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민주화 성과의 이면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성공적인 나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많은 개도국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들의 발전 모델이 되기도 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바쁘게 달려왔다. 그 결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 혜택으로 오늘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살게 되었다. 산업화만 이룬 것이 아니라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룩했다. 군사독재의 긴 어둠의 터널을 마치고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와 국민의 손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완벽한 직선제를 쟁취했다. 사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해 피 흘리는 국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성취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모순적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정부가 주도해 대기업을 키워주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그래서 대기업에 온갖 혜택을 주었다. 자원과 사회적 기반이 워낙 없는 시기에 일부 대기업을 키운 후 이러한 성과를 사회 저변으로 확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의 달성 이후에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장기간의 군부독재는 대기업 위주로 부를 더욱 심화시켰다.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농업과 농민의 희생을 가속화시켰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은 이에 저항하며 독재권력과 독점자본에 맞서 싸웠고 그 지난한 싸움 끝에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성취해냈다.
정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
흔히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투표)라고 한다. 남녀노소, 신분과 직업의 귀천이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1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다. 미국에서도 흑인(1965년)과 여성(1920년)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자는 1인 1표제는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체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또한 모순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도 학식이 풍부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사람과 배움이 없고 의식이 흐릿한 사람이 똑같은 한 표를 갖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1인 1표제의 선거제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투표를 한다면 그 성과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분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투표는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부 격차는 심화하고 노동자의 신분은 더욱 불안전해졌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소득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
정치학은 최고의 사회과학으로 풍부한 지식, 고도의 판단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식견을 갖춰야 하는 학문이듯 정치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학식이 많거나 적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모두에게 1인 1표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이는 곧 정치의 하향평균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1인 1표제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만인에게 동등하게 1인 1표제를 시행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실리를 추구하지만 정치는 균형을 추구한다. “가난을 걱정하기보다는 불평등을 걱정한다(不患貧,患其不均).”는 공자의 말씀처럼 무릇 정치의 덕목은 백성들의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학식과 식견이 있는 사람은 1표 이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1표 이하의 투표권이 주어져야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체계에서는 모두에게 1표가 주어진다. 이처럼 정치는 고도로 논리적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가치체계이기도 하다.
1인 1표제의 환상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상황을 보자.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실현했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외, 농업과 농민의 희생, 그리고 부와 권력의 독점에 대한 불만은 민주화의 열망으로 이어졌고 결국 1인 1표제라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은 1인 1표제의 선거제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투표를 한다면 그 성과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분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투표는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부 격차는 심화하고 노동자의 신분은 더욱 불안전해졌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소득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 출산율이 최저이고 비정규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빠른 산업화 시기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1:99 사회를 심화시켰다. 그래서 3포, 5포 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이제 우리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1인 1표제가 민주주의 체계 하에서 균형사회를 이루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의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정치체계에서 보통의 서민이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재력과 ‘능력’있는 사람들이 민의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그들 자신 또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득권의 역사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와 권력을 누려온 세력들은 해방 이후에도 변함없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비단,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언론, 문화 등 한국의 거의 모든 영역을 주도하게 되었다. 따라서 투표를 잘하더라도 이러한 고착화된 구조를 깨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그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은 성장의 과실이 토지를 중심으로 한 기초 생산요소를 장악한 집단에 고착화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30대 대기업에 속하는 269개사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2015년 말 기준으로 754조 원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최근 IMF에서도 발표한 것처럼 더 이상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의 가장 큰 희생양, 농업
앞서 설명했듯 우리나라 산업화는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이뤄졌다. 그리고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은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반강제적으로 개방의 길로 내몰렸다. 1990년대 초 UR 협상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EU, 호주, 캐나다 등등 거의 모든 농업대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처럼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계속되는 FTA 체결은 우리 농업을 파국으로 몰았다. 그나마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여겨졌던 쌀값마저 올해는 30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다. 현재 농민들은 살길이 막막해 망연자실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5월 대산농촌재단을 통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업·농촌 연수에서 배운 사실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두 번의 세계대전, 폐허 속에서도 독일은 10년 만에 경제를 복구하고 어느 정도 재정적 여유가 생기자 곧바로 농업과 농촌 복구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1954년 정부와 의회는 농업에 대한 4가지 기본목표(일명 ‘그린플랜’)1)를 세워 국가의 가장 기본토대인 농업과 농촌을 재건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이러한 기본 철학과 가치관이 지금도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4가지 기본 목표는 지금 읽어보아도 어느 한 자 빠트릴 것 없이 논리정연하고 명쾌했다.
지난 8월 충청남도는 농민단체와 협의하여 정부의 농업직불금 외에 자체적으로 추가 지급해왔던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을 2017년부터 기본소득제 방식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면적 단위 직불금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바꾼 최초의 사건이자 획기적인 농업보조금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편의 배경은 농가 내 보조금 수령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농업·농촌을 어떻게 살리고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목표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농업을 산업화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더니 개방농정 이후에는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해 우리의 농업·농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농민의 삶을 보호하고 농민의 의무에 기꺼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독일 등 유럽선진국의 농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농업직접지불제’에서 ‘농민기본소득제’로
농산물 개방정책 이후 우리 정부에서도 농업구조개선 사업, 농촌개발사업, 그리고 농업직불제 사업 등을 통해 농가 소득 증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가운데 농업직불제 정책은 WTO 규정에 따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의 소득보전을 위해 허용됐다. 1997년 경영이양 직접지불제, 1999년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2005년 쌀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제, 2015년 밭농업직불제 등 현재까지 11개의 다양한 직접지불제가 실행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직접지불제에도 불구하고 직접지불제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 농가소득 및 농업소득 대비 직접지불금 비중은 각각 2.7%, 9.2%로 불과했다. EU의 경우에는 대략 30%, 70% 이상인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직접지불금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업직불금의 비중이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직불금 수령이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 농림어업총조사 기준 상위 11.4% 쌀농가가 전국 논 면적의 58.2%를 경작한다. 즉 전체 쌀 직불금의 절반이 상위 10%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농업직불금이 면적 단위로 지급되다 보니 영세 소농에게는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6년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농업직불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150만 명 직불금 수령자 중 9.6%(14만 명)인 대농·기업농(재배면적 2ha 이상)의 농가당 평균 직불금은 350만 원인 반면 75.8%(114만 명)를 차지하는 영세농가(재배면적 1ha 미만)의 직불금은 28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농이 영세농보다 12배가량 직불금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서울경제 2016.09.26)
이러한 격차는 현재 쌀값 하락 등으로 대농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면적을 더 넓힐 경우 더욱 확대되어 영세 소농들은 획기적인 대책 없이는 앞으로 살아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농업직불금을 친환경 농업 직불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로 통합해 농가에 일률적으로 약 50만 원씩을 지급하는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실시를 주장했다. 부족한 재원은 농정 예산 가운데 불필요한 사업성 예산과 행정의 효율화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농업직불금이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사회안전망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독일 등 유럽은 소농이라고 할 수 있는 3ha 이하 농가에 일정 수준의 농업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충청남도의 의미 있는 ‘농민기본소득제’ 도입
지난 8월 충청남도는 농민단체와 협의하여 정부의 농업직불금 외에 자체적으로 추가 지급해왔던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을 2017년부터 기본소득제 방식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면적 단위 직불금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바꾼 최초의 사건이자 획기적인 농업보조금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편의 배경은 앞서 설명했듯이 농가 내 보조금 수령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충남도는 그동안 벼 재배농가에 직불금 형태로 ha당 41.1만 원(현금 23.1만 원+비료 18만 원)을 지원했다. 그 결과 전체 농가의 65%를 차지하는 1ha 미만 소농가의 직불금은 평균 20만 원인데 반해 전체 농가의 7.6%인 3ha 이상 대농가는 평균 130만 원의 직불금을 받았다. 즉, 3ha 이상 대농가는 1ha 미만 소농가보다 평균 6.5배의 직불금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할 경우 농가 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해 그동안 지급됐던 벼 경영안정 직불금 287억 원과 맞춤형비료 사업 198억 원(일몰제로 인해 발생한 금액)을 합한 485억 원을 농촌 거주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한 가구당 연간 36.7만 원을 균등 지급하기로 했다. 충청남도는 향후 불필요한 사업들을 줄여 나간다면 연간 120만 원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완전히 무상은 아니고 행정기관과 마을 간 친환경 농업 실행, 마을환경 가꾸기, 마을경관 보전 참여 등 간단한 <농업환경 개선 프로그램> 이행 조건이 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결정은 농촌 내 대농 위주 면적 기준 농업직불제에서 영세 소농을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편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효과와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다른 지자체에도 전파하고 나아가 정부의 농업보조금 개편에도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기본소득, 그 시작은 농민으로부터
산업화 시기 민주주의의 1인 1표제는 정치를 통해 부가 골고루 분배되길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었지만 후기 고도산업화 시기, 즉 성장이 멈추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의 1인 1표제는 누구에게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기본소득제가 답일 것이다. 우리는 형식적 정치 민주화는 이룩했지만 진정한 경제 민주화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순이 아닌 상생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빠른 산업화로 인한 불평등과 양극화가 지금처럼 심각한 상태에서 아직도 성장 담론에 벗어나지 못하고 사업 위주의 정책을 편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사회에서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데 현금이 필요하다면 현금(또는 현금과 유사한 것)을 지급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압축 성장으로 인해 희생을 당해온 농민이어야 한다. 그래서 농민기본소득제가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상식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한다.
1) 네 가지 기본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삶의 질을 공유하며 발전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농민은 일반 국민에게 건강한 식품을 적정한 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셋째, 농업을 통해서 국제 식량 문제 해결과 국제농업교역에 이바지한다.
넷째, 농업을 통해 자연 및 문화경관을 보존하고 다양한 동식물상을 보존한다.
※필자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2기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역임 후 북경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한국과 중국의 3농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항일독립운동사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