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인식 전 해남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초여름, 비가림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초록색 밤호박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공중재배법’으로 생산한 전남 해남군의 명물, 그 이름에 걸맞게 때깔 좋고 야무진 미니밤호박이 탐스럽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미니밤호박, 공중에 달리다
“(여름이라) 밖이 더우면 여기 앉아 한참 보다가 간다니까. 밥 안 먹어도 배불러요.”
하우스 주인 민지순 씨가 웃으며 말했다. 남편 정성채 씨와 함께 호박농사를 지은 지 15년, 해마다 탐스럽게 자라는 밤호박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황보인식 해남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60, 제27회 대산농촌문화상 농업공직 부문 수상자)를 만난 지도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1979년 농촌지도사로 임명된 황보인식 씨는 전남 진도와 강진을 거쳐 해남군에서 34년간 근무하면서 밤호박, 양파 채종, 무화과 등 농가소득을 높이는 지역 특산물을 개발하고 재배방법 등을 보급해왔다.
“옥천면·계곡면 농민상담소장으로 있을 때였어요.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점심때가 되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다들 점심값이 부담스러워서 가버린 거죠. 그렇게 가난했어요. 새로운 농가소득 작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2002년 10농가에 밤호박을 시험 재배하게 하면서 지역의 기후와 여건에 맞는 재배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공중재배법이다. 터널식 덕을 만드니, 호박 넝쿨이 덕을 타고 올라가 호박이 골고루 잘 자라고, 덩달아 농민의 악성 노동을 덜고 품질도 좋아졌다. 여기에 비가림 하우스를 도입해 노지재배보다 더 맛있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한 마케팅, 포장과 시장개척까지 직접 뛰어들어 노력한 결과, 현재 250여 농가가 연간 50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뒤론 서로 점심값을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달라진 상담소 풍경이 훈훈했다.
“황보 선생님이 우리를 먹고살게 해줬어요”
황보 지도사는 2004년 종자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수입종자에 의존하고 대부분 국외에서 이뤄지던 양파 채종을 해남군 농민의 소득 작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채종을 위한 전용하우스와 수분매개충으로 연두금파리 사육 기술을 개발하고, 유명 종자회사들을 직접 찾아가 채종 계약을 성사시켰다.
“(수분매개) 벌은 양파를 안 좋아해요. 그래서 연두금파리를 수분매개충으로 썼죠. 그런데 냄새가 고약해서 지역에서 원성이 자자했어요. 그래서 냄새나지 않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보급했죠. 이젠 파리를 사육하는지도 잘 몰라요.”
황보 지도사는 새로운 작물을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작물이 지역에 잘 토착화되도록 다양한 기술도 개발했다. 재해에 강하고 여름철 환기에 좋은 소지붕 연동형 하우스, 양파 채종을 효율적으로 하는 전용 하우스를 설치하며 농민의 노동력을 줄였다.
“성공한 사례도 많지만 실패한 사례는 더 많죠. 에디슨이 999번의 실패 후에 필라멘트 전구를 만들었을 때 전구가 켜지지 않는 999가지 이유를 알게 됐다고 했잖아요. 농민에게 ‘안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시도했던 것 같아요.”
농민과 함께 간다는 것
황보 지도사는 “농민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농촌지도사”라고 말한다.
“젊었을 때 ‘농촌지도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다 망한다’는 게 농민들의 이야기였어요. 당시만 해도 일본서적을 그대로 베껴 농업기술을 가르치곤 했죠. 저는 실력을 키워서 농민이 믿을 수 있게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는 농민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꾸준히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갖추고, 또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보인식 지도사는 “농민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궁리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도 현장을 많이 다니라고 해요. 기술개발 연구도 좋지만 농민과 소통하는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잘하는 농가의 기술을 부족한 농가에 전수해줘서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밤호박, 양파 채종, 무화과, 아열대 작물 등 그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황보 지도사의 삶이 보인다.
“새로운 작물엔 위험이 따르죠. 그래도 실패했다고 책임을 묻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같이 노력한 것을 잘 아니까요. 혹여나 제 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아우성입니다. 네가 잘못해놓고 무슨 소리냐고. 그런 응원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죠.”
여전히 현장에 그가 있다
황보 지도사는 지난 6월 정년퇴직했지만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달에 몇 차례씩 전국 농민 대상 기술교육을 하고, 밤호박 양파 채종 농가 현장도 자주 찾는다. 그리고 틈틈이 1000㎡ 하우스에서 체리나무를 연구하고 있다.
“작물에도 흥망성쇠가 있어요. 제가 처음 해남에 왔을 때 200여 농가가 오이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2~3명밖에 안 남았죠. 식생활이 바뀌면서 소비자가 찾는 품목도 바뀌어요. 외국 여행이 많이 늘어서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죠. 지금 수입하는 것들을 재배하면 어떨까. 먼 외국에서 며칠씩 걸려 수입해온 것보다 국산 체리가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황보 지도사는 품질 좋고 맛있는 체리를 만들기 위해 묘목마다 번호를 붙이고, 접목하고, 변화를 기록한다. 벌써 새로운 소득 작물을 기대하는 농민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현장에, 그가 있다.
“양파를 심으면 보통 서너 개로 갈라져 싹이 납니다. 또 각각 씨방이 여섯 개씩 달려서 꽃줄기를 만들어요. 하나에 천 송이가 핀다고 하죠.”
황보인식 지도사가 양파꽃을 보며 말한다. 꽃이 모두 열매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꽃이 지고 열매 맺은 양파는 농민들에게 내년의 희망을 선사한다. ‘희망의 시작, 첫 땅’ 해남 이야기다.
글 신수경·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