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워야 할 수확의 계절이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하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이라는 거대한 풍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쌀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과 함께해온, 말 그대로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 농업의 근간이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를 높게 매겨 수입 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겠다고는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관세가 무너져 수입 쌀이 무제한 들어올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있다. 그나마 지탱해오던 쌀 생산 기반이 황폐해지고 식량 주권도 크게 위협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지난 20년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쌀을 수입해 왔다. 정부는 2013년 쌀 의무수입량이 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하는 40만9천 ton까지 늘어난 점을 들어 7월 18일 쌀을 전면 개방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WTO에 쌀 관세율을 513%로 정한 수정양허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국내 쌀 시장이본격 개방된다.
쌀 관세율이 500% 이상 높게 책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수입 쌀의 시장가격은 80kg 한 가마니에 27만 원~52만 원이 되어, 16만 원~18만 원인 국내산 쌀과 경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관세율은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 언제나 하향 조정될 수 있다.
WTO 회원국의 동의 절차가 아직 남아 있고, 쌀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관세율을 낮추라고 요구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WTO 양자협의 과정에서 얼마나 부담을 안아야 할지 또 어떤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농민들의 생존과 직결되고 국민들의 식량주권과 연결되는 쌀 시장 전면 개방이라
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여론이 지배
적이다. 국민과 농민들을 상대로 정성을 다해 쌀 시장 전면 개방 문제를 이해시키
고 설득시켜도 부족할 판에 실타래를 더욱 엉키게 했다.
확정되지 않은 고율 관세에 기댄 쌀 개방 정책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한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앞으로 있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의 협상에서 쌀이 제외될 지도 불확실하다. 이처럼 확정되지 않은 고율 관세에 기댄 쌀 시장 전면 개방 정책을 국민들이 어떻게 간단히 수용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부실한 대책도 문제다. 정부는 농가 소득 안정 강화, 규모화 · 조직화 등 경쟁력 제고, 쌀 소비 · 수출 촉진 등을 골자로 한 쌀 산업 발전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렇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타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농업을 홀대하면서 필요한 예산도 적극적으로 확보하지 않는 대책은 실효를 기대할 수 없는 임시방편의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둘러싼 국민들과의 소통 단절 및 부재는 쌀 정책 추진에 있어 더욱 큰 장애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농민들의 생존과 직결되고 국민들의 식량주권과 연결되는 쌀 시장 전면 개방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국민과 농민들을 상대로 정성을 다해 쌀 시장 전면 개방 문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도 부족할 판에 실타래를 더욱 엉키게 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국민은 무엇을 걱정하는가
정부는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대해 국민들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 고율 관세 유지와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 쌀을 양허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적극적인 입장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쌀 생산기반을 지켜낼 수 있는 주도면밀한 종합 대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쌀 산업 발전에 대해 우왕좌왕했던 정부 대책을 되돌아보면서….
둘째,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온 개방 일변도 농정 때문에 우리 농업·농촌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국민들의 우려와 비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쌀은 정서상 우리 농업의 최후 보루이며, 우리 생명밥상 주권을 지켜주는 굳건한 버팀목이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3%로 떨어졌고, 쌀 자급률도 80%대인 상태다.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은 3.7% 수준에 불과하다.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우리의 농업 기반과 생명 밥상 주권도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을 결코 허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시민 사회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산자도 소비
자도 모두 함께 더 늦기 전에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은 결코 6%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4%의 국민 모두와 우리 후손의 생
존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다. 생태계 보전, 자연경관 유지, 홍수 조절 등 우렁각시
처럼 묵묵히 수행해온 쌀의 공공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 조 원에 달한다.
셋째,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둘러싼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충실히 제공해야 한다. 쌀 시장 개
방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정부가 과연 쌀 관세화에 대한 대책들을 제대로 알리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이루어내는 데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이 정한 대로 민주적인 의견 수렴을 거치고 주권국가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은 마땅히 관련 정보를 알아야 한다.
넷째, 그동안 농업과 농민이 수출 경제를 위한 FTA 추진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해왔고, 농촌경제가 빚더미에 몰린 것도 정부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앞으로 쌀 시장 전면개방이 미칠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이는 충분한 소통 및 협의가 필요하고 지혜로운 정책발굴과 내실 있는 제도 개선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정부는 수확철에 논을 갈아엎고 농기계를 반납하는 성난 농심을 어루만져 줄 책무를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된다.
쌀 시장 개방, 국민과 후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시민 사회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함께 더 늦기 전에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첫째, 쌀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 및 학습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쌀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다각적인 시민 참여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 쌀을 바라보는 농정패러다임의 과감한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쌀 시장 전면 개방은 결코 6%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94%의 국민 모두와 우리 후손의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문제다. 생태계 보전, 자연경관 유지, 홍수 조절 등 우렁각시처럼 묵묵히 수행해온 쌀의 공공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조 원에 달한다.
둘째, 우리 후손들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막기 위해 농민 단체, 생협 조직 등
시민 사회와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쌀 시장 전면 개방정책을 막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쌀 시장 개방으로 국내 쌀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면 쌀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식량 자급률 하락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인한 기상재해라도 일어나면 이제 돈을 주고도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아찔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조직만의 문제도 우리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쌀이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로 남고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밥상을 차릴 수 있
도록 지금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지혜롭게 이겨내기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
다. 아울러 쌀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밥 중심의 한국형 식문화를 유
지 · 확대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럴 때 우리가 그랬듯이 훗날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생산자와 소비자가 합심해 쌀 생산기반을 확대하고 쌀 자급력을 향상하는 데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쌀밥 중심의 전통적 밥상 문화를 지키고 쌀 관련 물품을 확대하고 이용을 늘려야 한다. 쌀밥 중심의 전통적 식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한 국민운동과 지역 운동을 활발히 조직하고 전개해야 한다. 쌀이 우리 밥상에서 누리던 절대적인 우위가 흔들린 지 오래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 1980년 132kg에서 2013년 67kg으로 30여 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해마다 논 면적도 줄고 농사를 포기를 일도 늘고 있다.
쌀은 우리 땅에서 유구한 세월 우주 만물의 협동과 농부들의 땀과 정성으로 이어져 왔다. 앞으로도쌀이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로 남고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지금 쌀 시장전면 개방을 지혜롭게 이겨내기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아울러 쌀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밥 중심의 한국형 식문화를 유지 · 확대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럴 때 우리가 그랬듯이 훗날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는 확실한 길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필자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직거래운동을 펼치는 한살림에서 24년 째 일하며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변화, 핵 위협과 에너지 고갈, 농업과 식량위기 등을 고민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