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수없이많다. 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서부터 태국·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까지 동양 대부분의 나라가 쌀을 주식으로 한다. 그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쌀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최근 들어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지만, 1인당 연간 소비량은 70㎏대로 일본의 50㎏대, 대만의 40㎏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비록 일본·필리핀이 지난 1993년 우루과
이라운드(UR) 협상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쌀의 관세화 유예를 요구해 관설시켰지만 그 중요도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쌀산업은 UR 협정 발효 이후에도 16년이나 관세화 유예를 통해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쌀산업은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쌀, 나아가 한국농업의 운명이 걸린 관세화 유예 여부를 하루빨리 결정해야 한다. 관세화를 수용하고 개방할 것인가, 아니면 관세화 유예를 계속해서 연장하고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의 의무수입 물량을 늘려줄 것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인가 하는 논의만 무성할 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수급불안도 쌀산업의 위기를 더해가고 있다. 2009년과 2010년엔 재고 과잉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신곡 부족이란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했다. 2010년산 쌀이 부족하자 정부는 2009년산 비축미를 마구 방출하면서까지 쌀값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부에선 올해 흉년이 든다면 내년엔 쌀 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것으로 우려한다. 우리 쌀산업을 둘러싼 쟁점들을 짚어봤다.
불안한 수급
우리나라의 적정 쌀 재고량은 양곡연도 말(10월 말) 기준 72만t이다. 하지만 2010년 기말재고량은 적정량의 2배인 150만t을 웃돌았다. 소비량이 주는데도 생산량은 되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논 면적과 쌀소비 감소 추세 등을 따져 보면 밥쌀용 재배면적을 2015년까지 70만㏊로 줄여야 쌀산업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벼 재배면적은 89만2천㏊. 정부 추산대로라면 앞으로 5년간 19만2천㏊의 논을 놀리거나 다른 작목을 재배해야 한다. 그렇지만 소규모 영세농 구조 아래에서 벼 재배면적은 아주 더딘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타작목 재배 유도 ▲쌀 가공산업 육성 ▲쌀시장 조기 관세화를 통해 수급을 맞춘다는‘쌀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내놨다.
우선 올해부터 3년간 4만㏊의 논에 콩이나 조사료 재배를 유도하고, 농가엔 소득보전 차원에서 1㏊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논농업 다양화 사업(생산조정제)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쌀 20만t을 덜 생산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또 2014년부터는 생산조정제를 가공용·사료용 단지 위주로 끌고 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가공용 쌀 재배 농가와 수요자(가공업체)를 연결하는 계약재배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가공용 품종은 설갱·고아미와 초다수성 품종인 다산·안다·드래찬·보람찬 등으로 한정되며, 농가엔 1㏊당 220만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을 통해 논을 사들인 뒤 벼 대신 사료작물을 재배하는 농지매입비축사업도 2015년까지 5,500㏊를 목표로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2만8천t의 감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쌀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 중 양곡업계와 농가로부터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시장격리 부분이다. 정부는 수확기에 앞서 이듬해 수요량을 토대로 소비량지수를 산정한 뒤 그 이상의 쌀이 생산되면 남는 물량을 시장에서 자동으로 격리하는 방안을 제도화하기로 했다. 매년 일회성 대책을 세워 대응하는 방식에서 탈피, 기후변화에 따른 쌀 생산량 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소비량지수는 신곡 수요량의 102%가 제시됐다. 예컨대, 내년 쌀 수요량이 400만t인데 올해 450만t이 생산되면 400만t의 102%인 408만t을 제외한 나머지 42만t을 수확기
에 전부 격리하는 식이다. 격리한 쌀은 가공업체에 저가로 공급해 밥쌀로 시중에 나오는 것을 막기로 했다. 정부는 시장격리와 가공용 공급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정부와 민간이 절반씩 부담하는 의무자조금으로 메운다는 구상이다. 시행 초기에는 미곡종합처리장(RPC)과 같은 산지유통업체에서 자조금을 조성하고 나중에는 농가로부터 직접 걷는다는 게 정부의 시나리오다.
지난해 10a당 쌀 생산량은 483㎏으로 최근 10년 중 7위를 기록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만 보면 그리 흉작은 아닌데도 쌀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더욱이 올해 벼 재배면적은 다른 작물 재배 농가에 1㏊당 300만원을 지원하는‘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4만㏊)’과 자연감소로 5만㏊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지난해 수준에 머문다면 전체 쌀 생산량이 25만t가량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또 올해 벼농사가 지난해 수준에 그치게 되면 2012년에는수확한 지 3년이나 지난 2009년산 쌀로 국민의 식탁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러한정부의감산정책에대해우려의목소리도적지않다.‘ 쌀산업발전5개년종합계획’을처음구상한지난해 가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 429만5천t 가운데 민간분야 수요량을 뺀 43만7천t을 공공비축(34만t)과 추가매입(9만7천t)을 통해 격리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민간분야는 올 수확기까지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하지만, 산지 양곡유통업체는 원료곡 부족 현상에 직면했다. 재고 부족으로 쌀값이 급등하자 정부는 지금까지 40만t의 비축쌀을 풀었다. 이 중에는 2010년산 식곡도 있지만 2009년산 구곡도 상당량 포함돼 있다. 수확한 지 2년이나 지난 쌀이 방출된 것을 두고 양곡업계는‘2010년생산량이 올해 수요량을 충족하기에는 넉넉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 때문에 쌀 감산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a당 쌀 생산량은 483㎏으로 최근 10년중 7위를 기록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만 보면 그리 흉작은 아닌데도 쌀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더욱이 올해 벼 재배면적은 다른 작물 재배 농가에 1㏊당 300만원을 지원하는‘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4만㏊)’과 자연감소로 5만㏊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지난해 수준에 머문다면 전체 쌀 생산량이 25만t가량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또 올해 벼농사가 지난해 수준에 그치게 되면 2012년에는 수확한 지 3년이나 지난 2009년
산 쌀로 국민의 식탁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쌀 소비 급감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 72.8㎏은 이웃한 일본(58.5㎏)이나 대만(48.1㎏)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연평균 감소량은 우리가 2.1㎏으로 일본(0.7㎏)과 대만(0.5㎏)을 앞질렀다. 이는 우리나라 식생활 패턴이 일본이나 대만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용도별 소비량을 보면 주식용(밥) 소비는 71.3㎏으로 전체 쌀 소비의 97.9%를 차지한 반면 떡·과자 등 다른 용도로 쓰인 쌀은 1.5㎏에 불과했다. 특히 정부의 쌀 가공식품 활성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의 가공용 쌀 소비량은 10년 동안 오히려 22%나 줄었다. 이는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쌀가루나 반제품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사를 거르는 횟수는 한달에 평균 1.4회로 조사됐다. 또 남자보다는 여자가, 여자 중에서는 20~34세가 심각했다. 특히 20대 후반 여성은 한 달에 6.3회나 식사를 걸렀다.
최근 들어 쌀 소비 감소 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주식인 밥을 대체할 식품이 잇따라 출시된 데다 다이어트와 건강상의 이유로 결식 및 소식하는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체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비농가의 1인당 쌀 소비량은 70㎏ 아래로 떨어졌고, 20대 후반 여성은 한 달에 6.3회나 식사를 거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런 쌀 소비 감소 속도를 줄이거나 반전시키지 않으면 쌀 공급과잉 구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특히 MMA 방식의 외국쌀 의무수입량 증가 등까지 고려하면 범국민적인 쌀 소비촉진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와 같은 쌀 소비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15년이면 1인당 소비량이 61.6㎏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바른 식습관 교육·홍보 등을 통해 밀가루에 익숙해진 입맛을 밥 중심의 쌀로 되돌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청소년 결식률을 줄이고 아침밥 먹기 캠페인의 기업 참여를 독려한다는 구상이다.
관세화 전환 논란
우리나라는 UR 협상에서 10년, 즉 1994∼2004년까지 쌀 시장 개방을 보류한 데 이어 2004년 쌀 협상을 통해 또다시 개방 시점을 10년 뒤로 미뤘다.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을 매년 2만여t씩 늘려 주기로 이해당사국들과 합의했다. 시장을 열지 않는 조건으로 외국쌀을 더 사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MMA 물량은 2005년 22만5천t에서 올해는 34만7천t으로 늘어났고, 관세화 유예 마지막 해인 2014년에는 40만9천t으로 그해 소비량의 1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2004년 쌀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관세화 유예기간 중 언제든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냈다.
관세화가 선언되면 MMA 물량은 전년도 수준으로 고정된다. 예컨대, 내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할 경우
이후 수입해야 하는 MMA 물량은 매년 34만7천t으로 고정된다.
조기 관세화론은 이 MMA 물량에 대한 부담을 하루빨리 줄이자는 데서 출발한다. 매년 2만여t씩 증가하는 MMA 물량이 관세화 선언 시점부터 고정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쌀 과잉공급에 따른 가격하락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 쌀값과 환율 강세는 조기 관세화론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2004년 쌀 협상에서는 관세화 유예가 끝나는 2015년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를 두고 정부는‘2004년 쌀 협정문에 2015년 이후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의 특별취급(관세화 유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부 다른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 역시 정부 해석에 동의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세화 시기 조정은 당초예정대로 2015년 관세화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보다 시기를 앞당길것인지, 또 앞당긴다면 2012~2014년 중 언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시기 선택의 문제다.
현 시점에서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더라도 400% 안팎의 관세를 물리면 MMA 물량 외의 외국쌀이 수입되지 않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또한 관세화유예 마지막 해인 2014년까지 국제식량안보, 안전한 식생활 확보와 지역사회보전, 전통문화계승, 아름다운 녹색경관 유지 등 벼농 쌀값이 급락하는 상황은 빚어지지않을 것이란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물론 저가쌀 또는 고급쌀이 일부 수입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그 양은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관세화로 전환하면 MMA 물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면서 향후 10년간 1,800억∼3,700억 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관세화를 늦추면 늦출수록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할 쌀이 해마나 늘어나므로 결국 손해란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부터 관세화로 전환하는 게 모든 면에서 유리할까.
조기 관세화를 경계하는 학자들은“관세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DDA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 관세화여부를 논의·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조기 관세화론을 펼치는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농업전문 민간연구소인 GS&J인스티튜트는‘쌀 중도 관세화의 오해와 진실’이란 연구 자료를 통해“DDA 협상에서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유지 여부는 쌀의 관세화 여부에 관계없이 이해당사국들과의 협상결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며“관세화를 유예했다고해서 개도국 지위 유지가 쉬워지고, 반대로 관세화를 앞당겼다고 해서 개도국 지위 유지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쌀은 소중하다
누구를 위하여 쌀을 지킬 것인가. 그것은 농민 생산자들만의 이익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매년 줄어들긴 하지만 1인당 쌀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쌀이 바로 우리 국민의 피(혈)와 살(육)과 정신(혼)을 형성해 왔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쌀로 대표되는 농업·농민·농촌 문제에 대한 범국민적지지는 역사적 당위성과 필연성을 가진다. 쌀은 7천만 한민족의 유지 발전에 있어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다.
아울러 쌀은 경제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벼농사에 종사하는 농가수는 90만가구로 전체 농가의 70%를 넘고, 이 중 벼농사에서 얻는 소득을 주 소득원으로 해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농가는 60만 가구에 이른다.
벼농사는 고용 측면에서 국민경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업인구가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고,더구나 고령층이 벼농사를 맡고 있는데, 이들은 이 분야에는 숙련기술자이지만 타 작목으로 대처할 처지가 못 되며, 더구나 비농업 분야에는 종사하기 곤란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벼농사는 농촌 지역사회의 중심 산업이며, 고용효과 면에서도 중요한 산업이다.
쌀은 또 식량안보의 중심에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6% 수준인데, 이를 유지하는 데는 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쌀을 제외하면 우리의 곡물 자급률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쌀이 우리의 식량안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쌀 문제는 단순히 시장경제원리나 통상정책 차원에서 풀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과 관련돼 있다. 식량안보 문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한 식생활 확보, 지역사회 보전과 국토의 균형개발 문제,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 아름다운 녹색경관 유지기능 등을 감안할 때 벼농사를 지키는 문제는 한국 농업, 나아가 농촌사회를 이끌어갈 핵심 정책의 대상이다. 당대의 쌀 정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김상영: 농민신문 편집국 농정부 기자. 농업기자포럼 회원. 1999년 입사해 2006년부터 6년째 농림수산식품부를 출입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식량, 통상, 농가소득 분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