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법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나는 20여 년 전부터 친환경 가공식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유통해 왔다. 2015년부터는 친환경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우리 농업과 밀접한 삶을 살고 있다. 며칠 전,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농촌활동가를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농업, 농촌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젊은 농민이 무척 귀한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나마 요즘 농사를 짓기 위해 지역에 내려오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스마트팜을 중심으로 한 사업적인 관점으로 농업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토양을 기반으로 한 농업이 미래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어린 이야기가 오갔다. 영양액으로 키운 농산물이 농업의 중심이 된다면 앞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 학교급식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편의점.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서울시 학교급식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편의점.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요즘 편의점에 가면 학교급식 바우처를 지원한다는 피오피POP와 글귀를 볼 수 있다. 서울시는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바우처 지원을 편의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판매 금액의 50% 정도를 본사가 가져가는 편의점의 유통 구조를 떠올려 본다. 아이들을 잘 먹이기 위해 책정된 금액의 반이 대기업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때로 정책은 왜 이렇게 편의주의적인가.
  세상이 편의성을 중심으로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렇게 달라져 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먹거리가 어떤 혜택이 될지, 아니면 대단한 위협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도 어렵다. 먹고 사는 것은 생명 유지에 직결되기 때문에 어쩌면 핸드폰이나 자동차보다 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어떤 정책보다 농업에 관한 정책이 우선시 되어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이런 고민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몫이 된 것만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먹고 사는 것은 생명 유지에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정책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은 생명 유지에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정책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가공식품의 시대, 농업 그 이상을 바라봐야
 우리 농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는 농업, 농업인에 대한 특별한 제도적인 보완과 개선책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농업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이끌려면 농업 자체뿐만이 아니라 농업 외 산업과의 관계 문제, 소비자의 소비문화 문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유통 문제 등에 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은 농업만으로 존재의 생명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공식품의 시대다. 수많은 가공식품, 반조리 제품, 밀키트 등이 소비시장에 넘쳐나고 있고, 손쉽게 먹고 버릴 수 있는 배달 음식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간편식의 소비가 늘어나니 1차 농산물 소비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각 가정의 냉장고에 더 빠르게 다가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제조사의 브랜드명, 디자인, 가격, 중량 같은 원료 외적인 면을 주로 본다.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는 가공식품에 어떤 원료가 쓰였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가공식품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생산비가 높은 우리 농축산물의 사용 비중은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우리 농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와 유통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 농축산물이 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이지 않는다면, 수급이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한 수입 농산물에 밀려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농축산물을 주요 원료로 쓰는 생산 및 유통업체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신생 업체에는 정책적 투자 제안과 함께 창업비 및 운영비를 지원하고, 중견 업체에는 사업 확장이나 운영비 및 생산 설비 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이 없으면 우리 농산물을 주로 이용해 생산하는 업체들은 가격과 브랜드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몇 년 사이에 지역의 소규모 시장이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많이 성장했다. ⓒ농부시장 마르쉐
몇 년 사이에 지역의 소규모 시장이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많이 성장했다. ⓒ농부시장 마르쉐

‘가치’를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
 농부시장 마르쉐의 성공을 기점으로 몇 년 사이에 지역의 소규모 시장이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많이 성장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주춤한 상태이지만 나는 이런 작은 시장들 사이에서 우리 농산물 소비의 희망을 보았다. 소규모 생산자는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 또는 직접 만든 먹을거리를 가져와 소비자와 만난다. 대부분 얼굴이 있는 지역 생산자의 재료 또는 친환경 재료로 만든 것이다. 젊은 청년 소비자들이 이 시장을 궁금해하며 모여들었고, 또 젊은 청년 생산자들이 하나둘씩 판매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일반 가공식품보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구매하는 가치 지향의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소비가 늘어나니 기발하면서도 맛있고 원료가 좋은 가공식품이나 농산물이 다양하게 기획되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치 있는 소비문화를 새롭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들이 지역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소규모로 가공된 먹을거리가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확대된다면, 이윤에 따라 사고하는 대기업 중심의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지역의 작은 시장에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규모 생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생산하는 수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판매하고, 알리고, 키워낼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보완 장치 또한 고민되어야 하겠다.

중고등학교는 아직 급식비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부 등의 간단한 가공식품도 수입 원료가 들어간 재료를 쓰는 것이 현실이다.	ⓒ구희현
중고등학교는 아직 급식비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부 등의 간단한 가공식품도 수입 원료가 들어간 재료를 쓰는 것이 현실이다. ⓒ구희현

공공먹거리 영역을 보완해야 하는 이유
 우리 농산물 소비처 중에 하나인 공공의 영역, 그러니까 학교급식 및 공공급식에서 소비되는 가공식품의 원재료가 가급적 우리 친환경 농산물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학교급식은 전체 식재료 소비가 3조 원을 넘는 시장(2019년 기준 3조 117억 원, 출처: 농림축산식품부)이며, 급식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이후 식품 선택과 소비의 트렌드를 이끈다고 봤을 때 학교는 국민 먹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물론 학교급식은 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우리 농산물과 친환경 농축산물의 사용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는 아직 급식비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두부 등의 간단한 가공식품도 수입 원료가 들어간 재료를 쓰는 것이 현실이다.

표

  표에 나타난 전국 학교급식 식재료 사용 비중을 보면 공산품 비중이 36%에 달한다. 초등학교는 1차 농축산물을 대부분 국내 친환경 농축산물로 사용하지만 장류, 양념류, 소스류, 후식류, 반조리 가공식품류는 예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교급식, 공공급식, 군부대급식 등 공공영역의 식재료 조달 시스템이 가격과 브랜드 중심이 아니라 국내산 원료 중심, 품질 기준의 건강한 먹거리 조달 체계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농축산물이 공공영역 내에서 안정적으로 소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의 공공먹거리 영역의 식재료 생산 및 공급 현황 등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컨트롤하여 조정하는 ‘중앙공공먹거리지원센터’의 통합 관리 시스템을 제안한다. 예측이 불가능했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급식 등의 공공먹거리 영역도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학교급식 업체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농민들도 급식 물량이 줄어들거나 중단되는 순간 공급처를 잃게 되는 천재지변과 같은 일을 겪게 된다. 때문에 중앙공공먹거리지원센터에는 중앙의 주요 정책 결정 기구의 힘을 얹어서 발 빠르게 위기 대책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추진체와 동력을 함께 실어주어야 농업, 농촌의 먹거리 생산과 공급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민에 따라 적절한 먹거리 교육을 연구하고, 기획하고, 추진하고, 실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국민에 따라 적절한 먹거리 교육을 연구하고, 기획하고, 추진하고, 실행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국민먹거리교육센터’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국민먹거리교육센터’를 민관 협력하여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 시험과 성적, 대입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초중고 기초 교육 시스템 속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잘 먹고 살아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국민먹거리교육센터를 통해서 우리 농산물을 잘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훌륭한 삶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식문화가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우리의 고급문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좋겠다. 건강한 먹거리 문화 소비자들이 사회 내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문화는 소비를 이끈다. 그러므로 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 성장과 성숙에 따라 적절한 국민 먹거리 교육을 연구하고, 기획하고, 추진하고, 실행하는 기관을 제안해본다.
  우리 농축산물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생산되어 공급되는지, 건강한 먹을거리를 어디서 어떻게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지, 우리 아이들과 국민이 지역 곳곳에서 손쉽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농축산물과 이를 활용한 가공식품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생산지에 대한 지원과 개선책이 늘어나도 소비층의 공감과 움직임 없이는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들 수 없다. 농업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에서 나는 우리 농업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성장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해외의 농축산물 수입이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과 직결한 우리 농축산물, 그러니까 우리 먹거리는 우리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깊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수입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우리 먹거리 체질을 우리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체질로 변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정책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송정은※필자 송정은: 농업회사법인 네니아 전무이사, 친환경 한식 레스토랑 꽃밥에피다 대표. 이제는 대학원생이 된 딸아이의 아토피로 친환경 자연식에 눈을 떠서 20여 년 전부터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친환경 식생활을 실천하고 있으며, 업을 통해서 만나는 이들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