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농부입니다”

김현희 해야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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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 하면 딱 떠오르는 건 세발 낙지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무안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 터미널과 이어진 재래시장 안에는 온통 낙지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준비된 택시를 타고 고구마 밭으로 가는 동안은, 무안이 바다와 접해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렇지, 양파, 고구마는 내륙이랑 어울리지 않나?
그런데 나를 기다리는 것은 너른 바다를 앞에 두고 끝없이 펼쳐진 황토밭에 방금 흙속에서 말간 얼굴을 내민 고구마들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토밭 사이사이로 기계가 훑고 지나가면 오랜 기다림에 뿔이 난 듯 쑥쑥 올라오는 빠알간 고구마, 그 빛이 바래기 전 고구마는 노란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아 이 쬐깐한 거가 왜 요로코롬 많이 들어갔을까 잉?”
고구마가 담긴 박스 안에서 아주 노련하게 조그마한 고구마들을 솎아내며 콕콕 박히는 말을 하는 이가 바로 김현희(51) 씨다.

“아이고 아줌씨, 비닐을 그리 거둬내면 우짜요~”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1만여 평의 밭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온전한 의사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농촌으로 도시로 다시 농촌으로
“아버지가 몸이 좀 안 좋으셨어요. 그래서 장녀인 저를 빨리 시집보내려고 하셨죠.”
그렇게 중매인의 안방에서 얼떨결에 선을 봤는데, 스물 셋이었던 그는 상대방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아버지가 묻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만 했단다.
“리어커만 끌어도 도시 가서 산다”고 했던 그 시절에 그는 그렇게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부지런하고 손이 빨랐던 남편 김기주(56) 씨는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해가 중천에 있는 대낮에는 한가한 듯도 했다. 한량같이 노는 걸로 보였던가……. 주변에서는 일도 안하는데 농사를 잘 짓는다며 시기와 질투를 했다. 무엇보다 농사를 좋아했던 천상 농사꾼 남편 기주 씨와 현희 씨는 고향을 떴다.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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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농법과 해풍이 만든 작품, 고구마

“고향에서 집 팔아 땅 팔아 간 곳이 인천이요. 그 인천에서 식당하다 말아먹고 한 7년 살았네. 맘
이 영 딴 데 가 있으니 일이 안되는 거라…….”
도시 생활에 영 적응이 시원찮았던 부부는 고구마 농사를 짓는 형님의 권유로 다시 고향으로 돌
아왔다. 그때가 1998년이었다. 첫해 밭 4천 평을 임대해 고구마를 심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는 1만 2천 평……. 그렇게 계속 면적을 늘려가며 유기농으로 고구마 농사를 지은 지 7년. 이제는 7만 평 규모로 늘었고, 돈도 제법 버는 농부가 되었다.

해수농법과 해풍이 만든 작품,고구마
김현희 김기주 씨가 고구마를 재배하는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그리고 천일염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병해충 피해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고구마 맛도 좋아집니다.”
또 하나 고구마 품질의 비결은 해수 농법이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 해수 농법이 가능하다. 소금에 함유된 미네랄이 굼벵이를 퇴치해주고 고구마의 당도를 높여준다. 특히 온통 황토인 무안지역의 흙에 이 미네랄 성분이 더해
지면, 찐 고구마의 당도는 무려 35°Bx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김현희 씨의 설명이다.

토굴에 소금을 뿌려 고구마 저장성을 높이고 곰팡이도 없애준다.
토굴에 소금을 뿌려 고구마 저장성을 높이고 곰팡이도 없애준다.

“고구마를 정식하고 초기에는 해수와 담수를 2:8 정도로 하여 뿌려주는데 수확기가 가까워질
수록 바닷물의 양을 점점 늘려 줍니다. 고구마 농사할 때 제일 골치 아픈 게 굼벵이인데, 그 굼
벵이가 없어져요.”

고품질로 생산한 유기농 고구마는 생협과 대형마트, 홈쇼핑 등에 납품하고, 인 터넷을 통해 직판도 한다.
고품질로 생산한 유기농 고구마는 생협과 대형마트, 홈쇼핑 등에 납품하고, 인터넷을 통해 직판도 한다.

고구마 저장법도 특이하다. 토굴에 저장하는데, 이렇게 하면 고구마의 저장성을 높이고 맛을 지키면서 소득을 많이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토굴 저장고 바닥에도 역시 천일염을 뿌려주면 곰팡이도 생기지 않고 고구마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토굴 저장고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줘서 고구마 보존기간을 1년 정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김현희 씨 부부는 쌀겨, 깻묵과 천연 인광석 가루 등을 섞은 퇴비를 직접 만들어 고구마에게 준다. 자식 같은 고구마에게 줄 것이니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품질로 생산된 유기농 고구마는 생협과 대형마트, 홈쇼핑 등에 납품하고, 인터넷을 통해 직판도 한다.
“유기농이 부자만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입버릇처럼 하는 남편 기주 씨의 말처럼 고구마 가격이 너무 비싸서는 안된다는 것이 현희 씨의 생각이기도 하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서로를 신뢰하는 유기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기농산물은 부자들만의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이 건강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김씨 부부는 말한다.
유기농산물은 부자들만의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이 건강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김씨 부부는 말한다.

나는 농부다
듬직한 체구 시원시원한 성격. 사람들은 그를 여장부라 부르지만, 눈물이 많아 사람들 앞에서도 울컥 할 때가 있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보면 ‘오메 이 이쁜 것좀 봐라’하며 마음을 빼앗기는 김현희 씨.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소. 셈도 느리고 사람도 잘 못 알아보고 길도 잘 못찾아야.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 밭에서맹큼은 저 아줌씨는 어디서 왔고 뭘 잘하고 이름이 뭐고 기똥차게 알아뿌리지. 펄펄 날아당긴당께. 그냥 농사가 내 천직이지 싶소.”
천직이라 느꼈던 농사에 많이 지쳤던 지난 여름, 그녀는 캐나다 유기농 연수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김현희 씨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사업에도 힘쓸 계획이다.
김현희 씨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사업에도 힘쓸 계획이다.

“(연수를 가기 전엔) 농사를 짓는 것이 짐이고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무거웠지요. 그런데 밴쿠버에서 본 농부들은 정말 행복해 보이는 거라. 정말 나는 무엇을 위해 농사를 지어왔는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어요. 그 뒤론 나 역시 힘을 얻었어요. 생활은 같고 매일매일 똑같이 치대고 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내 능력의 쓰임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순박하며 정직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소박한 농부 김현희씨,
그는 오늘도 자신 있게 외친다.
“나는 행복한 농부”라고.

 

<秀>
<해야농장 http://www.haey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