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기 황가네 농장 대표
블로그, 페이스북에서 보던대로다. 정겹게 꼬리를 흔드는 풍산개 몽실이부터, 철도 옆 복분자
밭, 원두막이 있는 마당, 아늑하게 둘러싼 내장산. 그 아래 자리잡은 집. 그동안 보고, 듣던 농장
의 소식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집이 다른 집하고 좀 다르게 없는 게 있어요. 뭘까요?”
자세히 둘러보니 이곳에는 대문이 없다. 지나온 길옆으로 넓은 마당이 바로 펼쳐진다. 내장산 등산객이나, 관광객 · 탐방객들이 지나다가 잠시 들러 원두막에 앉아 쉬어갈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언제나 활짝 열려있는 곳. 이곳의 주인 황선기 황가네 농장 대표(49, 2013년 연수자)를 만났다.
복분자와 오디, 100%, 소비자와 직거래
황 대표는 이제 귀농한 지 6년 차. 현재 2,000평의 밭에 복분자와 오디를 재배하고 있다. 복분자와 오디는 따서 씻지 않고 바로 먹는 과일이기 때문에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풀을 일일이 뽑아주며 기르고 있다. 복분자밭에는 붉고, 검은 복분자가 마치 꽃처럼 열려있다. 6월 한 달이 수확의 적기. 이때가 제일 바쁘다. 하루에 여러 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확하고, 수확한 생과를 냉동 저장하고,택배 보낼 상품 포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수확한 복분자와 오디는 30%는 생과로 그리고 나머지 70%는 가공해서 즙이나 원액 등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유통 경로는 99.9%가 온라인판매. 0.1%는 현장 판매죠.”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 100%를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것.
“복분자가 올해 풍작이에요. 가격이 폭락했죠. 하지만 우리 농장은 20%만 가격을 낮췄어요.”
올해 황가네 농장 복분자 10kg은 12만 원이다. 시중가보다 비싼 황 대표의 복분자를 믿고 찾는 소비자들의 주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쌓은 신뢰 때문이다. 그동안 소비자와 소통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홈페이지와 블로그, SNS 등이 지금은 톡톡히 농장 홍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생산과 가공을 넘어 행복한 농촌의 스토리를 전하다
황선기 대표는 지난 2009년 고향인 정읍으로 귀농했다.
30년 동안 몸담았던 출판사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귀농하기까지 3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귀농한 첫해 지금의 복분자밭에 고추 3,000주를 심었다.
1년 동안 열심히 길러 손에 쥔 돈은 300만 원.
“가격 결정권이 없더라고요. 그땐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경매사들이 종 몇 번 치고 가격 정해버리고 끝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전에 지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물인 오디와 복분자를 키우기로 했다.
복분자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재배방법이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2차 가공도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매는 소비자와 1:1 직거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직접 농장 블로그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당장 판매할 복분자 상품은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농촌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시골의 소박한 밥상 이야기부터 농촌의 하루, 농장의 소식, 귀농 관련 정보 등을 블로그에 담았다.
도시민의 태를 다 벗지 못한 황 대표 부부에게도 농촌의 삶은 신기했다. 눈길 닿는 곳, 손길 머무는 곳, 발길 닿는 곳의 모든 일이 새로웠다.
그렇게 농촌에서의 하루를 인터넷상으로 사람들과 공유하고, 금세 황가네농장 이야기를 듣고 보고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도시민의 메마른 감성을 깨워주는 진솔한 농촌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2012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고객기반사이버콘텐츠 개발 UCC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농어업인블로거대상’에서 우수상을 받는 등 온라인을 통한 농장 홍보와 고객 관리 등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채널이 더 다양해졌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SNS를 통해 소비자와 더 가까워졌다. 페이스북 친구는 5,000명, 블로그 이웃은 4,800여 명.
블로그 누적 방문객은 무려 300만 명이다.
농사짓느라 바쁜 와중에도 블로그와 홈페이지, SNS 관리를 매일 꾸준히 한다.
“밥은 안 먹어도 페이스북에 글은 올려요. 지금 하루라도 안 올리면 전화가 옵니다. 무슨 일 있느냐고요.”
이렇게 그는 도시민들에게 농촌의 메시지를 전하며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지역과 상생하는 발걸음
“요즘 농촌도 많이 달라졌어요. 주민들 마음이 많이 닫혀 있어요.”
귀농 · 귀촌하겠다는 사람들이 잠깐 왔다가 다시 떠나고, 그러면서 주민들도 많은 상처를 받고 방어하는 것이다. 황 대표가 귀농하던 해 귀농귀촌인은 모두 76명, 그해 12월에 남은 사람은 24명. 현재는 4명만이 남아 정착하고 있다.
이런 지역 주민들의 마음의 문을 먼저 두드리고 손을 내민 것은 바로 황 대표이다. 지역과 함께 상생하기 위한 노력을 실천한 것이다. 현재 지역의 7개 농가의 농민이 생산한 복분자를 수매해 가공 · 판매하고 있으며, 농장 매출의 3%는 정읍시에 기부해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복분자와 함께 넣어 보내는 사은품은 정읍 지역의 떡업체의 떡과 그리고 이웃 농장의 잡곡을 이용한다.
“이 잡곡을 밥 한 번 지을 때 넣을 분량으로 소포장해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죠. 효과가 아주 좋아요. 잡곡농장 홍보도 되고,실제 구매로도 이어지고요. 블로그도 SNS도 모르던 양반이 이제 카카오스토리도 시작했어요.”
이렇게 지역 주민들이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지역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실천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올해 황가네농장은 투명하게 경영하고 더 많은 지역민이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기위한 첫걸음으로 ‘농업회사법인’으로의 전환도 마쳤다.
귀농 6년 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황 대표는 이제 자신의 노하우를 보다 많은 농민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시군기술센터에서 온라인을 통한 유통과 판매 성공사례발표도 하고, 농장에 견학 오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알려준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이탈리아 모데나의 유기농 발사믹 식초 농장을 견학하며 얻은 아이디어로 복분자 식초 개발도 연구 중이다.
“지역의 명품으로 자리 잡은 발사믹 식초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12년, 25년, 40년산 명품으로 브랜드화돼서 인정받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물론 상품으로 개발하기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요. 꼭 만들어내야죠.”
“복분자하면 황가네농장을 떠올릴 수 있도록 브랜드화하고 싶어요.”
제2대 황가네농장의 대표를 맡겠다는 든든한 두 아들 석민(23), 성현(21)과 귀농한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삶을 걷고 있는 짝꿍 박양숙(48) 씨가 함께 있어 든든하다.
황 대표는 오늘도 농촌에서의 행복한 삶을 도시민과 나누고, 지역민들과 함께한다. 행복한 농부가 전하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글 · 사진 /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