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이 난다. 물리적 시공간의 거리는 이미 좁혀질 대로 좁혀졌고, 바다 건너 비행기 타고 가는 해외여행은 동네 마실 가듯 일상이 됐다. 공항과 해외에서의 일상이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라오고, 친숙함 너머 익숙함은 비로소 우리가 ‘글로벌’한 대열에 ‘합류’했다는 ‘인증’인지 모른다. 우리나라만 아니면 다른 나라 농촌은 ‘힙 플레이스’다. 새롭고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그것이 ‘찰칵’의 본능을 이끌고, ‘동경’과 ‘로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해외여행은 일상 잡담으로 소비될 만큼 특별할 것 없이 대중화, 보편화되었지만 농업, 농촌에 대한 이야기는 대화의 주제에서 ‘DELETE(삭제)’된 지 오래다. 이는 적절치 않은 표현일 수 있다. 삭제라는 말은 ‘본시 있었던 것이 없어진 것’인데 실체적으로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니까 말이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도시 중산층 이상의 삶은 어느새 ‘표준’과 ‘정상’의 궤도를 달리고 있고 ‘유행’을 선도하며 ‘롤모델’처럼 자리 잡고 있다. 다양성의 범주에서 간혹 ‘끼워 맞추기’로 집어넣는 ‘농촌’은 사실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이웃 동네 마실 가듯 해외를 나가고, 일상 잡담으로 소비되지만, 농촌, 농업 이야기는 마치 멀고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넘어 감수성을 퇴화시킨다.
해외여행은 일상, 농촌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삼시 세끼 마주하는 밥상 위 먹을거리의 근원인 농업에 대하여, 자연과 사회의 완충지대로 압축성장과 무한개발의 폐해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버티고 있는 농촌에 대하여, 사실 살아내고 있는, 이제 소수자로 전락해버린 농민에 대하여 잘 모른다. 논과 밭이 있고 산과 도랑과 강이 있어 풍광이 좋은 곳으로, 상투적으로 가끔 드문드문 등장할 뿐, 농촌은 이미 머릿속에 마음속에 지워진 지 오래인지 모른다.
도시의 범주, 도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누리는 범주는 미디어에서 확대재생산되며 은연중에 삶을 획일화시킨다. 그 사이에서 농업, 농촌, 농민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농촌을 소비하는 미디어의 ‘습習’과 매뉴얼이 있다. 그것은 도시 중산층에서 나고 자란 프로그램 제작자나 기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상당한 말의 ‘힘’과 ‘양’을 점유하고 있는 도시민 시청자들이 반응하면서 공명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예능에서도 자주 차용하는 정겹고 아름다운 이미지다.
‘동’이라는 개념은 익숙한데 ‘읍면’이라는 행정구역은 생소하며 잘 알지 못한다. 이건 학습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의 산물이어서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체감할 수 없다. 도시화 된 ‘읍’보다 특히 ‘면’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전교생이 12명인 학교, 언제 폐교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상존하는 학교, 수영장, 영화관, 공연장, 약국, 어린이집, 도서관 등의 문화적 결핍이 결핍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곳. 결핍이 체화되어 내핍 단계에 들어선 농촌은 방치되어 있다.
농촌을 소비하는 미디어 매뉴얼
무관심이 사실 가장 큰 폭력일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끊어진 관계망에서 ‘왜곡된’ 상상이 미디어를 타고 확대재생산 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지워져 버린 존재는 잊혀진 채 살아갈 수도 있다지만, 덧씌워진 왜곡의 굴레는 삶을 피폐하게 한다.
농촌을 소비하는 미디어의 ‘습習’과 매뉴얼이 있다. 그것은 도시 중산층에서 나고 자란 프로그램 제작자나 기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상당한 말의 ‘힘’과 ‘양’을 점유하고 있는 도시민 시청자들이 반응하면서 공명한다.
가장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예능에서도 자주 차용하는 정겹고 아름다운 이미지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 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고향 이미지는 자주 쓰인다. 인심 좋고 산 좋고 물 좋은 그런 류의 ‘무릉도원’ 같은 이미지는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쑥 감추고 적당히 포장해버린다. 질겅질겅 씹다 버리는 추잉껌처럼 잠시 잠깐 ‘화’한 향을 취하고 버리는 것이다. 어려움을 간혹 이야기하더라도 ‘농사짓기 힘들어요’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구체성을 생략하면서 ‘퉁쳐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럼 ‘예능’이 아닌 ‘다큐’로 가란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농촌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에 대해 하는 말이다.
‘시혜’와 ‘동정’의 무턱대고 선한 ‘코스프레’도 존재한다. ‘농촌, 농업, 농민 어렵고 힘들어’ 하며 끝 간 데 없는 시혜와 동정은 정작 농촌에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적선하듯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조를 함께 바꾸지 않고 시혜와 동정으로 ‘팔아줘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당장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독’이다. 여전히 잘못된 시스템과 체계, 정책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시혜’와 ‘동정’의 무턱대고 선한 ‘코스프레’도 존재한다. ‘농촌, 농업, 농민 어렵고 힘들어’ 하며 끝 간 데 없는 시혜와 동정은 정작 농촌에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적선하듯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조를 함께 바꾸지 않고 시혜와 동정으로 ‘팔아줘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당장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독’이다. 여전히 잘못된 시스템과 체계, 정책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뉴스 등 시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코드는 ‘공포’다. 농촌에서 간혹 발생하는 사건, 사고는 온 마을이 <이끼> 같은 영화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지역명이 노출되기 시작하면 그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지옥 같은 ‘무간도’로 낙인찍히게 되며 농촌에 대한 ‘혐오’가 시작된다. 도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는 무덤덤하다가도 농촌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는 또 다르게 반응한다.
정겨움, 시혜-동정, 공포와 불안 외에 습관적인 ‘모델링’이 있다. 이는 학계와 행정계에서 아주 좋아하는 것인데 ‘선진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선진지의 모델을 알리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상당히 유명세도 치르고, 책으로 출간하며, TV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평판 자본’을 획득한다. 견학과 학습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것도 구조적인 것을 보지 못한 채 개인의 노력, 마을의 노력, 지역의 개별적인 노력에 천착하면서 넓게 조망하지도 깊이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것은 일종의 ‘함정’이고 ‘착시’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잘 되는데 너희는 왜 못해’ 이런 인식들이 의식의 저변에 깔리게 되고 구조를 보기보다 문제를 개별적으로 환원시킨다. 수많은 권역사업, 마을사업 등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보여주기 급급한 모델을 만들어 확산시키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는 책임을 개인과 마을, 지역에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일하기 참 쉽다’.
농촌을 대상화하는 코드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대상화’이다.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상화’, ‘타자화’ 하면서 ‘소수화’와 ‘사물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대상화, 타자화, 상품화 되는 농촌
농촌이 살아남으려면 도시민의 필요에 부응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말들도 참으로 안타깝다. 농촌체험농장, 농촌관광, 수확 체험, 텃밭 체험 등은 결국 도시민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상품’이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 선상에서 이를 기획하며 또 먹고사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농촌은 도시민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친환경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생산기지여야 하고, 도시 학생들이 짧지만 다채롭게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노작보다는 수확 체험으로 인증샷을 찍어 추억으로 저장하게 해야 한다.
도시 아이들의 농촌체험 현장. ⓒ옥천신문
먹는 물도 마찬가지다. 보통 도시의 전기와 물은 대부분 농촌의 희생으로 건사되는데 도시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옥천은 특히 대전, 청주, 천안 등 충청권 식수원인 대청호를 끼고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지 않고 ‘물’만 보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왔다. 그들에게는 먹는 물만 중요하고, 쓰는 전기만 중요할 뿐이다.
인구 늘리기를 한다는 데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사람’을 ‘숫자’로 보면서 여러 상품을 내어놓으며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당장 숫자만 보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숫자에만 집착하면 사람들의 삶은 위협 받을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답게 존중 받으며 살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이것뿐일까. 농촌을 대상화하는 코드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대상화’이다.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대상화’, ‘타자화’하면서 ‘소수화’와 ‘사물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나는 수많은 미디어에서 말을 보태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수많은 농업, 농촌, 농민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농촌에 살고 있을까. 군 단위, 면 단위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서울 사람들이 강남과 강북, 사대문 안과 밖, 수도권과 지방을 체감하며 구분하듯, 그래서 마치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심한 자존감의 훼손처럼 느낀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서울 사람들의 느낌과 약간 궤를 달리하지만, 나도 느낀다. 읍 시가지 인근에 사는 것과 읍 변두리에 사는 것, 그리고 면 소재지에 사는 것과 면 변두리에 사는 것은 천양지차다. 다 똑같은 농촌이고 시골이라 치부하겠지만, 살고 있는 사람의 느낌은 다르다.
나는 알고 있다. 서울과 광역도시에 사는 사람들, 인구가 제법 많은 시 단위에 사는 사람들은 지역에 관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한참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 그리고 설명한 다음에 오는 그 반응들에 섞여진 ‘비하’와 ‘무지’의 반응들은 쉽게 캐치 된다. 한 지역 학생이 도시의 대학을 다니면서 어려움을 토로한다. 군 단위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을 깔보면서 놀린다는 것이다. 마치 원시 부족처럼, 미개한 곳에서 온 것처럼 말이다.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교사가 ‘너 공부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농사나 질래’라는 폭력적인 말을 서슴지 않게 했다는 말이 부디 옛날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열악한 농촌에서 생활정치와 풀뿌리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 협동과 연대의 기치를 내걸고 밑바닥에서부터 피돌기를 하는 운동은 조금씩 스미고 번지고 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 농촌에서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주적인 이런 운동이 공기처럼 퍼져 자치와 자급이 이뤄질 때 농촌은 스스로 변화할 것이다.
대상화를 거부하고 우리의 목소리로; 옥천의 방식
정말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잠시 잠깐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봐야 아는 것이 있다.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숱하게 많은 말과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제대로 지역과 농업, 농촌, 농민을 이해하고 만든 콘텐츠는 드물다.
나는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 뼈를 묻을 작정인 우리가 주체로서 직접 우리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바랄 뿐이다.
옥천은 30년 동안 나름의 지역운동 방식을 구축해 왔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특별하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씩 일궈온 삶의 방식이다.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인구 1000여 명 내외의 안남면 주민들이 주민자치 방식으로 일궈온 작은음악회, 배바우작은도서관, 안남어머니학교, 배바우신문, 배바우장터,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 산수화권역사업 등은 이런 자치의 소산이다. 안남면에서 시작된 물길은 인근 안내면을 거치면서 어르신 문해학교인 행복한 학교와 행복한어린이집보육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옥천으로 흘러나와 농정거버넌스 조직인 농업발전위원회와 학교급식지원조례, 옥천푸드지원조례, 옥천푸드유통 및 가공센터, 직매장 등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었다.
열악한 농촌에서 생활정치와 풀뿌리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 협동과 연대의 기치를 내걸고 밑바닥에서부터 피돌기를 하는 운동은 조금씩 스미고 번지고 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 농촌에서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주적인 이런 운동이 공기처럼 퍼져 자치와 자급이 이뤄질 때 농촌은 스스로 변화할 것이다. 내생적 발전으로 스스로 살아남을 것이다. 대상화되기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움직거릴 것이다. 전국 각 농촌의 작은 코뮌commune들이 살아나고 연대할 때 세상은 변화될 거라 믿는다.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필자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실장. 옥천 사람. 2002년부터 옥천신문 기자로 재직해왔다. 10년이 되던 해 옥천살림에서 공공급식배달을 3년 동안 하고 다시 신문사로 복귀해 일을 하고 있다. 3년 동안 청산면에서의 생활, 3년 동안 공공급식배달이 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는데 큰 자양분이 됐다. 지역의 공공성을 키우고 살맛나는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