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 연대로 함께 잘사는 농촌공동체
독일·오스트리아의 농촌

이것이 국가다. 독일을 며칠 돌아본 느낌이다. 국가로서 독일은 단정했다. 정리정돈이 잘 된 사
회였다.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켰고 운전자는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았다. 온 국토의 풍광은 마치 생태공원 같았다. 사람으로서 살만한 세상처럼 보였다.
농촌은 단아했다. 길에 휴지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았다. 농부들은 굳이 농사로 돈 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국가에서 소득을 보전해주니 그럴 필요가 없다. 마을마다 치유생태 마을의 경관이 펼쳐졌다. 농민들도 단정하고, 단아하게 살고 있었다.

농촌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국가와 정부를 믿는 농민들
8박 10일의 일정으로 독일·오스트리아의 농가와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중요한 화두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내 그 화두에 매달렸다. “결국, 농부의 만용과 욕심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상책이 아닌가.”
독일의 농정 목표는 ‘돈 버는, 또는 돈 되는 농산업’이 아니다. 한마디로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
한 삶의 질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생활 농촌의 철학과 가치’에 두고 있다. 모든 농정의 행정과 현장이 공평하고 공정한 농정 목표와 가치를 실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농민들은 굳이 만용도, 욕심도 부릴 필요가 없다. 그럴 여지와 위험을 사전에 법과 제도로 차단하고 예방하고 있다.
물론 관광농업이니 농식품 가공이니 유기농이니 ‘돈도 되는 농업 전략과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농지를 보전하고 농민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연간 수십억 유 로에 달하는 보조금을 농민에게 지원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기업농·대농이 농산업을 주도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경쟁적이거나 독과점적으로 농업을 상업화하지 않는다. 중소농도, 영세농도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 농촌 생태계를 지키고 있다.
놀랍게도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까지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는데 주로 농업 예산을 투자하고 노력한다. 굳이 떠날 생각이 들지 않도록 농업 소득만큼 농지보전직불금을 정부가 지급한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아야 하는 농민들의 기초 생활 정도는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정부를 농민들은 믿는다.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평야 지대가 70%를 차지하는 독일은 농지도 넓다. 국토 면적의 절반이 넘는 52.4%이다. 산악 지
형이 70%인 한국과 정반대 조건이다. 하지만 독일도 농가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농지 면적은 큰 변화가 없다. 정부에서 농지를 보전하는 정책을 철저히 고수하기 때문이다. 37만여 농가(125만 농민)가 평균 40여ha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110만여 농가(280만 농민)의 한국은 평균농지가 1.5ha 수준에 불과하다. 비교가 무의미하다. 한국은 그저 농사를 지을 뿐, 농업은 가능하지 않은 형편이다.

농지 보전과 농민의 생활 보호를 위해 전체 예산의 46.5%를 농가 보조금으로
독일 농가는 연간 250억 유로(약 34조 7천억 원)의 소득을 밀 등 곡류로 올린다. 낙농, 축산은 총
221억 유로, 우유가 95억 유로, 돼지고기 66억 유로, 소고기 38억 유로, 양계 19억 유로 수준이다.
평야 초지가 넓은 장점을 살려 축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들어 생산원가 부담이 큰 과일, 채소 등은 주로 인근 국가에서 수입한다.
농업의 매출은 독일 전체 GDP의 0.8%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은 3% 수준이다. 한반도 1.5배 크기의 독일 국토 절반의 땅을 농지로 사용하는 농업이 겨우 0.8%의 GDP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의아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 버는 농업, 상업농’이 농정의 최고 목표가 아니라는 명백한 방증이다.
대신 농지를 보전하고 농민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연간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보조금을 농민에게 지원한다. 2010년을 기준으로 EU의 총예산 1,229억 유로 가운데 농가에 571억 유로가 지원됐다.
전체 예산의 46.5%에 해당한다. 437억 유로는 농가에 직접지불금 형태로 지원하고 경관보전, 농촌지역개발 분야의 간접 지원도 챙기고 있다.

유럽의 농민 수입은 도시 노동자의 수입과 비슷하다. 1차 생산뿐만 아니라 농식품 가공 및 판매, 농가민박, 관광농업 등으로 소득창출 경로를 다양화 하고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농가당 소유한 농지 면적 기준으로 지원금이 산정된다. ha당 340유로(약 47만 원)꼴이다. 가령, 독일 내 소농 약 19만 농가는 농가당 연평균 1,590유로의 직불금(약2,2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전체 농가의 1.5%인 이른바 대농 5,690 농가는 농가당 연간 28만 3,105유로(약 4억 원)를 지원받는다.
전체적으로 농가의 수입은 농민 1인 기준으로 연간 2만 5,300유로(약 3,500만원, 2007년 기준)이다. 평범한 도시 노동자의 수입과 비슷하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먹고 살 만한 수준이다. 독일의 농민들, 특히 소농들은 치즈, 육류 등 농식품 가공,농가민박, 농촌체험 등 관광농업,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소득창출 경로를 다양화하고 있다. 따라서 부가가치 또한 높아진다.
농민들은 무엇보다 혼자 하는 재래식 농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절감하고 있다. 협동하고 연대하는 생산자조합형Gemeinschaft 농업경영방식을 농촌공동체 활성화의 대안으로 삼고 있다.

‘협동과 연대’로 함께 잘사는 농촌공동체
오스트리아 슈바츠 군 단위 농업회의소는 한국의 시·군 단위 농정과와 농업기술센터의 역할을 대신하는 곳이다. 업무와 책임은 국가기관과 다를 바 없지만, 회장은 정규 공무원이 아니라 4년 임기의 선출직이라는 특징이 있다. 농업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상근 인력의 인건비, 경비 등은 일체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 교육비, 지도비 등은 별도 수입으로 관리한다. 한국도 농어업회의소 법안이 발의 되어 있다. 이미 시범 사업이 진안, 나주, 거창 등지에서 시행 중이다.
오스트리아 홀러 가족농은 부부가 단출하게 농장을 꾸려간다. 국가 최고의 지역 농특산물에 주어지는 ‘맛의 왕관 Gueness Krone’ 최고상을 받은 농민 마이스터다. 그럼에도 정부 보조금을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지원은커녕 오히려 치즈 등 농식품 가공을 하려고 별도의 자격증도 따고 교육비도 전적으로 자부담했다. 농업회의소에서 400시간 교육받는데 3,000유로(약 450만 원) 정도를 냈다.
농사든, 농업이든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나라 국민들이 농업에 임하는 철학이고 자세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켜낼 각오가 있는, 농업학교를 졸업하여 농부자격증이 있는 농사 전문가가 농업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디스마스 훈제생햄 맛인증 농가. 농민이 스스로 최고 품질의 가공품을 생산해 농업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디스마스 훈제생햄 맛인증 농가는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미밍마을의 가족농이다. 농장주 마틴 알버는 직접 사육한 돼지로 티롤 지방 전통 방식의 수제 육가공품을 제조, 직판하고 있다. 농장주 마틴알버 씨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육가공분야 마이스터로, 자체 연구 · 개발한 육가공 기술 및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농장주의 아들 역시 가업을 잇기 위해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정규학교 과정 이외에도 농업마이스터시험, 티롤 농업회의소의 육가공, 마케팅 등 정기보수교육과정 등을 이수하며 전문 농업인의 길을 가고 있다.
독일의 ‘라인스바일러 포도주 마을’은 지역의 14개 마을이 연합한 일종의 통합 관광 농업 브랜드다. 거점 마을의 경우 전체 180가구 중 와인농가는 16가구뿐이다. 하지만 다른 농가는 와인시음장, 호텔급 민박(농가당 9객실이하) 등을 운영하며 서로 연계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협동과 연대를 통한 지역공동체 활성화 상생해법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국민농업’, ‘공익농업’, ‘지역농업’으로, 독일처럼 우리도
우리 농업, 농민, 농촌의 살길은 크게 세 갈래 정도다. 농정의 정책이나 제도, 전략 개발 이전에 더 중요한 게 있다. 근본적인 농정의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선, 생산자인 농민만의 고립된 농업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이자 국외자인 국민들도 함께 농정 책임의 주체로 동참해야 한다. 이른바 ‘국민농업’이라야 한다. 또 농업은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식량주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국가기간산업의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농업이, 기업농이나 상업농이 아닌 ‘공익농업’으로 인식되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초국적자본이나 세계열강과 자유무역전쟁에서 농민은 물론 국가로도 역부족이다. 승산이 희박하다. 결국 지역 단위에서, 마을공동체 단위로 자급하고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지역농업’의 기틀부터 다져야 한다.
협동과 연대를 통한 ‘국민농업’, ‘공익농업’, ‘지역농업’이 우리 농정의 해법이자 대안이다.

※필자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시인. 농어촌개발 컨설팅을 하며 농어촌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지역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오래된 미래마을』(2005, 에세이),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2011, 이매진),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2011, 소나무)이 있다.
마을연구소 커뮤니티 http://cafe.daum.net/Ec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