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화 개방과 쌀 산업의 미래

1995년 WTO 출범 이후 20년에 걸친 관세화 유예 끝에 쌀산업이 드디어 전면 개방의 수순
을 밟고 있다. 정부는 관세상당치Tariff Equivalent, TE 를 근거하여 관세율 513%에 그간 관세화 유예과정에서 허용했던 의무수입물량 Tariff-rate Quota, TRQ의 국가별 할당과 밥쌀용으로 30%를 수입해야하는 용도별 배정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2015년 1월부터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할 것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초 식량이며
한국 농업의 중심축인 쌀 산업이 전 세계 쌀 산업과 무한경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수입 가격의 5배가 넘는 고율 관세에 수입이 급증할 경우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수있는 특별긴급관세 Special Safeguard, SSG가 있기 때문에 쌀 수입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농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 글은 관세화 개방이 불가피한 것인지, 관세화 개방을 하더라도 농민들의 피해는 과연 없을 것인지, 관세화 개방에 대비한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본다.

또다시 관세화 유예, 가능한가?
2015년 관세화 개방을 두고 WTO 농업 협정에 따라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과 추가적인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관세화 개방은 최근의 쌀 산업 여건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관세화 유예를 한 필리핀 사례나 국제 협상의 특성을 고려할 때 관세화 유예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에 따른 경제적득실일 것이다.

2015년 관세화 개방을 두고 WTO 농업 협정에 따라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과 추
가적인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이미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은 되돌리기 어려운 과정에 있다. 만약 또다시 관세화를 유
예한다면 추가될 것으로 예상하는 TRQ 물량이 쌀 산업뿐만 아니라 농업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970년대 136kg에 달했던 국민 한 사람당 연간 소비량이 매년 감소하여 2013년에는 67kg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쌀 생산이 공급과잉 흐름을 나타내고 가격을 하방으로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관세화 유예과정에서 그 대가로 지불했던 TRQ 물량이 41만 ton으로소비량의 9% 수준에 이른다. 만약 또다시 관세화를 유예한다면 추가될 것으로 예상하는 TRQ 물량이 쌀 산업뿐만 아니라 농업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추가되는 TRQ 수준은 협상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고려할 때 낙관하기어렵다. TRQ 수입의 증가에 따른 쌀 가격 하락으로 정부가 부담해야 할 쌀 직불금의 증가도 관세화결정에 힘을 실었을 것이다.

쌀 시장의 관세화 개방은 일부 농민 단체를 제외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쌀의 관세화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축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배경에도 이런 암묵적인 지지와 함께 미미한 수입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은 되돌리기 어려운 과정에 있다. 그러나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모든 비관적 가능성을 검토하여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고, 이해 당사자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함께 쌀 시장 개방이 가져올 문제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와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관세화에 인한 수입 가능성은 미미하다?
관세화에도 불구하고 TRQ 이외의 물량이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 최근의 국제 쌀 가격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이며, 조만간 다시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율 또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경험과 거시경제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급격한 변동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513% 관세로 개방할 경우 수입쌀 가격이 최근의 산지 가격보다 높기 때문에 TRQ
이외의 물량이 수입될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가격에 환율과 관
세, 모든 비용을 적용한 수입산 공매가격을 국내 산지가격과 단순 비교해 수입 가
능성이 없다고 분석하는 것은 분포의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수입 가능성에 대
한 분석이 평균적인 가격이 아니라 생산비가 낮은 농가들과 비교해야 하는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국제 쌀값과 환율을 기준으로 513% 관세로 개방할 경우 수입쌀 가격이
80kg당 277,000원~522,000원으로 최근의 산지 가격 174,871원보다 높기 때문에 TRQ 이외의 물
량이 수입될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연구소인 GS&J도 정부가 결정한 관세율을 관철시킬 수 있는 한 앞으로 10년간 추가 수입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의 문제는 평균적인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가격에 환율과 관세, 모든 비용을 적용한 수입 쌀 공매가격을 국내 산지가격과 단순 비교해 수입 가능성이 없다고 분석하는 것은 분포의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평균이란 다양한 대안(수입 가격)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경우를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역으로 평균 이외의 대안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실질적인 위험은 평균 이외의 상태, 즉 평균보다 낮은 가격에서의 수입 가능성에서 발생한다. 수입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평균적인 가격이 아니라 생산비가 낮은 농가들과 비교해야 하는 이유다.

연속적으로 풍작을 기록한 지난 2년간 국내 모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206개 브랜드 쌀의 소매가격은 평균 26만 원, 최고 56만 원에 이른다. 이는 현행 TRQ 수입 과정에서 국영무역체계의 가격을 근거로 미국산 쌀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쌀 농가의 생산비에서 유통단계별 마진과 관세를 고려해 추정한 국내 소매가격은 가장 생산비가 싼농가는 24만 원, 평균 생산비 농가도 29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그림 1).
국내산 쌀 브랜드의 20%(42개)가 수입산 평균가격보다 비싼 값에 팔리고 있으며, 가장 효율적인
생산 농가의 공급 가능 소매가격보다 비싼 브랜드가 47%(97개)가 넘는다. 국내산을 선호하는 국산프리미엄 20%를 적용하더라도 25%(52개)가 넘는 브랜드가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미국산 쌀은 국내 대형마트에서 잠재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마케팅 능력을 고려하면상당한 시장점유율도 가능해 보인다.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 수출업자들은 시장침투가격전략Market Penetration Pricing을 비롯해 1+1이나 끼워 팔기, 쿠폰, 샘플증정, 시식회 등 다양한 판촉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미국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는 농가가 훨씬 더 많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긴급관세SSG에 대한 과신도 금물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본이 관세화 이후 22회의 SSG를 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3년 평균 수입량보다 5% 이상 수입될 경우 발동되는 SSG는 쌀 수급의 비탄력적 특성을 고려할 때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 또한 SSG의 잦은 발동은 그 자체로 수입쌀의 국내시장 잠식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소위 “관세 따먹기”를 위해 수입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것도 우려해야 한다. 만약 500달러짜리 쌀이 수입되면 관세 500%를 포함해서 3,000달러가 되지만, 이를 400달러로 신고하면 2,400달러가된다. 다행히 정부는 이에 대비해 쌀을 사전세액심사 대상으로 편입해 불법적인 저가신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다.

13

관세화 개방의 가장 커다란 위협은 현재 진행 중인 WTO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 DDA 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이라고 볼 수 있다. DDA 협상의 문제는 만약 선진국 자격으로 타결될 경우 5
년간 관세를 46.7% 감축하고 의무수입물량을 3.5% 늘릴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쌀 관세율은 513%에서 274%로 줄어 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엄청나리라는 것
이라는 것이다.

DDA, TPP 등 시장개방 협상, 문제없다?
관세화 개방의 가장 커다란 위협은 현재 진행 중인 WTO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DDA 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이라고 볼 수 있다. UR 후속 협상으로 농업 부문의 추가 개방을 추진하는 DDA 협상은 2001년부터 3년 예정으로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타결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DDA 타결을 위한 국제사회와 수출국들의 노력이나 UR의 사례를 고려할 때 불시에 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DDA 협상의 문제는 만약 선진국 자격으로 타결될 경우 5년간 관세를 46.7% 감축하고 의무수입물량을 3.5% 늘릴 가능성이 높고, 이경우 쌀 관세율은 513%에서 274%로 줄어 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엄청나리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가 자기 선언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농업 부문에서 개도국이라는 입장을 관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 정부의 선의나 의지를 믿는다 하더라도, 이 문제가 국내 여타 산업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갈등을 야기할 경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환태평양 12개국의 자유무역협정인 TPP는 더 위험한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간쌀 수입자유화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최근 군사적, 외교적 행보를 고려할때 미국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 경우 우리가 TPP에의 참여를 원하는 한 쌀관세율을 대폭 감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DDA나 여타 자유무역협상에서 쌀을 양허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UR 협상당시 한 톨의 쌀도 수입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이 식언이 된 사례나 한-중 마늘 분쟁, 쇠고기 수입 개방 등의 사례를 고려할 때 정부의 약속도 이미 신뢰가 낮아졌음을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DDA나 TPP 등 추가적인 시장 개방의 경우 쌀을 양허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법적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세화 논쟁의 핵심은 경제적 효과분석의 타당성이나 정부의 선의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의 문제일 것이다. 조그만 구멍이 둑을 무
너뜨리고, 약간의 방심이 국가의 식량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정부는 쌀
관세화가 예상했던 상황과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때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수
입관리와 농민 보호, 식량 안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비해야 한다. 앞으로 10
년간 쌀 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100년 후의 식량 안보를 고려한 대
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100년 후 식량 안보를 대비한 개방대책이 필요하다
관세화 논쟁의 핵심은 경제적 효과분석의 타당성이나 정부의 선의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의 문제일 것이다. 조그만 구멍이 둑을 무너뜨리고, 약간의 방심이 국가의 식량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여러 전문가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쌀 관세화가 예상했던 상황과 다른 결과를 초래했을 때도 충분히 대비할수 있는 수입관리와 농민 보호, 식량 안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비해야 한다. 앞으로 10년간 쌀 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후변화가 식량문제에 치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음을 고려할 때50년이나 100년 후의 식량 안보를 고려한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품질 향상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우수한 제품 개발도 필요하다. 돌발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쌀 산업과 시장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정책적 보호수단도 완비해야한다. 수입시장이 개방된 만큼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과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 쌀 산업은 관세라는 우산 하나만 주어진 채 비바람 치는 들판에 내던져졌다. 쌀 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생산자, 소비자, 정부의 전 방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 양승룡: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농업정책학회 회장 역임.
농림축산식품부 농가소득안정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농업,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11, 교우사), 『국제 탄소시장의 이해』(2009, 집문당)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