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근로자와 함께 살아가는 농촌이 되려면

김주영

이 글은 2025년 대산농촌재단의 ‘농업연구과제’로 수행한 「계절근로자의 농촌 생활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를 바탕으로 필자가 새롭게 구성하였다. [편집자 주]

2026년 전국 142개 지자체에 10만 9천여 명의 계절근로자가 배정되었다. 올해 상반기 계절근로 배정인원은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김주영

외국인 계절근로자 10만 시대의 농촌
  올해 배정된 계절근로자는 10만 9천 명으로, 작년 배정 인원 9만 6천 명 대비 14% 증가했다.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시범적으로 19명을 도입했던 계절근로자는 10년 만에 10만 명으로 늘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번기 노동력 수급이 어려운 농촌의 현실은 계절근로자의 지속적인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오늘날 농촌은 언어, 문화, 농업 방식이 다른 다양한 국적의 계절근로자와 함께 일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고령의 농부뿐만 아니라 계절근로자 초청과 긴밀하게 얽혀있는 결혼이주여성, 지자체 공무원, 지역 농협 관계자, 지역주민은 모두 이 과제와 무관할 수 없다. 계절근로자 당사자도 마찬가지다. 지금 농촌은 계절근로자와의 공생을 위한 물리적, 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서로 다름을 마주하고 관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고용주를 대상으로 고용계약 준수와 인권침해 예방 교육, 근로자 전용 기숙사 건립, 계절근로자 권리 보장 교육, 통역사 채용, 전담 부서 설치 등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효과인지 2022년 10%에 달했던 계절근로자 이탈률은 2025년 1% 미만으로 줄었다. 정책적 개입과 관리가 이탈률 감소와 농촌의 안정적인 일상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하지만 농촌 현장에는 고용 안정성 향상에 만족하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친척을 둔 결혼이주여성도 있다. 제도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유의미하게 작동하기도,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제도와 사람,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도입 10년만, 법적 근거를 확보한 계절근로자 제도
  2025년 7월, 도입 10년 만에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계절근로자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2026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출입국관리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계절근로 전문기관 외에 선발, 알선, 채용에 개입하는 브로커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형사처벌 한다. 기존에 지자체가 전담했던 계절근로자 초청과 운영은 전문기관을 지정하여 일임한다. 2025년 8월 연달아 개정된 농어업고용인력지원 특별법은 공공형 계절근로 운영기관 지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한 초석이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반가운 동시에 의문도 든다. 불법 브로커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은 사후적인 조치에 치중한다. 브로커가 없다면 한국이 원하는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외국 지자체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에 따른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 간 협약을 통해 외국인력을 모집, 송출, 수급하는 고용허가제(EPS)와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전문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며 브로커의 개입을 줄인 인력 모집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근로자 제도는 경험이 부족한 개별 지자체의 역량에만 의존하여 모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자체 간의 협약을 통한 모집이 계속되는 한, 브로커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기관 지정은 운영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시급한 현안이다. 그러나 아직 지정 세부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고, 민간 단체의 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전문기관을 활용한 계절근로자 관리가 없었던 일은 아니다. 광역도 차원에서 공모로 선정한 공공기관을 통해 운영을 지원하거나 기초 지자체에서 별도의 기관을 신설하고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민간과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다. 공공성은 계절근로자와 농민의 안정적인 관계 수립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기존의 사례를 참고하여 전문기관 지정에 참여하는 민간 단체의 공공성을 엄밀하게 평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전라남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광역 지원센터는 광역도 차원에서 공공기관을 통해 계절근로자 제도 운영을 지원하는 사례다. ⓒ전라남도

계절근로자와 이웃하는 ‘특수한 농촌’
  더 중요한 건 사람이다. 제도를 예기치 않게 변주하는 힘은 사람에게 있다. 농촌 특유의 관계 문화는 제도에 미세한 균열을 가한다. 농촌에는 여전히 공고한 가족과 친족, 이웃으로 맺어진 오랜 관계와 풍습이 있다. 이러한 특수성 위에 고용계약을 기반으로 새롭게 설정되는 계절근로자와 농부의 관계가 새겨진다.
  계절근로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농가에서만 일해야 한다. 파견은 불법이다. 그러나 농촌의 문법에 익숙한 몇몇 고용주에게 파견과 품앗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한국인 간의 품앗이는 가능하지만, 고용계약으로 채용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품앗이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 명료한 사실이고 구분이지만, 농촌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이 고용의 당사자가 되는 상황에서는 이 문제가 조금 더 미묘해진다.
  농부 A는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일손이 부족해서 아내인 결혼이주여성의 친족을 초청하기로 했다. 그의 형제 둘이 일손을 도우러 왔다. 이들의 친족관계는 고용계약과 맞물리며 새로운 양상을 드러낸다. 한국의 가족, 즉 누이의 가족은 임금을 정확히 지급하고 생활 공간을 내주는 등 그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계절근로자는 안정감과 감사함을 느끼며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일하고, 주말에도 나가 밭을 돌본다. 어느 날 누이의 시부모가 친구의 밭에서 잠시 일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견은 불법이다. 그러나 친족관계로 묶이기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로 해석된다. 이 관계망 안에서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인인 동시에 외국인 형제의 누이로서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친족관계로 잇는다.
  가족 같은 사이. 내가 만난 고용주들은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일에서 가족 같은 사이란 무엇인가. 일은 일로서 대하자는 내 신조와는 동떨어진 표현을 들을 때마다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가족은 또 어떠한가. 언제나 기꺼운 존재만은 아니지 않은가. 이들이 이야기하는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상정되는 이미지로서의 가족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가 되어 주는 그런 가족.
  그러나 때로는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기도 하는 가족의 다면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용계약의 이행을 가족 비유로 풀어가는 방식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친근한 가족 관계의 설정은 낯선 서로를 대면해야 하는 계절근로자와 고용주에게 심리적 도움이 되는 동시에, 사적 관계를 기반으로 특정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계절근로자 제도 속 행위자들에게는 현실적이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계절근로자와 선주민 사이 가벼운 마주침이 반복될 수 있도록, 접촉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 ⓒ영양군

관계는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해외에서 일하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8개월 단기 체류, 표준 한국어와 구분되는 농촌의 사투리, 농번기의 바쁜 일상을 생각하면 계절근로자의 한국어 학습은 어려운 숙제다. AI를 활용한 통번역이 가능한 오늘날, 짧은 체류를 위해 언어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만난 고용주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렵다면서도, 어떻게든 함께 일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전에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한국인 고용주는 한국어 설명에 더해 직접 시연을 하며 농작업을 지시한다. 재입국한 경우나, 같은 고용주와 일한 경험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 지시를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만난 사이여도 손짓, 몸짓, 눈빛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농담을 한다. 스마트폰의 통번역 앱 사용법 교육과 같은 간단한 방법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지원한다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서로의 낯섦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들은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 밀도 높은 친밀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 내가 만났던 어떤 계절근로자들은 마을 주민과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마주침과 우연한 교류가 이어지면서 서로 이웃이 되었다. 고령의 이웃이 숙소를 찾아와 대화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끔 음식을 나누었다. 이웃의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의 물건을 대신 꺼내주기도 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하며 아쉬움도 나누었다. 이듬해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는 본국에서 준비한 말린 망고를 이웃에게 선물로 주었다.
  계절근로자와 선주민은 서로 자주 만나야 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마주침이어도 좋다.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 된다. 가벼운 마주침이 반복된다면 느슨한 연결이 이어질 수 있다. 계절근로자의 공동생활 숙소도 외진 곳이 아니라 마을 안에 건설하여 선주민 이웃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함께 식사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어도 좋다. 그렇게 서로에게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닌, 익숙하고 안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가볍게, 자주 마주하기
  작년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계절근로자 교육에 참관한 적이 있다. 화재 안전, 범죄 예방, 농사일 체험, 다문화 이해 등 알찬 내용으로 구성된 교육이었다. 그러나 동시통역을 통한 정보 전달 때문인지, 계절근로자들의 집중도는 낮아 보였다.
  ‘교육’이 아닌 ‘마주침’을 기획하는 시간으로서 고용주, 결혼이주여성, 계절근로자가 첫 대면식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대면식은 딱딱하고 엄숙한 정보 전달 중심이 아니라, 서로를 소개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레크레이션 같은 시간이면 좋겠다. 말이 꼭 온전히 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시간에 통번역 앱 사용법을 함께 배우고 경험해 봐도 좋다.
  농번기에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모이는 기회는 한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의도적으로 계속 마주치는 시간을 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효과를 얻으려면, 계절근로자 제도를 둘러싼 참여자들이 사고를 전환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과 분쟁은 피할 수 없지만, 이러한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중재한다면 조금은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안정적인 입국과 기본적인 근로계약의 준수가 가능한 제도적 토양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는 정도의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필자 김주영: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 싱가포르, 필리핀을 오가며 이주노동자, 이주민 커뮤니티,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를 연구했다. 지금은 다변화된 한국 내 이주노동의 지형을 따라 유학생과 결혼이주여성의 노동과 커뮤니티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