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농업,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류재하 류진농원 대표

경남 진주로 향하는 기차에는 정부의 6차산업 홍보영상이 흘러나왔다. 등장인물 속에 친숙한 류재하 씨(55, 2015년도 연수자)의 얼굴이 보였다.

류재하 씨는 경남 진주 명석면에서 두 남동생과 농업후계자인 아들 진석 씨(25)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약 4만 평의 부지에 25종의 감을 키우고, 1만 평 규모의 매실도 기르는 대농이다. 곶감, 감말랭이, 매실 엑기스, 감식초, 감차 등 생과로 가공도 한다. 여기에 ‘가뫼골 농촌체험마을’ 위원장을맡아 농촌체험과 농가민박까지 운영하니 말 그대로 ‘6차 산업’의 표본이다.

류재하 씨는 독창적인 생산기술과 농촌정보화에 앞장선 공로로 2006년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된것을 비롯해 2007년 ‘세계농업기술상’, 2009년 ‘정보화운영부분 최우수상’, 2010년 ‘도농교류농촌사랑대상 금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수상경력을 쌓아왔다. 류진농원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매년 수 천명이 견학을 온다.

류재하 대표는 무농약 매실과 25종의 감을 기른다.

경영마인드를 농업에 접목하다
류재하 씨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회사에 들어갔다. 영업 수완을 발휘해 높은 성과를 거뒀지만, 워낙 열심이었는지 직장생활 7년 동안 허리며 내장까지 온 몸의 건강이 나빠졌다. 90년대 초, 병든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동생이 짓던 농사를 돕기 시작했다.
‘기업 물’을 먹어본 류재하 씨가 바라보는 농업은 남들과 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차별화’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남들과 다 똑같아서야 누가 사겠냐는 생각이었다.
“전국 유명하다는 농장, 전문가 다 만나봤어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적어 선입견이 없어서인지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지요.”
풀을 일부러 허리춤까지 기르는 일부터 엄나무·오가피·도라지 등을 토착미생물과 섞어 천연 화학비료를 만들기도 했다. 감 엑기스를 섞은 자가 영양제를 주기위해 나무마다 링거를 달았을 때는 “나무에 별 짓을 다한다”며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기도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크기,당도, 경도를 마음대로 조절한 감을 생산해낸 것. 류 씨의 특별한 농법은 주변은 물론 방송에서도 주목 받았다.

홈페이지로 소비자와 만나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과일을 주문하는 일이 흔하지만 90년대 말에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당시에 정보화 시대라고 해서 도시에서는 한창 컴퓨터를 썼는데, 농촌에는 마을 전체에 컴퓨터 한대가 흔하지 않았어요. 농업도 산업이니까 활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류재하 씨는 일찍 정보화에 주목했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 생산 이력 시스템 등 농업 분야에 전자상거래를 도입했다. 1999년 정부에서 추진한 ‘농업인 홈페이지 제작 사업’을 계기로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2002년에는 우수상, 2003년과 2004년에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금도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소비자와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소비자 직거래가 활발해지니, 굳이 공판장으로 보낼 필요가 없었다. 직거래로도 감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깁디다. 한 번은 단감이 신경질 날 정도로 달다고 환불을 요구하더라고. 세상에 감이 달다고 환불해달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서 다음에 또 주문합디다.”

건강한 농산물은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만든다. Ⓒ류진농원

“건강한 먹을거리는 소비자와 농민이 함께 만듭니다”
류재하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건강함’이다. 저농약 인증(2016.1.1 폐지) 허용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최소한의 농약만을 사용하고 인삼과 도라지를 섞어 만든 ‘한방 사포닌 농법’을 개발하여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으로 감을 키운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잖아요. 농민이 까딱 잘못하면 국민은 돈을 의료비로 다 쓰게 됩니다. 건강한 농산물 생산은 농민이 국민으로서 가져야할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그런데 농민 혼자 노력해서는 몸에 좋은 농산물을 만들 수 없다. 진정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는 소비자와 함께 만든다.
“겉보기 예쁜 상품 만드는 일, 어렵지 않습니다. 농약 많이 치면 단감의 검은 반점 싹 사라집니다. 소비자가 좋은 농산물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떤 농민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겠습니까.”
소비자는 농민이 수고롭게 만든 안전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하고, 농민은 한 눈 팔지 않고 좋은 농산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우리 농촌이 지속 가능해진다.

농업후계자인 아들 진석 씨와 함께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할 시점
아버지부터 자신까지 67년이라는 단감 농사의 역사를 지켜온 류재하 씨. 이제는 아들과 함께 삼대째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요즘 농촌 현실과 아들 세대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망고를 비롯해 단 맛을 내는 수입 과일에 밀려 단감 판매량이 줄었기 때문. 안 되겠다 싶어 가공을 시작하니 가공품이 수입되었다. 결국 선진국 기업과 농민 개인이 경쟁하는 판국이다.
“정부가 이대로 FTA를 진행하고 TPP 가입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결국 농업을 포기하는 겁입니다. 대책없이 빗장을 다 풀어버리면 농민들은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성공한 농업인으로 인정받는 류 대표는 올해부터 농장 규모를 줄여갈 계획이다. 포장재를 비롯한 비용을 낮춰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민 중이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헤쳐 가보려고요. 아들이 내 나이 될 때쯤에는 우리 농업이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농사 안 짓고 밥 먹을 수 없잖아요.”
이대로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류재하 대표. 그래도 희망을 꿈꾸는 그가 묵묵히 걸어갈길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고 싶다.

 

글ㆍ사진 김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