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박효정 농부와약초꾼 대표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읍내의 분주한 오일장을 지나자 어느새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이 이어졌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시골길에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산맥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농작물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발 1,000m 산자락이 시작되는 청정 자연에서 무농약 친환경 약초를 재배하는 ‘농부와약초꾼’ 이진우·박효정 부부를 만났다.
귀농해 가업을 잇는 농부와 약초꾼
“어렸을 때부터 약초를 캐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산에 다녔어요. 시골생활과 산이 마냥 좋았어요. 군 제대 후 제주도에서 자전거여행 겸 아르바이트를 하며 귀농에 대한 마음을 굳혔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만났어요. 대화하는 게 즐거웠고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었어요.”
23년 경력의 약초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슬뿌리, 두충나무껍질, 땅두릅(독활), 자소엽 등 친환경 농법으로 약초를 재배하던 이진우 씨는 그렇게 아내 박효정 씨를 만났다. 효정 씨 역시 특별한 사연이 있다.
“대학 입학할 때까지는 교육시스템에 순응하며 부모님 말씀대로 살았죠. 그런데 제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어요. 노동운동·여성운동 같은 사회운동을 하며 지내다가 임실로 내려갔죠. 귀농해서 자립적인 삶의 틀을 만들고 싶었어요.”
스물다섯. 박효정 씨가 농촌으로 향했던 나이다. 임실과 무주, 홍성, 제주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촌활동을 하며 도시에서와는 다른, 살아 있는 공동체를 경험했고 이진우 씨를 만나 거창에 내려왔다.
소 무릎을 닮은 우슬, 아이와 함께 커가는 꿈
“처음에는 산에서 밭에서 나는 약초를 이것저것 다 팔았는데 지금은 우슬에 집중하고 있어요. 우슬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꾸준히 늘어 이제는 가공도 합니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천 평 정도의 밭도 마련했어요.”
진우 씨는 안전한 약초 재배를 위해 2014년 약용식물자원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5년에는 친환경 인증까지 받았다.
약초 재배와 해와 원, 두 아이가 자연과 함께 자라는 모습을 담은 영농일지를 온라인에 올리자 부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온라인 직거래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원물을 판매하다보니 재구매 고객이 늘어났다.
“소의 무릎을 닮았다고 우슬牛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우슬은 무릎 관절에 좋고, 특히 한방에서는 혈액순환 약초로도 통해요. 보통 자가 채종을 해서 5월에 옮겨 심고 11월부터는 뿌리를 캐서 세척해 말리는 작업을 해요. 온라인 직거래를 주로 하다 보니 주 고객층은 부모님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30대 젊은 층이에요.”
“식품이 트렌드에 민감한 것처럼 약초 시장 또한 유행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진우 씨는 소비자가 믿고 구매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약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진우 씨가 재배한 약초는 잔류농약, 중금속 검사 등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부부가 약초 재배지를 일반 농경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한 것도 혹시 모를 농약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즐거움을 주는 풀, 약초로 행복을 전달하는 일
“농사를 지으며 태교했어요. 별 밝은 곳에서 태어나 산과 들을 뛰어놀며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를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우리가 자연에서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부부는 지역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2주에 한 번 텃밭교실을 진행한다. 밭에서 직접 수확한 농작물로 함께 요리 하며 아이들에게는 먹거리의 가치와 중요성을, 어른들에게는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알린다.
“아이들과 있으면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환히 웃는 얼굴을 보면 저까지 행복해지거든요. 약초의 약薬이 ‘즐거움을 주는 풀’이라는 뜻이잖아요. 농사를 통해 배우는 삶의 가치와 행복을 약초에 담아 전달하는 게 꿈이에요.”
이진우·박효정 부부의 이야기는 네이버 웹툰 ‘프로젝트 꽃’ , ‘가업을 잇는 청년’ 시리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진우 씨는 지금의 약초 농사를 체계화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싶다. 농사일이 재미있는 효정 씨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도서관이 함께 있는 열린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즐겁고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기를 꿈꾼다. 두 사람이 꾸는 꿈은 ‘즐거움을 주는 풀藥’과 함께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글·사진 박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