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 ‘공생’을 생각한다

글·사진 박종무

  20여 년 전,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아이들이 몸으로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상추, 오이, 완두콩, 방울토마토, 땅콩, 고추, 감자, 옥수수 등 종묘상에서 구입할 수 있는 온갖 모종을 구입하여 좁은 텃밭에 심었다. 심지어는 텃밭 모퉁이에 해바라기도 심었다. 엄마와 아빠의 껌딱지였던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서서히 정서적으로 독립하더니 곤충이 싫다는 이유로 텃밭 가기를 거부했다. 이후로는 줄곧 아내와 텃밭을 다니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농업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농업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농업에 대한 무관심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래 보인다. 하지만 한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근본이 되는 농업이 온전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때에 한 국가의 식량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토대인 농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그저 흘러간 옛말이 아니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 사회에서 농업의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되었는지, 30년 가까이 생명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그 연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18년 전 주말농장을 시작할 때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18년 전 주말농장을 시작할 때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종무

농촌이 쇠퇴하는 과정
  1960년대 우리나라 총인구 대비 농가 인구 비율은 58.3%였다.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3년에는 4.0%에 이르렀다.(출처: 통계청) 이렇게 농가 인구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 것은 농민들이 땀 흘려 일한 만큼 소득을 얻지 못하고 빚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이주하는 과정을 산업 변천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먼저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줄어든 첫 번째 계기는 미국의 잉여농산물 수입이다. 화학비료가 개발되면서 급격히 농업 생산량이 증가한 미국은 자국의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업 공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54년 무역 촉진 원조법(PL480호)를 제정하여 잉여농산물을 제3세계에 떠넘겼다. 양곡을 무상원조 형식으로 공급받으면서 국산 쌀 소비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쌀을 비롯한 국내 농산물 가격은 하락했다. 그 이후에 들어선 정권들은 생활 물가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생산비보다 낮은 곡물 가격을 강요하였다. 또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수출입 확장을 위해 우루과이라운드를 비롯한 다양한 FTA를 체결하였다. 싼 가격의 수입 농축산물은 우리 농업의 숨통을 압박하여 많은 농민이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농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했지만 국가는 농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을까?

밀집한 곳에서 키우는 돼지.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가 옆에 있는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지 못하도록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자른다.
밀집한 곳에서 키우는 돼지.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가 옆에 있는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지 못하도록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자른다. ⓒ박종무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농업 전반의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농민들은 환금성 작물을 재배하거나 축산업으로 생업을 전환하였다. 많은 축산농가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농장의 규모를 키우고, 가축들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곳에서 밀집 사육하는 공장형 축산 형태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농축산물 수출입과 전 세계적인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농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철주야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생물의 진화를 밝히면서 오늘날 생명의 이해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영국이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시기에 자국의 야만적인 약탈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생물의 진화에서 경쟁을 특히 강조했다. 그러나 생명은 때로 경쟁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공생을 한다. 아니, 생명의 진화 자체가 공생을 통해 이루어졌다. 생물학자인 린 마리스(Lynn Margulis)는 연속세포내공생이론(SET, Serial Endosymbiosis Theory)을 통해 “생명의 진화는 경쟁이 아닌 공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혔다. 미토콘드리아와 비슷한 고대세균은 진핵세균과 공진화하여 동물을, 엽록체와 비슷한 고대세균은 진핵세균과 공진화하여 식물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바위에 이끼처럼 피어 있는 것이 균류와 조류의 공생체인 지의류이다.
바위에 이끼처럼 피어 있는 것이 균류와 조류의 공생체인 지의류이다. ⓒ박종무

  생명의 공생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농작물이 꽃을 피우면 벌과 나비가 수분을 하면서 서로의 생을 이어가는 것도 공생이고, 개미가 진딧물을 보호하고 진딧물이 분비하는 분비물을 받아먹는 것도 공생이다.
  과거 농촌에는 소똥을 동글게 말아 먹고 사는 소똥구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소똥구리는 소똥이 다시 땅의 퇴비로 돌아가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농촌에서 소똥구리가 사라지면서 2017년 환경부는 소똥구리 복원을 위해 수천만 원을 들여 소똥구리를 구입하겠다고 공고했다. 소똥구리는 왜 사라졌을까? 소똥구리가 소똥을 먹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에는 장내 미생물의 도움이 큰데, 소들이 항생제가 배합된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소똥에 남아있던 항생제가 소똥구리 장내 미생물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장내 미생물의 부재로 소똥을 소화하지 못한 소똥구리는 굶어 죽었다.
  미생물과 유기체의 공생은 소똥구리 사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가 풀을 소화하는것도 장내 미생물의 도움 덕분이고, 우리 인간에게도 장내 미생물이 소화나 건강한 면역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미생물은 유기체 안에서 공생하는 것을 넘어, 퇴비를 발효시켜서 흙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농업은 다양한 미생물과 곤충의 도움이 있기에 순환하고 지속 가능한 것이다.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은 자연에만 있지 않다. 인간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그 틀 속에서 서로 협력하며 살아왔다. 전통사회에 대한 많은 연구를 보면, 조상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동료를 배려하는 삶을 살았다. 이웃이 굶주릴 때 나 혼자 배부르게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 농촌에는 두레나 품앗이, 계와 같이 서로 도우며 사는 풍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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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주말농장으로 향한다. 우리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박종무

건강한 생태계가 없다면 인류도 없다
  사회가 서로 돕던 전통은 사라지고 경쟁만 강조하면서 우리 농촌은 고사 직전 상황에 처했다. 농촌의 고사 위기 상황은 단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1980년 69.6%였던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9.3%로 떨어졌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56.0%에서 22.3%까지 내려왔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양정자료) 이를 두고 부족한 먹을거리는 외국에서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그렇게 한가롭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기후위기이다. 최근 해외 뉴스를 보면 몇백 년만의 폭우라거나 폭설 또는 가뭄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곡물 수출국은 그런 기후재난을 겪게 되면 자국에서 소비할 식량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수출을 통제한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곡물 수입이 어렵고, 수입하더라도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유럽 선진국들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며 식량자급률을 100% 이상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식량자급률을 10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농업을 세계와 경쟁하라며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국가의 생존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는 뛰어난 이성을 지닌 인류가 지금의 기후위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자아도취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의 작가 호프 자런(Hope Jahren)이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서 지구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2019년 UN 보고서는 “인류의 행위로 인해 50만~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라고 발표했다. 야생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82%가 인류의 행위로 사라졌다. 이 상황에 대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생태계의 모든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위기와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람들이 약육강식을 부추기며 끝없는 경쟁에 빠져들면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논과 밭을 돌보아야 하는 농부가 왜 세계의 농부와 경쟁을 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박종무필자 박종무: 수의사, 생명윤리학 박사
모든 생명은 존재 의미가 있으며 생태계 내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상처받는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수의사가 되어, 30년 가까이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살아 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