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위한 농정에서 주민자치로

농촌은 무관심 너머에 있다
눈이 많이 왔다. 어렸을 적 서울에 살았지만, 눈이 많이 오면 도로와 자동차 사고를 걱정하는 말보다 ‘풍년이 들겠구나’ 하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1970년에 전체 인구의 70%이던 농가 인구는 2019년에 4.36%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농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 선거에서 농업 관련 공약은 애써 뒤져봐야만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지난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행사에 대통령이 17년 만에 참석했다는데 그 소식을 중요하게 다룬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무언가를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TV와 동영상 채널엔 먹방이 넘쳐나고 코로나19로 친환경농산물 인터넷 쇼핑몰도 성황이란다. 하지만 농민이 줄어들고, 농지가 없어지고, 땅과 물이 오염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농장의 돼지와 대형마트 진열대 위의 삼겹살을 연결하지 못한다니까.
 농촌은 무관심 너머 오해와 왜곡의 대상이다. 누군가에는 빈민촌인데 다른 누군가에게 전원주택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안빈낙도의 낙원인데 누군가에는 개발해야 하는 땅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도 없다. 줄줄이 폐교가 생겨나고 젊은이를 볼 수 없고 루저Loser가 사는 곳으로 취급하지만, 그래도 농촌은 남아있다. 농촌은 여전히 관심 없는 농업과 줄어든 농민을 품고 있다.

눈 내린 완주군 고산면. 내가 사는 동네이다.
눈 내린 완주군 고산면. 내가 사는 동네이다.

농촌도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갔다
변하지 않은 건 농사로 돈을 버는 게 어렵다는 사실이다. 2018년 통계청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농가의 평균 농업총수입은 3576만 원이었다. 이 수치는 평균이니 높은 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있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1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농가는 전체 농가의 3.6%에 불과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수치가 수입, 즉 매출액이라는 것이다. 농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제외해야 순수익이 된다. 2018년 농가의 평균 농업경영비는 2284만 원으로 농업총수입에서 이 농업경영비를 빼면 농업의 평균 순수익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300만 원가량이다. 경제적인 성공을 할 수 있다고 귀농을 부추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이농하지 않았을 것이며, 생전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던 도시민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현재 농민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은 농정 당국자들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5000만 원가량의 순수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8년 통계를 보면 경지 규모 7ha 이상 10ha 미만(약 2만~3만 평)에서 1억4000만 원 정도의 농업총수입과 5200만 원 정도의 순수익이 있었다. 저렴하다고 하는 전라남도의 농지 가격이 평균 4만5000원 정도 하므로 농지 매입에 10억 원을 투자해야 1억 원 이상의 매출과 50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생기는 셈이다. 5%가 넘는 수익률이어서 은행에 예금해놓는 것보다 나은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이 경지 규모의 경우 연간 2200시간(주당 4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한다. 농사로 돈을 버는 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듯하다.
 확실히 변한 것 중의 하나는 농촌의 소비지출이다. 1988년 농가의 소비지출은 603만 원으로 도시가구 소비지출의 30% 정도였으나 2018년 1830만 원으로 늘어나 도시가구 소비지출의 80% 수준이 되었다. 이 평균은 그나마 농촌의 고령 1인 가구가 끌어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농가의 소비지출을 3인 가구로 특정하면 4158만 원, 40대 가구로 특정하면 3909만 원으로 도시의 소비지출 3139만 원보다 크다. 이는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돈을 주고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화, 전문화로 포장한 농업의 산업화는 농민도 자신이 먹는 식량을 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작은 지하 저장고는 냉장고로, 이웃과 즐기던 놀이와 공동체 문화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으로 대체하였다. 예전에는 마을과 읍내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했지만 더 좋은 상품과 더 나은 서비스가 있는 인근 도시를 빈번하게 오고 간다. 그렇게 농촌은 큰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농촌이 자본주의화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현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그 답은 겸업이다. 1960년 전체 농가 대비 전업농가의 비율은 73.2%였으나 2018년 56.8%로 줄었다. 농사가 주된 생계수단이 아닌 농가, 이를 2종 겸업농가라고 하는데 이 비율은 14.3%에서 31.8%로 증가했다. 젊은 농가일수록 겸업의 경향은 더 강하게 나타나 40~50대 농가의 전업농 비율은 30% 이하로 떨어졌다. 그래서 농민이 농사만 짓지 않았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농촌의 공동체 덕분이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다를 뿐.

02
시장정책은 농촌을 살릴 수 없다

이렇게 농촌 생활이 쉽지 않은데 왜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라고 부추길까. 더 나아가 소수의 성공한 귀농 사례들을 내세우며 가능성이 낮은 일을 하라고 지원까지 하는 걸까. 농촌에 관심이 생긴 건, 20년 전 호주 크리스탈워터스마을의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Permaculture Design Course에 참가해 생태마을을 공부하게 되면서이다. 생태마을을 공부해보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농촌 마을은 서구의 생태마을보다 훨씬 더 생태적이었다. 하지만 그 전통과 지혜를 무시하고 시멘트로 포장하고 공동체 문화가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시스템 에콜로지System Ecology 공부를 포기하고 우리나라 농촌 마을을 지속 가능한 마을로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다. 마침 정부는 농촌에 대한 새로운 지원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농촌의 소득원을 체험 혹은 관광과 관련한 3차 서비스로 다각화하기 위해 마을(리)에 보조금을 지원하였다. 나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을 대상으로 생태마을이 될 수 있도록 마을 발전 방향을 협의하고 사업을 발굴하여 이를 지원사업과 연결하는 일을 했다.
 행정 절차상 이러한 사업의 시작은 계획을 만드는 것이다. 이전까지 계획을 수립한 기관은 이후에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계획을 만들 뿐 아니라 주민교육도 하고 더 나아가 초기 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인 ‘컨설팅’ 개념을 도입하였다. 3~4년 정도 이 일을 하던 어느 날, 농정 담당자, 농촌 전문가들 앞에서 한 마을의 계획을 발표했더니 ‘이장’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마을 계획은 다 똑같아서 차별화가 되지 않고 경쟁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농촌 마을을 차별화할 생각도 없었고 경쟁력을 갖게 할 마음도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농촌 마을을 차별화하여 경쟁력을 갖게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웃 마을에서 했던 사업과 활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어려운 농촌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차별화된 일을 계획하란다.
 유사한 사업을 지원받은 마을은 점점 많아졌고 사업 취지에 맞는 일을 성공한 마을이 생겨났다. 이 사업의 담당자가 이러한 몇 개의 마을을 성공모델로 포장하여 이 정책의 근거와 명분을 확보하면서 사업은 계속되었다. 더 나아가 명칭과 내용이 조금 바뀐 여러 정책으로 오히려 확장되었다. 사업에 실패한 다수의 마을이나 이러한 사업에 접근도 하지 못하는 고령화된 작은 마을에 대한 대책을 묻는 것은 공허한 일이었다. 소수의 성공한 귀농인을 모델로 귀농 정책을 펴는 것과 닮은꼴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농정은 보조금을 지원하여 그 일부가 성공하면 정책도 성공한 것이라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면 성공 가능성이 큰 대상을 찾아 지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정부의 보조금은 지원받지 않아도 되는 소수의 농민만이 누리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농업과 농민, 그리고 농촌은 변하고 있는데 경쟁력과 차별화를 내세우는 관련 정책의 기조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고산고등학교 2020년 졸업식. 졸업생들은 누구나 레드카펫 위를 걸어 졸업장을 받는다.
고산고등학교 2020년 졸업식. 졸업생들은 누구나 레드카펫 위를 걸어 졸업장을 받는다.

누구나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누구나 농사를 지으면 적정한 수익이 보장되는 정책은 없는 것일까. 농촌에 살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농촌을 발전시킬 수 없을까. 누군가를 위한 특수해법이 아닌 누구나를 위한 일반해법을 만들 수 없을까.
 전북 완주군에서 추진한 로컬푸드 사업은 일반해법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특별한 농민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떤 작목이라도 팔 수 있는 직매장이 있고 로컬푸드와 관련된 원칙을 지키면 어떤 농민이라도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특정 농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별 농민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지원 정책은 거의 없다. 대신 공공자금으로 구축한 로컬푸드 생산과 유통 시스템은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농민이 공유하는 자산이 되어있다.
 완주군 고산면의 마을교육공동체도 눈여겨 볼만하다. 2003년 삼우초등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면서 시작된 학부모 운동은 ‘동네 중학교 보내기 운동’으로 이어져 관내 초등학교 졸업생 90% 이상이 고산중학교에 진학하고 있고 2018년에는 고산고등학교를 공립형 대안학교로 전환했다.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고산향교육공동체는 방과후학교를 통합해 지원하는 풀뿌리교육지원센터를 만들었고 매년 봄과 가을, 모내기와 청소년 캠프 행사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청소년 프로그램과 청년 활동의 연계를 시작했다. 고산의 학부모들은 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학교보다 어느 아이라도 안전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원했다. 또한, 굳이 대학을 가지 않는 아이들도 지역에 남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바라고 있다. 상위 12개 대학에 진학하면 1000만 원의 학비를 지원하는 완주군의 장학제도와 대조된다.이러한 일반해법이 가능하게 할 정책을 누가 만들 수 있을까. 관성화되어 있는 현재의 정책개발 체계를 쉽게 바꾸기 어려워 전문가와 관료에 기댈 수 없고, 경쟁을 통해 화폐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시장 중심의 발전모델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희망을 찾는 것도 요원하다. 그나마 무언가라도 하려면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는 ‘사회혁신’이다. 사회혁신은 사회문제의 해결 권한을 국민, 주민에게 주는 것으로 시장이나 공공부문이 적절하게 충족하지 못하는 사회적 요구를 비영리조직과 사회운동가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이해당사자인 주민, 시민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것이다. 농촌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주민이고 그 해결방법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주민이다. 농촌마다 상황이 다르고 지역마다 수요가 다를 것인데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만든 기성복 같은 정책이 몸에 꼭 맞을 리 없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활용할 제도가 있으니 바로 주민자치이다. 최근 제한적이던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여 그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농촌 주민의 주민자치에 대한 인식 제고, 주민자치회의 구성범위에 대한 조정, 지역사회 내에서 주민자치회의 대표성 획득, 주민자치위원의 민주적 역량 강화, 주민자치회와 지방정부와의 거버넌스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하지만 충남 홍성군 홍동면, 충북 옥천군 안남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완주군 고산면의 사례는 생활권을 기반으로 한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사회혁신과 주민자치의 콜라보는 시장정책에서 벗어난 모두를 위한 일반해법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농촌에 농민만 살았던 적도, 농민이 농사만 지었던 적도 없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지자 내가 사는 동네에선 ‘느닷없는 영화상영’이 있었다. 그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으니 영화를 보며 서로 위로하자는 행사였다. 정작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은 언택트Untact로만 살 수 없나 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위해 우리 동네 사회적경제 조직과 학부모회는 기부와 자원봉사를 연결해 반찬을 만들고 나누었다. 그야말로 마을의 재발견. 전염병이 돌아도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도 심지어 더 극한 상황에도 마을과 동네가 건재하면 살 수 있다. 살아나갈 수 있다.
 돈 잘 버는 농민을 많이 만든다고 농촌이 살아날 리 없지만, 농촌이 살아나면 큰돈을 벌지 못해도 농사짓는 농민이 많아질 수 있다. 그래야 농업도 산다. 그래서 시장 중심의 농업정책은 농업을 망하게 했고 농업 중심의 농촌정책은 농촌을 망하게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농촌에 농민만 살았던 적도 없었고 농사만 지었던 농민도 없었다는 변하지 않은 사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또렷이 말해주고 있다.

필자사진(임경수)※필자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 화학공학, 대기오염, 생태공학을 전공했지만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농촌이 살아야 한다며 20년째 농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10년 차 완주군 고산면의 귀촌인이며 「이래서 나는 농사를 선택했다」, 「농, 살림을 디자인하다」, 「이제, 시골」을 쓴 작가이자 최근 요리에 빠진 신중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