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밭이 펼쳐졌다. 어느 유명 화가가 그려놓은 듯한 풍경을 보니, 유럽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지난 5월, 대산농촌재단이 주최한 9박 11일의 해외농업연수에 다녀왔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를 방문해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 속에서 돌고 도는 ‘생태 에너지’
차창 밖 유채꽃의 향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연수 지도교수인 황석중 박사가 유채의 용도에 관해 설명했다.
“유채는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만들 뿐만 아니라 바이오디젤의 주요 원료로 사용합니다. 독일에서는 바이오디젤을 내연기관 연료로 많이 사용하는데, 트랙터 같은 농기계는 100% 바이오디젤을 씁니다.”
바이오디젤을 짜고 남은 유채는 가축사료와 퇴비로 사용된다. 지역에서 얻은 농작물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보내는 것이 감명 깊었다.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만드는 모습은 독일 작은 마을, 평범한 농가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방문한 독일 튀링겐주 쉴러븐 마을이 좋은 사례다. 이 마을은 지역사회의 에너지 자립도를 100%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곳에는 540만 유로를 투자해 만든 발전시설이 있는데, 마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89%를 직접 생산한 바이오가스로 공급하고 있다. 바이오가스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작물, 축분, 나무 펠릿 등을 반경 10km 이내 지역 농가에서 구입하니 마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마을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은 단백질 사료 및 농작물을 건조시키는데 활용하며, 마을 주민은 건조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열 에너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에 난방을 공급하는 역할도 하는데, 열 손실률을 낮추기 위해 가스 형태로 공급한다. 한스 피터 퍼쉬케Haus-Peter Perschke 면장은 “겨울에는 나무를 이용한 난방시설을 보충해 사용하는데, 남은 재는 퇴비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순환’을 돕는 농민
독일 농촌에서 유채밭만큼이나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은 푸른 초원에서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다. 독일은 농지 면적당 사육할 수 있는 가축 수가 정해져 있다. 소의 배설물이 땅에 들어가 회복될 수 있는 만큼만 허용하는데, 보통 1ha(3000평)에 1마리 정도이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농가의 문을 통해 들어가는 영양분과 나오는 영양분을 합치면 ‘제로’가 되어야 합니다. 사료와 비료가 들어간 만큼 생산물 또는 배설물이 나오게끔 정부에서 철저히 관리하지요. 1년에 5%의 농가를 무작위로 검사하는데, 땅에 질소비료가 과하게 들어가 있지 않은지 검사합니다.”
축산도 일반 농업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땅과 가축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풀을 먹고 자란 소의 똥이 비료가 되어, 다시 풀을 자라게 한다. 황 박사는 “유기농업의 기본은 일정한 공간에서 자연 순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연수 일정 동안 만난 농민들에게 사육 두수를 물으면 “내가 가진 땅의 규모에서 가능한 만큼만 키운다”는 답이 돌아왔다. 법적 규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자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름다운 문화경관, 농업이 있어 가능하다
독일 바이에른주 켐프텐시에서 농업국장을 지낸 요셉 휘머 박사는 “EU 농업정책의 기본 목표는 농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경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이 없으면 산은 금세 나무로 뒤덮이며, 관광객을 부르는 아름다운 문화경관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농가들이 문화경관을 이용해 민박을 운영하면서 농사 외의 소득을 얻고 있었다.
유럽 농민이 문화경관을 지키면서 이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모습을 보니, 내가 사는 울산의 농공단지가 떠올랐다. 농민들이 대대로 비옥하게 관리해온 농토 이이벌(상북면의 옛 지명)에는 어느 순간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산업화로 오염된 태화강 하류의 생태 복원을 외치며 ‘태화강의 기적’을 이루고 있을 때, 태화강 상류 하천부지에는 상북농공단지와 길천산업단지가 개발되었다.
이이벌은 아름다운 영남알프스 고산준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산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던 곳이었다.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등에 오르면 이이벌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넓게 펼쳐진 논밭을 잘 지켰다면 독일이나 스위스 못지않은 문화경관을 뽐냈을 것이다. 인간의 구조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자연 경관은 순리대로 두면 점점 더 가치를 발휘하며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들(맑은 물, 맑은 공기, 건강한 먹거리 등)을 내어준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가 나온다는 것을, 내가 행복하고 건강해지려면 자연의 순환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앞의 이익과 편리함을 좇느라 간과했던 크고 작은 것들이 미세플라스틱, 대기오염, 이상기후 등의 여러 이상현상으로 발현되고 있다. 이제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필자 노진경: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 교육팀장.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살고 있다. 산을 좋아해 영남알프스 일대를 방랑자처럼 다니다가 진정으로 행복한 길은 자연에 있다고 굳게 믿게 됐다. ‘울산생태문화교육협동조합’에서 귀농귀촌 및 귀산촌 교육을 진행했다. 문화예술아카데미 ‘영남알프스학교’, ‘소호농촌체험마을’ 체험팀에서 농사 체험과 숲 체험을 맡고 있으며, ‘파머컬쳐’를 빙자한 방치농사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