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두부 파동, 콩나물 파동…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터진다고 할 정도로 먹거리 불신이 커지는 사건들이 많았어요. 최근 달걀 파동만 봐도, 한국에서 건강한 소비자로 살려면 얼마나 더 똑똑해져야 하는 걸까 싶죠.”
건강한 밥상은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이를 정당한 가격으로 지지하는 소비자가 함께 있어야 만들어진다. 한국의 소비자로서, 1세대 생협 활동가로서, 믿을 수 있는 농민을 만나 상생하는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깊이 느낀 박영숙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은 농민과 소비자 사이를 신뢰로 잇는 협동조합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올해 충남 청양군 대치면에 로컬푸드직매장 ‘농부마켓’과 농가식당 ‘농부밥상’을 열며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 바쁜 계절을 지나고 있는 박 이사장을 만났다.
협동조합,
접시 하나로 잔치가 열리는 기적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외지 농산물을 주로 파는 지역 상인들이 로컬푸드 직매장 설립을 반대하기도 하고, 여기 지역민은 다 시댁, 친정에서 가져다 먹는데 직매장을 누가 굳이 가냐는 말도 있었지요.”
청양로컬푸드협동조합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충남도 농식품생산자 직판장 구축사업 공모에 선정된 2015년이었지만, 로컬푸드의 중요성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가 아직 깊지 않아 직매장과 농가식당이 만들어지기까지 2년 가까이 공백기를 겪었다. 매장이 없는 2년 동안에는 꾸러미나 직거래장터 트럭으로 이동판매 사업을 벌이며 조합을 이어왔다.
“로컬푸드,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믿고 어려울 때도 조합원들이 음식 한 접시씩 해와 포틀럭 파티를 열며 서로 용기를 북돋웠어요. 각자에게는 한 접시의 음식이지만 그 접시가 모두 모이면 잔치가 되는 포틀럭 파티처럼, 믿음과 격려로 힘을 모아온 조합원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지요.”
현재 조합원은 100여 명, 생산자 조합원은 70여 명에 이른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시작한 것에 비하면 꽤 많은 수다.
“조합원들이 농사짓는 이야기를 농부밥상 메뉴판, 농부마켓 안내판과 건물 벽면에 걸어놨어요. 사람들이 오가며 이야기를 읽고 반가워하거나 감탄하는 모습, 농부밥상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조합원들도 뿌듯해하죠.”
몇몇 조합원들은 로컬푸드해설사 집중양성과정을 들으며 직접 교안을 만들고, 청양 지역 안팎 학교와 교육장에서 강의를 통해 농업, 로컬푸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길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떠나지 않는 농촌을 만들고 싶다
2007년, 박 이사장은 여성민우회생협 (현 행복중심생협) 활동을 마친 후 청양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로컬푸드협동조합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20여 년 이어온 생협 활동 경험을 살려 ‘시골맛보따리’ 꾸러미 사업을 해왔다. 활동가 연수로 일본에 머물며 본 시민지원농업CSA 사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매주 지역 제철농산물을 다양하게 구성해 소비자들이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보내며, 판로 확장을 위한 소규모 가공을 고민하던 와중에 마침 대산해외농업연수와 인연이 닿았다.
“연수에서 유럽 농가의 가공 사례를 보며 배우고, 지역 농산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큰 문화를 접하며 로컬푸드의 가치를 확실히 느꼈어요. 그게 곧 지금 꾸러미 사업과 로컬푸드협동조합 활동의 기반이 됐죠. 무엇보다도 연수를 계기로 ‘떠나지 않는 농촌’을 만드는 것을 내 삶의 주제로 삼게 됐어요.”
떠나지 않는 농촌, 이미 농촌에 사는 노인과 젊은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일. 꾸러미를 통해 소농의 판로를 열고, 로컬푸드협동조합을 거점으로 건강한 지역 먹거리의 바탕을 세워 신뢰할 수 있는 도농상생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과 이어지는 일이다. 나아가 박 이사장은 청양의 11개 사회적 기업이 모인 청양사회경제네트워크와 지역 풀뿌리 단체 청양행복여성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농촌에서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관계망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청양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는 아이들도 참여하는 장터를 열어 마을기업, 자활센터 등이 서로 만나고 워크숍을 함께하고 있어요. 청양행복여성네트워크는 ‘로컬푸드로 밥 한 끼 먹자’라는 이름의 팜파티와 먹거리 강좌, 여성학 강의, 영화제 등을 열며 교류하고 있죠. 앞으로도 지역에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재밌는 일은 무궁무진해요.”
농촌에서 품는 마지막 소원
“자녀들이 농촌 어르신을 도시로 모셔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르신들이 도시에 가면 금방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도시에는 밭도 없고 답답한 감옥이라고, 살아온 농촌에서 사람들이랑 밭일하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고들 말씀하시죠.”
더 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농촌을 위해, 박 이사장은 로컬푸드로 도농을 이어 농촌의 튼튼한 기반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는다.
“결국은 모든 게 나를 위한 활동이기도 해요. 내가 이 농촌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죠.”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