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옥 백옥유기농 대표
“양파밭 들렀다 갈까요?”
초여름을 넘긴 6월, 노정옥 씨(50, 백옥유기농 대표)의 안내로 경기도 이천시의 한 채소밭에 들렀다. 동글동글한 양파가 멀칭사이로 파묻혀 있고 한쪽에는 유기농 당근이 자라고 있다. 5,500평의 이 노지 채소밭은 우리 어린이들의 건강한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중요한 곳이다.
“누가 보면 풀 한 번도 안 매준 밭 같잖아. 얼마나 많이 풀을 매줬는데. 유기농은 이렇게 풀과의
싸움이에요. 그런데 수확할 때는 너무 좋아요. 이것 봐요, 쑥 뽑으면 그냥 나오잖아요.”
노정옥 씨가 뽑아 보여주는 양파는 단단하고 빛깔이 탐스럽다. 이곳 노지와 시설 하우스 50동에
서 가지, 호박, 열무. 시금치, 얼갈이, 아욱 등 다양한 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경기도와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보낸다.
유기농사, 그리고 경영
노정옥 씨의 농사는 주작목이 따로 없다. 학교급식에 납품할 품목의 수급에 따라 작목이 바뀐다. 노정옥 씨는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기본으로, 이천 지역의 친환경농가의 물품을 먼저, 그리고 용인이나 안성, 시흥등 인근의 농산물을 우선 공급받는데, 농가들이 출하하는 농산물 중 부족한 것이나 공급하지 못하는 품목, 혹은 학교에서 원하지만 일정한 규모를 채우지 못하는 소량주문 품목을 재배한다.
“저녁이 가장 바빠요. 농산물을 수거하러 농가를 직접 다니는데 오전에 가면 전날 수확한 것일 확률이 높죠. 그래서 저녁때 가서 농산물을 수거하여 납품을 합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생산이력관리로 신뢰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은 황당한 반품 사고가 일어날 때가 있다.
“친환경 농산물에는 벌레가 있을 수 있어요, 나가기 전에 다시 점검하지만 혹 딸려가기도 하지요. 그런데 달팽이 한 마리만 나와도 학교에서 난리가 나는 거예요. 크기가 고르고 예쁜 농산물만 찾기도 하구요.”
그런 경우 손해를 떠안는 경우가 많다. 제품의 하자가 아니라 ‘친환경’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생기는 반품을 농가에 책임지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노정옥 씨의 이런 마음은 경영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녀가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 바로 농가결제다. 농가에 농산물에 대한 값을 빨리 치르고 그다음 직원 월급을 지급한다.
백옥유기농이 농가들의 신뢰를 얻고 5년 만에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또한 이 신뢰는 소비자들의 믿음과도 연결이 되었다.
“직원들에게 내가 돈 주고 사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만들어라, 중량을 채우려하지 말고 ‘상품’을 만들라고 해요. 정성으로 키운 농산물은 최고의 상품이랍니다.”
작물이 자식보다 귀했다
노정옥 씨가 남편 권순웅 씨(55)를 만나 귀농한 것은 지난 1987년. 올해로 25년이 됐다. 서울에
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났다는 두 사람이 어떻게 귀농을 하게 됐을까.
“농업의 ㄴ자도 몰랐어요. 정말 용감했던거죠. 남의 밭을 다니며 어깨너머 배워 와서 우리 밭에
해보고……. 그런데 희한하게 자꾸 들여다보니까 잘 자라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유통이었다. 잘 키운 쑥갓을 시장에 내보니 한 상자에 300원을 쳐
주더라는 것.
“그땐 정말…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더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했죠. 시장을 몰랐던 거에요. 쑥갓 심어야 할 때 상추 심고, 상추 심어야 할 때 쑥갓을 심었던 거죠.”
초보농부에게는 작물이 애들보다 더 귀했다. 애들은 내버려두고 상추 하나라도 더 따려고 했다.
두 돌 갓 지난 어린 딸은 뜨거운 볕에 얼굴이 달아 수박처럼 빨갰고 졸리면 논길에서 잠이 들기도 했단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벌써 스물여섯, 스물네 살이 되었다. 장남 권용제 씨는 현재 후계자로 함
께 일하고 있다. 벌써 손자도 생겼다.
고마운 손길, 나누는 농사로
고생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며 노정옥 씨는 회고한다.
시설하우스가 다 날아간 적이 있었다. 망연자실해서 며칠 집에 있는데 옆집 이웃이 찾아왔다가 사연을 들었다.
“차를 마시다가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조금 있다가 통장을 들고 왔어요. 이걸로 다시 해보라고. 2천만 원이 들어있더군요. 정말 말도 못하게 고마운 일이었죠.”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고마운 일들이 노정옥 씨한테는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많이 나누려고 노력한다고도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작은 요양원이 보이면 들어가서 형편이 어떤가 보고 올해 김장 몇 포기 하세요, 하고 물었어요. 그리고 배추를 보내주는 거예요.”
필리핀에서 공부하는 딸한테 가서 오지로 들어가 우물도 파주고 쌀도 나누고 전기가 없는 곳엔 발전기도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을 수년간했고, 현재는 캄보디아의 어린이 5명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또 푸드뱅크를 통해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노숙자 등을 돕는 일도 열심히 한다고 한다. 그는 베풀면서 정말 큰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일
노정옥 씨가 이웃 농장이라며 깻잎 농장으로 안내했다. 깻잎을 수확하는 작업이 한창인 농장은
정말 깔끔했다.
“밭 보면 주인의 얼굴이 나와요. 거름에서도 씨가 날아들어 풀이 나거든요. 유기농인데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맸겠어요. 자기가 하는 노력만큼 땅은 보상해주는 것 같아요.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잖아요.”
얼떨결(?)에 귀농하여 나누는 농사를 실천하며, 지역의 농민들과 함께 성장하는 노정옥 씨는 배
려와 보살핌,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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