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현 진안마을(주) 대표
전라북도 진안군. 예전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 하나로 꼽혔지만, 지금은 ‘마을만들기’의 메카로 이름이 나 있다. 마을 대표들로 이루어진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와 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행정과 연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민을 돕고 지역이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그리고 이곳엔 진안마을주식회사가 있다. 얼핏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농업회사로 보이지만, 진안군의 930여 농가가 이루어낸 진안군 로컬푸드사업단이다.
“농업정책은 이제 ‘농촌정책’으로 바뀔 때예요. 예전에는 밥을 굶지 않는 일이 최대 목표였지만 지금 우리 농업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대규모화, 억대농가 육성 같은 정책을 펴면서 대다수의 소농이 소외되고 농촌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강주현 진안마을(주) 대표(제22회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의 말이다. 진안마을은 소농, 고령농, 가족농들이 주체가되어 만들어졌고, 개인이 아니라 마을단위 공동체가 협력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득을 공유하기 위해, 그리고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회사다.
참 좋은 ‘참여 비례 배분제’
진안마을의 이윤 배당의 방식 역시 좀 특이하다. 배당은 투자배당, 소비자 배당, 그리고 참여배당으로 나누는데 투자 배당이 가장 나중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투자금에 따라 이익을 배분하면 소액주주들은 가져갈 것이 별로 없어요. 사업에 얼마나 참여했는가에 따라 배당을 합니다. 누가 가장 중요합니까?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이죠. 그다음은 물건을 사준 소비자, 투자에 대한 배당은 그다음이 됩니다.”
최소한의 이윤만 추구한다는 회사의 특성 덕분에 참여 비례 배분의 원칙이 가능하다는 것이 강 대표의 설명이다. 이윤이 생기면 나누고, 손실이 나면 생산자 스스로 배당을 돌려주면서 마을 기업을 유지한다. 2011년, 100여 명으로 시작한 진안마을은 현재 실권주주 231명을 포함해 930명의 농민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와 일반인 주주도 모집하고 있다. 생산자, 임직원, 소비자가 모두 주주가 되는 공동체가 진안마을의 미래라고 강 대표는 믿는다.
지산지공, 막막한 삶의 대안으로 시작
이름도 생소한 ‘참여 비례 배분제’는 사실, 강주현 대표가 와룡마을 위원장으로 마을 공동사업을 하던 때부터 있었다. 1996년 용담댐 건설로 수몰민이 된 11가구가 모여 새롭게 만든 마을에는 농토도, 자원도 거의 없었다. 한 뼘의 땅도 아쉬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강 대표가 주도하여 산초가공을 마을 공동사업으로 시작했고, 마을주민들은 ‘함께한다’는 것에 희망을 보았다.
이듬해부터 참기름, 들기름, 그리고 지천으로 깔린 달맞이꽃을 따다 달맞이꽃씨유를 만들었고,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장을 담그는 주민의 레시피로 된장, 고추장을 가공해서 직거래로 팔았다.
마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뜻으로 만든 ‘지산지공地産地工’이라는 신조어는 마을의 슬로건이 되었다.
“먹고 살 일이 암담했는데, 산초로 공동사업하고 이익을 나누니 다들 좋아했어요. 그런데 3년쯤 지나니까 열심히 하는 사람이 뒤로 빠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열심히 하나 안하나 배당은 똑같이 받으니까요. 그래서 농민이 농산물을 생산해서 마을에 내면 먼저 값을 쳐주었어요. 또 마을 사업에 참여하면 참여한 만큼 인건비를 주고, 투자에 대한 건 가장 나중으로 돌렸어요. 그랬더니 마을이 잘 돌아갔지요.”
참여 비례 배분제는 마을 사업 성공의 핵심이 되었다. 강 대표는 이러한 체계를 잡기 위해서는 마을시작 초창기에 해야 하고, 지도자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몫을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마을의 성패는 ‘사람’에 달려있습니다.”
마을만들기, 농민이 주축이 되고 행정이 돕다
강 대표는 와룡마을 위원장으로 진안군 마을 위원장들과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친목 도모를 하자는 거였어요. 이 마을 가보고 저 마을 가보고 서로 아이디어를 얻어 마을 사업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거였죠. 그런데 날이 갈수록 잘되는 마을은 쭉쭉 뻗어가고, 또 어떤 마을은 처지고. 점점 격차가 벌어졌어요. 그래서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찾으면서 지금의 중간지원조직 형태가 된 거죠.”
마을만들기지구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낸 것이 지금의 로컬푸드사업이다. 2009년에 시작, 마을만들기 사업을 산업화로 전략화해야 한다는 공감으로 2011년 소프트웨어, 컨설팅, 교육영역의 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경제영역의 로컬푸드사업단으로 조직이 결성됐다.
“마을만들기 지구협의회가 활발히 움직이면서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틀이 잡혔습니다. 마을만들기는 이제 진안군의 핵심사업이고, 행정의 수장이 누구이든 흔들리지 않게 정착되었습니다.”
행정 중심이 아닌 자발적인 농민조직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행정의 적극적인 도움을 이끌어냈다는 데서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높이 평가받는다.
‘직매장’이 아닌 ‘플랫폼’으로
진안군의 로컬푸드사업단은 6차 산업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현재 북부마이산 개발지구에 6차 산업화 사업으로 로컬푸드 판매장과 식당, 발효를 테마로 하는 공원과 체험장 등 복합적인 대규모 단지 건립이 한창이고, 2015년이 되면 그동안의 결실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강주현 대표는 여기에 들어설 농산물판매장을 요즘 많이 쓰이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라는 말 대신‘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하려 한다.
“우리 농산물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요? 바로 농민입니다. 밥도 제일 많이 먹고 반찬도 다 해먹지요. 그런데 우리는 농산물을 도시소비자한테만 팔려고 해요. ‘직매장’이라는 말도 물건을 팔고 사는 개념이에요. 농민이 자신이 기른 깻잎을 매장에 내고, 또 옆집에서 키운 호박을 삽니다. 농산물을 판매할 뿐 아니라 교류하는 곳입니다, 기차역처럼.”
지역 먹거리를 교류하는 플랫폼에는 사람이 있고, 이웃이 있고, 나눔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삶의 의미가 더 도드라질 것이다.
“돈을 쓰면서 뭔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치경제’입니다. 가치경제가 연착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겠지만, 진안마을이 계속 그 불씨를 살려갈 것입니다.”
낡은, 빛바랜 사진들이 있다. 사진 속 청년은 지금 노년을 바라보고 있고, 사진 속 노인의 상당수는 생을 달리했다. 치열하고 절박했던 시간, 아직도 그 시간은 강주현 대표에게 아픔이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잃었던 사람들과 다시 살아갈 희망을 키웠고, 그가 키운 희망은 이제 작은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이 희망인, 더 좋은 세상이 그렇게 온다.
글 신수경 / 사진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