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지만, 새해에 어울리는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농업 농촌을 둘러 싼 여전하고 혹은 더 거세지는 고민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 덕담을 나누기조차 어렵습니다.
2016년에 대산농촌재단은 창립 25주년을 맞습니다. 이른바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설립 당시였던 1990년대 초반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비롯해 거센 개방화의 물결로 농업 농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 농업 농촌은 망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많았지요. 재단은 이런 상황에서 소중한 우리 삶의 뿌리인 농촌을 지키기 위해서는 농업의 경쟁력과 농민의 역량을 키우고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재단의 창립이념을 첨단농업기술진흥, 농업구조개선, 그리고 복지농촌 건설을 통한 인류복지 증진으로 정했습니다.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 농업은 부러워만 했던 선진국의 농업기술을 현실화했고, 개발도상국의 농업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을 만큼 높은 기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농민의 삶은, 복지농촌의 꿈은 아직도 묘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농업 농촌 관련 프로그램의 변화로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왜곡된 시각으로 농업 농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민에게 농촌은 ‘전원일기’, ‘6시 내 고향’에 머물러있거나, “안되면 농사나 짓지”하는 체념의 종착점이었고, 한편에서는 억대 농부가 TV에 나와 심어주는 환상으로 준비 없는 귀농의 꿈을 꾸게 하기도 하며, 이를 보는 도시의 서민들은 왜 돈 잘 버는 농업에 나의 세금을 써야 하는지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돈 버는 농업’을 외치며 대규모화, 눈에 보이는 시설 투자에만 힘을 쏟는 사이 중요한 것들이 사라져갔습니다.
20년 전, 10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농민은 더 살기 어려워졌고, 농촌은 공동화, 고령화되었으며 사람들은 농업 농촌을 밑 빠진 독이며 혹은 개방화에 걸림돌이 되는 천덕꾸러기로 생각합니다. 농민 기본 소득, 무역이득공유제, 농어촌상생기금 등 농업과 농촌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질않습니다. 어쩌다가, 농업 농촌 농민은 이런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먼저 독일의 사례가 눈에 띕니다. 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땅에서 ‘라인 강
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이 농업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농업의 중요성, 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홍보를 대대적으로 지속해서 해왔습니다. 그 결과 국민의 2%, GDP의 0.8%에 불과한 농업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농업보조금에 찬성하는 국민이 85%이상(1985년 조사)이라고 합니다. 스위스가 유럽연합EU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도 농업때문입니다. 국민의 4%에 불과한 농민에게만 불리한 유럽연합 가입을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보다 2배 이상 비싼 자국의 농산물 가격이 반 토막 나고 농업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였습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 이웃 나라들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농민이 없다면, 농업이 없다면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농업 농촌이 지니는 큰 가치를 공감합니다. 그리하여 농촌이 사라지지 않도록, 농민이 삶을 유지하고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발휘합니다.
25년 전, 대산농촌재단은 “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하라”는 대산 선생의 말씀에 따라 기업농과 대규모 농업보다는 더 큰 가치의 농업 농촌이 지속하도록 지원해왔습니다. 대산 선생의 업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 농촌재단’을 설립했다는 과거의 사실보다, 오랜 기간 동안 재단을 통해 꾸준히 그 가치를 드높이고 더 많은 사람과 공감한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농업, 농촌은 버릴까 말까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아 키워야할 산업이기 이전에, 우리 삶이고 지탱할 수 있는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농업, 농촌의 문제는 ‘강 건너에 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농민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새해에는 농업 농촌을 제대로 알고 상생하고자 하는 권력을,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2016년에도 대산농촌재단은 “농업 농촌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화두를 계속 던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