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농부’다

과수원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만치 앞서가던 동생이 현관 앞에 놓인 비닐봉지를 들어 보인다. 안에는 잘 다듬어 데쳐놓아 무치기만 하면 되는 냉이가 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엄마가 음성으로 포도과수원을 옮겨온 후, 우리는 채소며 과일이 늘 풍족했다. 이장님한테 흠집 난 복숭아를 얻어먹었고, 앞집 사과밭에서도 주먹보다 작은 사과를 한 박스나 받았다. 감자 역시 이웃의 할머니가 갖다주었고 작년에는 그렇게 귀했던 고구마도 비슷한 경로로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오늘처럼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잦다. 과수원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집에 도착해 보면, 현관 앞에 김칫거리가 놓여있거나 혹은 상추가 놓여있는 것이다. 어느 날은 애호박이, 또 어느 날은 깨끗이 다듬은 대파가 다소곳이 놓여 있기도 했다. 오늘의 정갈한 냉이는 아마 아랫집 할머니가 갖다 놓았을 것이다. 잘 손질된 채소들의 주인은 알고 보면 늘 할머니였던 것이다. 거친 일 도맡아할 남자 손 없이 바쁜 우리 세 모녀를 향한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3년 전만 해도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엄마는 음성에, 나는 평택에, 그리고 동생은 서울에서….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지만 치열한 경쟁만을 부추기는 시스템 속에서, 그들은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혹은 나를 밟고 올라설 대상에 불과했다. 금속처럼 차갑고 딱딱한 환경에서의 삶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형태와는 다른 것이었다.
변화는 아주 서서히 싹을 틔웠다. 그리고 동생은 2년 전에 귀농을 했고, 나도 작년 7월 음성으로 왔다. 가끔 포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젊은 처자들이 농사일을 한다는 것에 의아해 한다. 어떤 이는 동정심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거나 무엇인가 실수라도 저지른 표정으로 이쪽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기도 한다. 도시에서 번듯한 직장생활을 못하고 흙이나 만지고 있으니 딱하다는 뜻일 게다. 동생과 나는 더 큰 성공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도시를 떠나왔지만, 사람들은 패배자라 여기는 듯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부를 바라보는 시각인 듯하다.
그러나 나는 이 투박한 농부로서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얻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고, 밭에서 갓 캔 신선한 냉이를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서 소박하고 건강한 집 밥을 먹는다. 아침은 굶기 일쑤고 점심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던 3년 전의 생활과는 크게 다르다.

나는 이 투박한 농부로서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얻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고, 밭에서 갓 캔 신선한 냉이를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서 소박하고 건강한 집 밥을 먹는다. 아침은 굶기 일쑤고 점심도 제때 챙겨 먹지 못하던 3년 전의 생활과는 크게 다르다.

음성에 온 뒤로 좋아진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혹여 아프더라도 이를 악물고 출근해 내 몫을 다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으면 일찍 집으로 내려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마음껏 쉴 수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겨울 내내 긴 휴식의 시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겨울에는 마음껏 여행도 다녀오고 취미생활도 하며 느긋한 전원생활을 만끽하며 네 달간의 휴가를 즐겼다.
사람들은 이 매력적인 직업을 왜 하찮게 보는 걸까. 그들의 기준에 흙을 만지는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의 삶이 좋다.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순박한 이웃과 함께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나는 이런 삶이 매우 만족스럽다.
촉촉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포도 과수원에서 나는 지금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필자 유재경: 4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2010년 귀농하여 충북 음성에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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