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을 위한 나라, 농을 위한 법

벌어지는 도농격차와 고령화
한때는 농촌이 도시보다 더 잘 살았다. 1988년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104.8%였다. 하지만 1989년부터 도농간 소득 격차는 역전되었고 1995년 이후 그 격차가 점점 벌어져 2012년에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57.6%까지 낮아져 거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그나마 올라서 65.5% 수준이다.
  우리 농촌은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비율은 매년 높아져 2016년 40.3%에서 2018년 현재 44.7%로 증가 추세에 있다. 농가인구 역시 매년 감소하고 있어 2000년 약 400만 명에서 현재 약 23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농촌에 기반을 둔 지역들이 수십 년 후 사라질 것이라는 뉴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어떠한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개년 평균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3%이고, 2017년 잠정 식량자급률은 48.9%이다.
  농가소득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가도 계속 늘고 있는데, 2017년 임차농가 비율은 전체 농가의 56.4%이고 전체 농지 중 임차농지의 비율 역시 2011년 47.3%에서 2017년 51.4%로 증가하였다. 우리가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을 체결한 지도 벌써 15년. 2019년 현재까지 16건의 FTA 체결이 있었고, FTA 특성상 우리 농업의 희생과 이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했다. 우리 농촌은 지금 쇠락을 넘어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농업과 농촌은 그냥 이렇게 사라져도 상관없는 것인가. 과거에는 그 쓸모에 따라 존재했던 직업이 사회가 변하면서 사라진 것처럼, 농업과 농촌 역시 그렇게 사라져도 괜찮은 것인가. 식량안보, 환경보전 및 안전한 농산물 공급 등 농업과 농촌이 소멸하지 말고 생존해야 하는 수많은 당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농업·농촌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농촌과 농업을 생존시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현재 운영 중인 법 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는 농업의 백년대계를 세우고 이에 맞는 기본적인 개념과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 법은 국가의 이러한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 농업식품기본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 농업식품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농업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운다. 법률이 의미를 지니려면 현실에 적용되어 구체적인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실상 이 법에서 정한 국가의 역할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을 뿐더러 현실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이상으로 남아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
농업·농촌(이하 농업) 관련 법령은 비법조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100개가 훨씬 넘는다. 농업 분야 법령을 살펴보면 국가가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이 된다. 국가의 역할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하 농업식품기본법)이 있고, 농업 또는 농업인 육성과 진흥을 위한 육성법(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친환경농어업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등)과 진흥법(농촌진흥법 등)이 있다. 그리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위한 보전법(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자유무역협정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이 있고 마지막으로 농업 생산수단과 관련된 법(농지법, 초지법 등)이 있다.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서 농업 관련 법을 구분해보면, 국가가 나서서 다른 산업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육성 및 진흥법이 있고, 또 한국이 제조업 중심으로 세계 경제에서 비교 우위를 가지므로 제조업에 대한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농업을 희생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 자체 내지 국가 운영 차원에서 농업의 필요성을 인정해 농업 자체를 지키고 농업의 피해를 줄이는 보전법이 있다. 나아가 농업과 농업인이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누구나 함부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생산수단과 관련된 법 등이 있다.
  국가는 농업의 백년대계를 세우고 이에 맞는 기본적인 개념과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 법은 국가의 이러한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 농업식품기본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가 농업식품기본법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다했어도 우리 농업의 현실이 이렇게 슬플까.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제대로 시행했어도 도농 간 소득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졌을까. 이 법에 맞춰 국가가 그 역할을 다해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였어도 농촌에 청년들이 유입되지 않고 노인들만 사는 공간이 되었을까. 국가가 농업의 주요한 공익적 기능 중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 역할을 했어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고작 48.9%에 머물렀을까.
  우리 농업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농업식품기본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거나 이상에 불과하다. 법률이 그 의미를 가지려면 현실에 적용되어 구체적인 효과가 발생하여야 한다. 국가는 농업식품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농업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국가가 세운 계획은 단지 계획일 뿐이고, 실제 농업은 이상적인 계획과 달리 더욱 힘든 현실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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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식품기본법에서는 온갖 좋은 말로 국가가 농업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수행하는 산업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이 법에서 정한 국가의 역할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을 뿐더러 현실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이상으로 남아 있다. 농업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국가는 법에서 정한 대로 하면 된다.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을 안정시키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 된다. 국가는 농업의 생존을 위해 호들갑스럽게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필요 없이 기존에 있는 법 조항을 문언적 의미 그대로 실행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만 하면 된다. 결국 이상뿐인 법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국가는 현재 법의 테두리 내에서 오로지 구체적인 실천만을 담보하면 될 것이다.

농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농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국가가 농지 소유에 대해서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례로 부재지주의 농지 소유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없어 국가의 농지 관리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국가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화하고 농지임대차 제도를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농촌 내 양극화, 공약형 직불제와 부재지주 문제 해결부터
농촌 내 양극화는 도농간 격차만큼이나 국가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ha 미만의 농지를 소유한 농민은 전체 농가의 70%이고 3ha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농가는 전체 농가의 7.7%에 불과하다.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쌀 직불금은 경작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많이 경작하면 직불금이 많고 적게 경작하면 적은 구조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직불금을 주는 목적이 단순한 소득 보전이 아니라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높게 평가하는 보상이라고 하면 기존의 직불금 지급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에게 농업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산업의 논리가 아니다. 농업의 생존은 국가가 지속되기 위한 필수 요건인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경작지 면적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하는 기존 직불제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강화를 위한 소위 ‘공익형 직불제’로 변경되어야 한다.
  한편 현재 직불금 제도가 하나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실제 그 비중이 작기는 하나 상당수 직불금 제도는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행안부가 제정하는 대통령령에 근거하고 있다. 직불금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고정직접지불금과 변동직접지불금은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나머지 경영이양보조금, 친환경농업보조금, 조건불리보조금, 경관보전보조금 및 밭농업보조금은 대통령령인 「농산물의 생산자를 위한 직접지불제도 시행규정」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다. 직불금 제도는 우리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요성에 걸맞게 직불금 제도는 행안부 차원이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법률로 제정 및 개정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공익형 직불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3년 차인 현재까지도 아직 구체적인 입법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기존 소득 보전 직불제에 대해서는 여러 국민의 반감이 있었다. 국가는 무엇보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제대로 알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작면적을 기준으로 소득을 보전해주는 기존 직불제를 이른 시일 내에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하여야 한다. 더욱이 공익형 직불제로 촉발될 수 있는 농업인의 기준과 부재지주에 돌아가는 직불금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사실 직불제에서 드러나는 부재지주 문제는 우리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제는 아예 방치되는 수준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우리 헌법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하여 현실에 적용한 법이 바로 농지법이다. 한데 농지법의 역사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확장하는 역사이다. 농지는 부동산이자 농업의 생산수단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와 기존 농민의 사망으로 비농업인이 상속을 통해 농지를 소유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로 농지가 도시로 편입되는 현상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현행 농지법을 위반하여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하고 농민이 이를 임차해서 경작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농업·농촌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는 농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농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하지만 국가가 농지 소유에 대해서는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례로 부재지주의 농지 소유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없다. 국가의 농지 관리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해도 이를 위한 기초자료가 없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국가는 농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 기초가 되는 농지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예외 규정으로 누더기가 된 농지법이지만 그래도 국가는 이 법을 기초로 농지를 관리하고 그 속에서 문제점을 파악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화하거나 농지임대차 제도를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농업의 생존이 국가의 생존이다. 농업이 소멸하면 국가 역시 위태롭다. 그래서 국가는 농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농업, 농촌, 농민이 힘들고 불쌍하니까 국가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국가 유지에 필수적이므로 공익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서 보상하고, 농업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며, 농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18※필자 임영환: 법무법인 연두 변호사.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농업개혁위원회 위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으로 농정, 농업식품 분야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