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충 방출시설(SIR, Sterile Insect Facility)
가을의 중턱에 섰지만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모기’.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영리한 모기에 물리면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오르고 가려운 고통도 여간 아니지만, 웽웽 귓가를 맴도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게다가 뇌염이니 말라리아니 ‘못된’ 병까지 가져다주니, 모기입장에선 몰라도 사람들에게 모기는 ‘보는 즉시 처단’ 명령을 내리는 적이다. 이쯤 되면 모기 박멸이 인류의 오랜 꿈이라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으리라.
“인류의 오래된 꿈, 모기 박멸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터넷에 오른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에 의하면 영국과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이 유전자조작으로 ‘씨 없는 숫모기’를 만들어 인류를 말라리아 등의 질병에서 구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 기사의 요점이다.
약 1만 개의 모기 배아에 정자 생성을 방해하는 물질을 일일이 주입했고 이 숫모기와 교미한 암모기는 부화하지 못하는 알을 낳았다. 암모기는 평생 단 한차례만 교미해 여러 차례 알을 낳기 때문에 모기퇴치에 상당히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무정자 숫모기를 만들려면 사람이 일일이 모기 배아유전자를 조작해야하고 모기를 대량 지속적으로 사육해 야생에 풀어놔야 방제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엉뚱한 상상이 현실과 만나다
이 기사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지난 여름 방문했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오카나칸 밸리 지역에 위치한 ‘불임충 방출 시설(Sterile Insect Facility)’이다. 캐나다밴쿠버에서 동쪽으로 600km 떨어진 오카나간 지역은 사과, 포도 등 과수지대이다. 차를 타고 달리면 끝없이 펼쳐진 사과나무 포도나무들이 즐비하다. 더군다나 놀라운 것은 유기농의 비율이 60%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유기농으로 하기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과일농사라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오카나간은 병충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과수 농가들은 매
년 더 많이 또 더 많이 농약을 사용했다. 가장 골치아픈 것은 ‘코드린 나방’. 암컷 나방이 나무나 과
일에 알을 낳고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되면 열매를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약 3주간 산다. 애벌레는 다시 모충이 된다. 1900년대 초에 출현했다는 이 나방은 특히 사과와 배 농장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계속되는 과다 농약사용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농약을 쓰지 않고 병충해를 이겨낼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2년,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되어 1994년부터 정식 가동했다. 건물은 정부에서 만들었지만 지역의 농민들이 유지관리를 담당했다.
코드린나방의 먹이부터 연구한다
이 시스템은 원리는 코드린나방의 유충을 대량으로 증식한 다음 성충이 되면 90초간 감마선을 쏘여 불임충으로 만든 뒤 과수원에 살포하여 암컷이 생식기능이 없는 수컷과 교배하게 하여 번식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곳에서는 코드린나방이 좋아하는 먹이-설탕, 밀가루, 비타민, 미네랄 등이 일정비율로 섞여 사과와 비슷한 맛을 내는 ‘가짜 사과’를 만들었다. 가짜 사과(사과모양은 아니다)와 톱밥 등을 섞어 둔 ‘먹이접시’에 알을 채집한 종이를 닿게 하여 3주간 이 상태로 둔다. 유충이 부화하여 고치가 되면 성충 부화방으로 이동하는데 이곳에서 다시 3주를 키우면 성충이 된다. 불임충으로 만드는 것은 일반 농가로 배급되기 전날 이루어진다. 감마선에 90초간 쪼이고 난 뒤 새벽 4시 30분에 불임충을 수거해서 그날 아침 7시에 주문한 농가로 배달한다. 농부는 당일 오후 3시까지 농장에 방출한다. 개체수는 1acre당 800마리 정도. 1년에 작물 성장이 이루어지는 20주간 주 2회 방사한다.
이제 미국 워싱턴주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남아공에도 기술을 인수했다고 한다.
“코드린 나방 수컷은 평생 4차례, 암컷은 1차례 교접을 하고 60개의 알을 낳습니다. 이렇게 불임 나방을 한번에 1500마리 방사하면 60x4x1500, 36만 마리의 효과가 불임충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불임충은 자연에서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불임충 시설의 책임자 스코트 씨는 불임충의 먹이 안에 카놀라유와 염색물질을 섞어 놓는다. 그러면 자연 나방과는 달리 불임충은 몸통 부분이 빨갛게 된다. 자연 상태의 코드린 나방을 유인해 제거할 때 불임충을 함께 제거하는 일이 없도록 염색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코드린 나방이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 생태에 대한 연구부터 연구를 먼저 했고, 그 다음에 생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선행연구를 철저히 하고 나서 불임충 시설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화학농업으로 찌들었던 지대가 유기농 60%를 이루다
1994년 처음으로 소개된 이 프로그램은 시밀카민 밸리 유기농가를 대상으로 했으며 나방들을 방사선 처리하여 박멸하려는 프로그램이었다. 지역이 너무 방대한 탓에 1구역, 2구역, 3구역으로 나누어 먼저 1구역부터 완전히 박멸하고 나면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는 계획으로 500만 마리를 생산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인근 지역에서 넘어오기도 하고, 미국 국경과 맞닿아서 (비자도 없이) 미국 나방들도 마구 드나들었죠.(웃음)”
농민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계획보다 3배 많은 1,500만 마리를 생산했고, 박멸 대신 현재의 밀도를 유지하고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불임충 방출 시설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은 초기에는 매우 부정적이었고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농민들도 이 황당한(?) 병해충 방제에 대한 신뢰를 갖기 시작했고 6년이 지나자 이곳에서 농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농약가격보다 저렴한 불임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오카나간 지역은 60%이상이 유기농으로 과수를 재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체 유기농의 비율이 1%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굉장한 숫자이다.
“이제 코드린나방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카나간 지역에서 20년간 사과와 체리를 재배하는‘메넬과수원’에서 만난 농부 메넬 씨는, “그 전에는 사과를 빨갛고 탐스럽게 만들기 위해 화학적 처리를 했다. 그러나 그게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고 IPM(병해충종합관리)를 통해 안전한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불임충 방제시설과 태평양연구소의 도움으로 골치 아팠던 코드린 나방을 없앨 수 있었다. 이제 코드린 나방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 해충 연구를 하는 티메라 씨(컨설턴트)는 “18개월마다 새로운 해충이 나타난다. 그래서 병해충연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이런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묻자, “생산자 협회 등 생산자 단체에서 연구비를 내면 같은 금액의 연구비를 정부에서 지원한다. 민간연구를 활성화 하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메넬 씨에게 계속 해충이 생기는데 유기농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병충해 문제는 관행농법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유기농을 할 것이다.”라는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과재배농민들의 가장 골칫거리였던 코드린나방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방제하여 오카나간 지역의 유기농을 6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농민이 합심하여 운영하는 불임충 방출시설,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연구를 하는 태평양연구소, 그리고 정부과 연구소, 기관을 믿고 현장에서의 적용에 힘쓰는 농민과 민간연구의 활성화가 이루어낸 성과다.
글·사진 신수경(skshin7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