랑 ‘꽃밥에피다’ 대표, 친환경식품전문기업 네니아 전무
네니아에서 350여 가지 친환경가공식품을 기획하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공급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2020년 네니아에서 법인을 독립하여 친환경레스토랑과 친환경전문매장, 친환경 도시락전문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