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자 깨가쏟아지는마을 영농조합법인 대표
깨가쏟아지는마을 영농조합법인(이하 깨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퍼지는 고소한 참기름 향을 맡으니, 저절로 입맛이 돈다. 냉이, 달래…. 다양한 봄나물로 밥상에서 계절을 만끽하는 요즘, 향긋한 요리를 완성하는 건 역시 고소한 참기름과 들기름이다. 김용자 대표는 농민이 건강하게 농사지은 깨를 적정한 가격에 수매, 가공하여 맛과 영양이 더욱 풍부한 기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주문이 오면 그때그때 짜요. 대량생산한 기름보다 신선하고, 품질도 세심하게 살필 수 있죠.”
고소한 깨 향기가 나는 마을
김용자 대표는 마을 만들기, 지역 활성화 컨설팅 관련 일을 하며 전국을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고향인 괴산에 귀촌했다. 서울에서 서류로만 지역을 말하기보다 현장으로 가서 직접 뛰어봐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농촌은 이미 무너져가지만, 거기서 나라도 뭔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전국을 살피며 고민한 끝에 깨를 특화한 마을기업을 시작했지요.”
깨마을은 괴산군 사리면 9개 마을의 믿을 수 있는 소농과 고령농 약 15농가의 깨를 가공해 직거래·로컬푸드 매장·농부시장에서 판매한다. 깨 가격의 등락에 관계없이 정해진 가격으로 수매해 지역 고령농의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고, 마을기업 매출의 절반이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깨는 작물 특성상 농약과 비료를 거의 쓰지 않아 건강하고, 소농·고령농이 큰 욕심 없이 짓기 좋은 작물이에요. 무엇보다 판로가 없는 마을 고령농가의 깨를 적정한 가격에 사서 지역특화품목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깨마을은 2016년 충청북도 모범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꾸준히 마을의 신뢰를 얻으며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마을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활력의 씨앗을 심다, 문전성시
지난 4월 7일, 벚꽃이 만개한 괴산 동진천 앞 광장에는 흥겨운 꽹과리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농부시장 ‘문전성시’가 열렸다. 김 대표가 시작부터 함께 만들어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농부시장은 깨마을의 가공품뿐만 아니라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두부, 유기농 사과 등 지역 소농과 가족농, 귀농·귀촌인의 신선한 농산물과 수공예품으로 다채롭게 채워졌다.
“시장의 농산물은 모두 최상품인 데다 저렴한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도 농부시장의 의미에 공감하고 함께 만드는 분들이 있어 보람을 느끼죠. 아무것도 없던 곳에 열댓 명이 모여 시장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해내고 있으니까요.”
시장 참가자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고, 귀농·귀촌인이 많다. 고령의 농민들은 농산물을 직접 판매해본 경험이 없어 선뜻 참가하진 못하지만, 김 대표가 1년 가까이 설득해 장터에 모신 마을 어르신은 “사람들이 내가 농사지은 걸 맛있다고 하는 걸 직접 보니 참 좋다”며 장터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고 했다.
“농부시장의 역할은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교류하고, 농민들이 축제처럼 한바탕 놀며 농촌살이의 답답함을 푸는 장을 만드는 거예요. 경제적 도움을 주는 역할은 각 지역의 로컬푸드 상설매장이 맡아 함께 가야 하죠. 문전성시가 커가면서 조금씩 지역을 바꿔가길 바라요.”
돌아오는 농촌보다, 떠나지 않는 농촌을
농촌에서는 이제 정말 피부로 실감하는 고령화와 지역 소멸 문제. 김 대표는 농촌을 지켜온 농민이 원하는 정책과 노인복지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고령화가 심한데 정작 노인복지 정책은 너무 부실하죠. 농촌개발사업에 13조 원을 들였는데 그렇게 지어진 건물 중 사람이 없어 폐쇄되거나 비어있는 건물이 절반을 넘는다고 해요. 외부 유입만 신경 쓰기 이전에 농촌 주민이 원하는 게 뭔지를 들어야 해요. 만약 노인이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겠다고, 제대로 된 복지로 일자리를 창출하면 은퇴자부터 청년까지 농촌 인구는 자연스럽게 늘 거예요. 65세 이상을 위한 농업·농촌 정책, 그리고 로컬푸드 상설매장이나 농부시장처럼 소농이 과도한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도 생산물을 지역에 나누며 먹고살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어요.”
여러 가지 편견이나 제약으로 농촌살이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김 대표는 곳곳의 지역 현장을 다니며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농촌을 위한 청사진을 꾸준히 그리고 있다.
“마을기업, 움직이는 농부시장 등 괴산에 처음 오면서 구상했던 걸 하나씩 이루고 있으니 뿌듯하죠. 앞으로는 농촌에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농가식당이나 문화공간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농촌의 거친 일도 마다않고 밭을 일구며 잔근육으로 다져진 몸에서 건강한 웃음이 번진다. 사람이 떠난 농촌에서 대안을 만드는 일이 때로는 답이 안 보이고 막막하게 느껴져도, 김 대표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은 지속 가능한 농촌의 미래를 이미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Yogi Berra의 말처럼.
글·사진 유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