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의대 졸업자들이 국가시험을 보는 문제를 두고는 아직도 시비가 있으니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가까이 의사나 의대생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영문도 잘 모른 채, 게다가 수도권에 코로나19가 한창인 가운데 불안에 떤 셈이다.
오늘 이 글은 의사와 의대생이 왜 집단행동에 나섰는지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의료계가 반대한 여러 정부 정책 가운데 의대 입학 정원과 공공의대 신설이 핵심이었다니, 내 오랜 공부 거리인 의료의 지역 불평등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너지는 일부 지역의 ‘의료 시장’
한국의 의료는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하나하나 가격이 정해져 있고 공급자(제공자)와 소비자(이용자) 사이에 거래가 일어난다. 혼동하기 쉬운 것은 ‘국민건강보험’이 중간에서 지불을 대신하기 때문에 마치 공교육이나 공립도서관 서비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동네 의원으로서는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과 경제 원리의 차이가 없다. 진료로 수입을 얻어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수입이 적으면 운영이 어렵고 수입이 많으면 기관을 키우거나 더 많은 임금을 부담할 수 있다. 경제로 따지면 회사나 가게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한 의료 경제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면? 모두 아는 대로 한국은 지금 엄청나게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중이다. 출생이 적고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감소하는 ‘축소 사회’이기도 하다. 가장 인구가 적은 군은 총인구가 2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많은 농촌 지역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30%를 넘는다.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조만간 ‘소멸’할 것으로 예상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이런 인구와 지역 사정이 의료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한국 의료가 시장 원리를 따르는 것은 의료기관 대부분을 민간이 세우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기관 수와 병상 수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공공의료 비중이 전체의 5~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의료는 거의 전적으로 ‘시장형’ 의료체계라 불러야 하며,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를 제외하면 모두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제 주체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왜 병원이 없고, 있더라도 이름값을 못 하거나 병원답지 않은 병원이 그리 많을까? 병원이 있어도 전문의 구하기가 어렵다고 난리다. 이런 현상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인구 축소와 고령화, 그리고 시장 원리를 연결해 보라. 영화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서점, 대형마트가 없는 것과 꼭 같은 이유다. 수요가 적고 매출이 떨어지며 경영 수지를 맞출 수 없으면 시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구가 더 줄고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이런 의료 시장은 더 위축될 것이다. 일부 지역은 이미 병원이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의원 수까지 줄어들지 모른다. 작은 규모의 의원 또한 어느 정도 규모로 환자를 진료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기관을 더 자주 찾게 되지만, 전체 인구가 줄어들면 결국 의료 이용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공의료기관이 유일한 대안
시장이 무너지면, 즉 시장이 성립할 여건이 되지 않으면 그런 지역 주민은 의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현실 가능성과 무관하게 두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계속 시장 원리에 맡기는 방법인데, 하던 대로 하자는 이야기니 사실 대안이라 할 수도 없다. 주민들은 영화관이나 컴퓨터 가게를 찾아가듯 인근 대도시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하고, 그 결과 시장이 돌아가는 도시에는 병·의원과 의사가 몰린다.
지금 중앙정부와 많은 지방정부는 알게 모르게 이 시장 원리에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드러내 말은 하지 않지만, 가장 기본적인 보건의료 기반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도 적지 않다. 병원, 공장, 대학 그 무엇이든 경제 논리를 따르는 법이라 생각하면, 인구 감소와 경제 위축에는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회사와 학교는 생활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생활 기반을 마련하자니 인구가 적고 경제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악순환. 지역의 ‘경쟁력’을 말하는 한, 비수도권 인구 감소 지역이 전국적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딜레마다.
나는 두 번째 대안, 즉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늘리는 것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방방곡곡에서 의과대학을 신설하느니 대형 병원을 유치하느니 하는 공약이 난무하지만, 시장 원리의 연장선에서는 다 불가능한 꿈이다. 이들 또한 의료 시장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시장이 시장답게 존재해야 한다. 인구 2만, 3만의 군지역에 얼마나 큰 시장이 만들어지겠는가? 발전국가 시절의 지역 성장 모델은 잊어야 한다.
민간을 활용하자거나 ‘공공민간협력’ 모델을 말하는 이도 있으나,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시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운영 중인 민간병원에 돈을 지원하고 인력을 구해주는 것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작동하지 않는 시장을 두고 시장 원리를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상당한 재정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하면, 차라리 공공부문이 직접 운영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일이 더 쉬워서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운영이 부실한 민간병원을 인수하면 된다거나 도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을 유치하자든지 하는 구체적 방안은 생략한다. 다만, 어떤 형태와 방법이든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최우선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상태를 그대로 두고 보든지 공공이 나서든지 양자택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유감스러운 일은 전자의 길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는 점이다. 공공의료 확충에 많은 돈이 들고 따라서 국가 차원의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면, 지금 의료 시장이 무너지는 지역과 그 주민의 정치적 힘은 모든 측면에서 불리하다.
효율성 논리가 아닌 건강에 대한 권리
지역 의료 붕괴와 불평등은 왜 문제인가? 국가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적은 인구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더 어려워도 공공의료 확충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더 나은 공동체와 더 좋은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한국의 ‘나라 만들기’ 과정을 지배한 이념은 국가 발전, 특히 경제의 양적 성장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국가 이념은 지금도 큰 변화 없이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삼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후위기와 같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지구적 환경과 초고령화와 같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할 때 이런 국가적 지향을 더 유지할 수 없다.
지역 의료 또한 지금까지의 국가 발전 전략과 무관하지 않았고, 현재도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의면(의사가 없는 면)’을 없애자는 데서 시작해 1980년대 이후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 부담을 줄이자는 정책 목표는 오늘날 이른바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로 이어진다. 40년도 넘은 국민건강보험의 틀은 큰 변화가 없고, 의사가 모자라는 지역에 공중보건의나 보건진료원을 두겠다는 구상도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지금까지 한국 보건의료를 움직인 원리는 민간 부문 위주의 시장 메커니즘이었다. 의료의 접근성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되 시장 원리에 따르는 것, 그것이 주류였고 패러다임이었다. 결국은 공공병원조차 이런 시장 원리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 그것이 바로 한국 보건의료 전체와 지역 의료의 오늘을 빚어낸 이념이자 원리라 할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축소가 시장 원리와 모순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지적했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공공부문 확충조차 과거의 패러다임, 그중에서도 효율성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민간병원이 역할을 하기 어려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면서, 인구 얼마당 하나의 센터를 둔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일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이런 효율성 논리를 적용하면 몇 개 군을 합해야 한 개 센터를 세울 수 있고, 멀리 사는 환자가 여기까지 오려면 응급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다.
과거 패러다임으로는 인구가 적은 모든 지역의 의료 투자는 조만간 ‘비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는 그 자체로 효율성 논리와 조화되기 어렵다.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도 아니다. 순전히 경제적 측면만 보면 사회적 부담에다 사회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 발전에, 경제성장에, 다시 성장 동력에, 경제와 효율성 논리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짐이고 사회문제다.
나는 효율성이 아니라 건강에 대한 권리가 노인 건강과 지역 의료의 토대, 그리고 제1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충분한 병원과 의사, 더 많은 보건진료원, 적절한 돌봄과 방문보건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인구 몇 명당 숫자를 따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어디에 살고 어떤 형편이든 적절한 의료와 돌봄을 받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살다 보니 인구 2만도 안되는 지역이라 응급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공공의료의 시작을 위해
시장 원리가 아니어도, 또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때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인구 3만인 지역에서 300병상 병원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비효율적인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환자 수가 적어도 전문의를 채용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필요한 장비를 사서 운영해야 한다.
시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거듭 말한 것과 같이, 국가를 빼고는 정책과 투자의 주체를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사정에서는 시장 원리를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와 정부는 재정 사정을 앞세워 이런 투자에 소극적일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과거 패러다임 그대로 민간과 시장 원리를 되풀이할 것이다.
지역 의료의 앞날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화’가 가능한지에 달렸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과 사업 논리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하기에는 모든 조건이 불리하다. 현상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관계는 당사자인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 그리고 이들의 상황과 고통이 어떤 정치를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달라지리라. 드러내고 말하며 요구할 때, 문제를 전국화하고 국가화할 때, 국가와 중앙정부, 국회가 압력을 느낄 때 새로운 공공의료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사)시민건강연구소 소장. 건강정책, 공공보건의료, 건강 불평등과 건강정의 등을 공부하며, 최근에는 ‘비판건강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최근 펴낸 책으로 「멀티플 팬데믹」(2020, 공저), 「포스트 코로나 사회」(2020, 공저),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2019), 「건강보장의 이론」(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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