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미래, 농촌 주민 스스로 만든다

작년 한 해는 코로나 팬데믹에 장마와 태풍까지 겹쳐 농업이 정말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해가 있었나 싶다. 풍년이 들었다고 농민이 행복했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농촌이 어렵기는 매년 마찬가지였고 반복되면서 유전자처럼 몸에 새겨져 왔다. 그럼에도 농촌 주민(농민)은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씨앗을 뿌리러 들판으로 나갈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마을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이런저런 전략을 짤 것이다.
 전국 농촌을 둘러보면 모두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열심히 실천하며 조금 더 살기 좋은 농촌으로 만들어낸 사례가 여럿 보인다. 정책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 사례도 있고, 억대 농부 기사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례라도 오래가지 않고 널리 확산되지 않는다. 좋은 것이라면 빠르게 확산하고 전파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사실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살펴보면 문제 자체는 너무 쉽게 파악된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전문가와 보고서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운 정책도 계속 도입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좋다는 정책도 추진 과정에서는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정부 예산이 적게 투자되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농촌정책과 농업정책의 칸막이 극복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제안해온 몇 가지 관점이 있다. 농업정책의 범위를 농사짓는 농업인뿐 아니라 농촌에 사는 주민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농업정책을 정부나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농촌 지역사회가 직접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농민단체도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 하고 지역사회단체와 협력해야 한다. 농촌 읍면의 주민대표조직으로 주민자치회에 주목하고 산하에 지역농업분과를 조직해야 한다. 농촌사회의 심각한 문제 영역마다 다양한 학습운동을 조직하고 스스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제안들이 일부는 논쟁적일 수 있고, 일부는 매우 당연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을 제대로 토론하지 않은 채 부처별 칸막이 속에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정해진 정책이 ‘꼬리표’가 달린 채 지방으로 시달되는 상황이다. 또 지역사회의 다양한 민간단체 사이에 공론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다. 기껏해야 공청회나 토론회가 한두 번 열리고, 서명운동이 있는 정도에 그친다. 정책 결정은 아주 멀리서 이루어지고 농촌 현장에는 학습과 토론, 합의의 과정이 없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농촌 현장 리더의 고령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새로운 활동가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과연 미래가 있는 농촌이고 정책일까?
 결국 정책 결정 과정에 현장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농촌 주민(농민)의 학습과 자치역량을 키워 정책의 통제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화에 집중해야 한다. 후배 활동가도 직접 키워야 한다.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농촌이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 농촌정책의 전면에 나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대안이다. 지자체의 행정, 민간단체, 또 중간지원조직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1년 새해에는 예전 농민운동이 그래왔던 것처럼 학습전통을 복원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조직화된 역량’만이 정책도 바꾸고 지역사회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가까이에 있는 읍면 단위에 더욱 주목하며 횡적 연대를 강화하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보자. 읍면이야말로 원래 지방자치단체였고 정책의 칸막이를 극복하여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꿈꿀 수 있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필자사진(구자인)※필자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의 일환으로 마을만들기 방법론에 관심을 가지며 현장 실천과 정책 참여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농촌 면 단위 지역사례 만들기와 현장 활동가 재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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