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넘게 살았던 곳이지만 서울만 가면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다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또르륵 또르륵’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뛰었다. 다행스럽게도 도착한 열차를 무사히 탈수 있었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하자 함께 뛰었던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뛰었을까.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많은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한 시골에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폐교를 고쳐서 만든 사무실의 너른 논이 한껏 보이는 창 앞에 향을 피운다. 일과시간에는 회의를 하거나 강의와 상담을 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업계획을 기획하기도 한다. 맡은 일 중의 하나는 귀농, 귀촌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밤늦은 저녁, 가로등도 없는 시골 길을 혼자 운전하는 일이 잦지만 서울처럼 무섭지 않다.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 휴가철에도 쉬지 못해도 이 시골이 서울처럼 싫지 않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내가 일하는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는 농촌 지역에 필요한 일을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그 일을 공동체 사업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청소년 교육을 지원하는 북카페, 다문화 여성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과점, 장애인들의 청소·방역 사업단, 어르신들의 반찬 가게, 귀촌한 어르신들의 목공소, 대안에너지를 고민하는 화덕연구소,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텃밭사업단, 돈도벌고 건강도 챙기는 어르신 농악대 등의 창업을 도왔다. 대부분 사업은 공모 사업을 통해 주민 창안으로 시작된다. 사람은 없고 사업 아이템만 있는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우리 센터 직원들 역시 자신이 필요한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 방과후 학교가 좋아졌으면 해서 방과후 학교 협동조합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우리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에 변변한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없어 학부모와 함께 학생, 학부모를 위한 작은 카페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막 출산을 했거나 출산을 앞둔 직원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집을 지어야 하는 친구들은 주택협동조합을, 앞으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친구는 토종 종자 보급사업을,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는 재활용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공생과 협력의 중간지원조직,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필수 요소
이렇게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처럼 지역사회의 자립, 공생, 협력을 목표로 행정과 민간 사이의 중재, 또 민간과 민간 사이의 협력과 조정을 하며 마을의 역량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조직을 흔히 ‘중간지원조직’이라고 한다.
마을 만들기와 같은 공동체사업은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데 행정기관은 이른바 칸막이 행정으로 다른 실과 사업을 연결하거나 다른 유형의 사업 혹은 사업단과 협력을 만들어내기 어렵고, 컨설팅 회사는 지역에 있지 않은 데다가 해당 사업만 용역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행정 기관과 컨설팅 회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일을 중간지원조직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중간지원조직은 크게 주민 교육 및 인재 발굴, 사업단과 기업의 육성 및 컨설팅, 정보제공 및 조사 연구, 지역 내외의 네트워크 구축 등의 일을 한다. 최근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별로 중간지원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공동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역개발사업 혹은 일자리 사업의 경우 일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고 사업추진이 실패할 경우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지원이 요구되고 이러한 사업에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사업이 지역사회의 사회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지역사회에 보호된 시장
혹은 협력적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사업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보다 어느 정도의
공간적 범위를 가지는 지역 단위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는 농촌 지역에 필요한 일을 주민 스스로 발굴
하고 그 일을 공동체 사업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지역사회의 자립, 공생, 협력을 목표로 행정과 민간 사이의 중재, 또 민간과
민간 사이의 협력과 조정을 하며 마을의 역량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조직을
‘중간지원조직’이라고 한다.
전국의 다양한 중간지원조직의 움직임
전국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은 매우 다양하다. 중앙 단위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진흥원’, 광역단위에서 마을만들기를 지원하는 ‘전북마을만들기협력센터’, 기초단위에서 일하는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와 같이 활동 영역도 다양하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행정의 필요에서 의해서 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도 있으며 반관반민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 행정과 민간과의 거버넌스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지난 9월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마을만들기 전국대회에서 마을만들기를 중심으로 한 중간지원조직들이 모여 중간지원조직의 활성화와 상호 교류를 위해서 ‘마을만들기지원센터협의회’를 조직하고 상호 협력과 교류를 증진하기로 하였고, 지역별로는 원주의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충남의 ‘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같이 중간지원조직이 중심이 되어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협동조합’ 등 공동체사업을 추진하는 기관, 단체의 연대 회의를 조직하고 있기도 하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다양한 역할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는 완주군 관내 농협, 신협과 같은 민간 기관과 지역 주민의 출자로
2010년 6월 설립하였다. 초기에는 커뮤니티비즈니스 사업만을 지원하였으나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변화하고 통합되면서 2012년부터 마을회사, 커뮤니티비즈니스, 협동조합, 귀농·귀촌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센터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지역 주민에 대한 교육이다. 관심 없는 주민들이공동체 사업을 이해하게 하여 새로운 인적자원을 발굴할 수 있으며 협동사회에 대한 주민 인식을 높여 지역에서 추진하는 공동체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주민과 사업단을 상담하고 컨설팅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업 관련 정보의 제공, 사업계획의 수립, 사업관리, 컨설팅 및 모니터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복잡하게 추진하고 있는 공동체 사업의 지원 정책을 효과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동체 사업단 간의 교류를 촉진한다. 매년 초에는 사업단 워크숍을 통해 다른 사업단의 내용을 공유하고 사업단 사이에 내부 거래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매년 말에는 공동체사업단이 모두 모여 일 년 동안 노력과 수고를 서로 격려하는 ‘누리살이한마당’이라는 작은 축제를 벌인다.
단순한 교류를 넘어 사업단을 묶어 연합사업단을 조직하는 일도 지원한다.
지역 주민과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점차통합되고, 확대되고 있다.
지역을 살리는 중간지원조직, 마을 활력을 불어넣다
센터는 완주군과의 긴밀한 소통과 완주군이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을 통해 민관협력을 도모한다. 공동체사업의 관리를 위해 농촌활력과와 역할을 분담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행정기관의 속성상 예산지원이 끝나면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 센터는 사업이 끝났거나 혹은 사업을 중단한 마을이나 사업단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관리한다.
또한 지역에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여 관심을 갖도록 여론화하는 역할도 한다. 2012년 ‘농촌에너지 자립 가능하다’라는 한일포럼을 통해 농촌의 에너지 자립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2013년에는 ‘나는 난로다’라는 행사를 추진해 ‘전환기술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로컬에너지’를 완주군의 주요한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또한 농촌활력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인적자원의 발굴과 역량 강화를 위한 농촌형 직업학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온누리살이’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이 필요 없는 마을과 지역이 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중간지원조직에 대해 전문가들은 행정기관과의 관계를 포함한 정체성의 확립, 활동가의 수급과 전문성의 강화,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 등의 과제를 제기하고있다. 우리 센터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초기완주군청이 주도하여 설립하였고 운용예산의 많은 부분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완주군의 정책 사업에 중심을 둘 것을 지속해서 요구받고 있어 중간지원으로서 폭넓은 활동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또한 커뮤니티비즈니스의 경우 귀농·귀촌인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일부 계층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주민의 비난을 듣기도 한다. 재정적, 사업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사회적 서비스를 창출하는 사업의 육성을 통해 센터 활동의 혜택을 받는 지역 주민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공적인 공동체사업단을 몇 개를 만드
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자리를 찾고 기본
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활동가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전체를 보는 관점, 주민과의 소통과 의사결정을 안내할 수 있는 능력, 주민 사이에 작동하는 정치적 관계에 대한 판단력,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능력,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의 동원 능력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이 단기간의 학습이나 매뉴얼 등으로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업무를 담당하는 적절한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의 경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적자원의 풀을 만들고 인턴제, 계약직근무 등으로 인력을 발굴하고 있다. 또한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전북 지역의 다른 기관, 단체들과 인력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 근무 등으로 인적자원을 유연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 활동의 성패는 지역 내·외부와의 네트워크가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완주군을 비롯한 지역 내부의 기관·단체와 간담회, 교류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며 사회적경제 영역의 외부 기관, 단체와도 교류하며 연대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공적인 공동체 사업단을 몇 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일자리를 찾고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시점이 되면 더는 중간지원조직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지원조직이 없어도 되는 그 날을 목표로 역할을 다 할 예정이다.
※필자 임경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장.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대학원에서 대기오염을 공부하고 유기농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일하다 주식회사 이장을 창업하여 십여 년간 농촌 개발과 관련한 컨설팅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