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넣는다’는 섬뜩한 말
종종 노량진 학원 동네(이하 노량진)에 간다. 머리도 깎고 밥도 먹는다. 동네 자체가 이른바 고시생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하나의 ‘타운’이다. 이발비는 7000원. 아마도 서울에서 제일 쌀 거다. 노인들이 가는 파고다 공원 일대의 5000원 균일가를 빼면 더 싼 데를 찾을 수가 없다. 사람의 노동비용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5000원, 6000원 받아서는 최소한의 일당을 손에 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적용되는 개념이 박리다매다. 이 말에는 상당한 위험이 포함되어 있다. 판매자의 더 많은 수고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 이때 쓰는 말이 ‘갈아 넣는다’는 섬뜩한 용어다. 내가 이 동네에서 머리를 깎고는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팁 1000원, 2000원을 더 드리는 거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조차 결국은 자기 위로가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이미 일상화된 한계를 넘어선 가중 노동의 현실이 노량진처럼 구매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동네에서 자주 보인다. 컵밥이란 음식이 있다. 역시 노량진에서 크게 히트 친 아이템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동작경찰서를 지나 노들역 쪽으로 걷다 보면, 길가에 하나둘 나타나고, 이내 대열을 이룬다. 뭐, 가볍게 보면 젊은이들의 푸짐한 간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허나 이면에는 공급자나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고단한 현실을 반영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좁은 가게에서 음식을 만드는 수고도 그렇고, 고시생들이 식비를 줄이기 위해서 이 음식이 탄생했다는 역사를 보면 어찌 이것이 ‘예능’이나 즐거운 ‘화제’로 텔레비전에 포착되는 것인지 슬퍼진다.
예전에 잠깐 이 동네의 식당을 두루 취재한 적이 있다. 대량 소비 음식의 여러 갈래를 막연히 조사하던 시절이었다. 노량진에는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음식이 다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은지라 최근 음식 소비 트렌드를 얻기에 최적이다. 앞서 컵밥은 물론이고 젊은 셰프들이 만드는 ‘모던’한 짬뽕, 데이트할 때 먹는 비싼 파스타가 아니라 그야말로 밥값 정도 수준의 스파게티집도 있다. 7000원, 8000원짜리 스파게티를 보았을 때 나는 탄성을 질렀더랬다. 한국은 파스타가 고급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인테리어 비용 지출이 많고 월세 비싼 동네에 자리하는데, 이곳에서 그런 허영은 없다. 그저 맛있는 파스타 한 그릇에 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내가 이걸 보고는 “이탈리아 밖의 나라에서 이탈리아 가격에 파는 유일한 동네”라고 주변에 말했다. 이탈리아는 파스타가 주식이니, 그저 한 그릇에 일상의 가격, 이를테면 5유로니 6유로니 하는 집이 흔하기 때문이다.
‘단가’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싼 음식
노량진의 밥집은 과거에 비해 퇴색했다. 샌드위치며 파스타며, 특히 일본식의 덮밥류가 대히트치면서 전통적인 밥집은 절대 수가 줄었다. 지금도 빼곡하게 앉아서 ‘이모!’라거나 ‘어머니!’라고 호칭하며 밥 추가를 외치는 장면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시대의 변화가 또렷하게 느껴지는 업종이다. 식권을 끊으면 3000원, 4000원에도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요즘은 가격이 좀 올랐지만 그래도 일반 밥집보다는 1000~2000원 싸다. 저렇게 싼 음식을 지탱하려면 요리 노동자(물론 사장님도 가게 운영에 엄청난 노동을 같이 투입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들의 노동 집중력과 노하우가 엄청나야 한다. 심지어 손 많이 가는 계란말이 같은 반찬도 제공한다. 요즘 어떤 대학가이든 이런 식으로 ‘밥 대어 먹는 식권집’은 거의 사라졌다. 노량진이 그 마지막 현장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의 메뉴를 보자. 제육볶음, 소시지부침, 김치, 멸치볶음, 조미 김, 참치김치찌개. 주방은 거의 도가니처럼 열기로 가득 차 있었으며, 홀 보는 사장님은 월식권 대어 먹는 단골들 알은체에, 계산에 바빴다. 이 장면이 정경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나 같은 현장직업인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당최 ‘단가’가 나오지 않는 저 요리가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사장님은 최소의 마진을 얻고 있을까. 5000~6000원짜리 백반 한 상에, 더구나 식욕 엄청나서 밥과 반찬의 수요도 많은 학원가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런 밥집, 백반집은 안쪽의 골목에 들어 있다. 길가의 대형 건물 지하에는 뷔페 형식의 대형 식당이 꽤 있었다. 과거보다 숫자는 많이 줄었다. 폭증하는 고시생들의 점심을 대량 공급으로 해결해주는 곳이다. 이 식당의 주방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식당은 백반집보다 더 싸다. 따라서 더 저가에 공급할 수 있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우선 조리기기가 급식소 수준으로 크고 자동화되었다. 배식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뷔페 형태가 많다. 식재료는 어떻게 그리도 싼 것을 잘 사오는지 모르겠다. 밥값 단가에 맞추기 위한 공급시장이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식당들은 누군가 먼저 시작을 하는 바람에 식후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게 유행이었는데, 심지어 계란도 하나 주었다. 계란 파동이 일어난 이후에는 주지 못해서 고시생들의 원성(?)을 들었다고 한다. 노량진은 생활의 밥이란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해준다.
밥집의 분투를 나는 늘 응원한다. 먹는 지층의 맨 아래층을 일구는 생존형 식당을 보통 밥집이라 한다. 이런 개별적 식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가까운 곳에서 그날의 집밥과 비슷한 식사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밥집의 주인 여성을 이모니, 어머니니 하고 부르는 것도 이런 감정의 연장선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족에게 바치는 무한노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엄마니까, 이모니까 퍼줘야 한다. 개인 소유형 밥집은 노동과 소비시장의 건강함을 상징한다고도 생각한다. 구멍가게, 재래시장이 무너지면서 대형마트가 그 몫을 흡수한 것은 곧 자영업의 몰락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가. 작지만 가게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직원이 되어버리는’ 현상이다. 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프랜차이즈 업태가 유독 식당 분야에서 아주 강하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일상의 외식을 담당했던 밥집의 몰락을 보여주는 지표다. 더구나 최근에 뚜렷해진 배달의 활성화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백반의 비중은 아주 낮다. 크게 영세한 식당업 전체로 보아도, 배달시장에 참여한 식당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주 많다. 이들은 프랜차이즈 본사와 배달운영회사에 사실상 2중의 비용 부담을 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배달 비중이 올라가는 것을 시장의 변화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안타까운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혀가 제철에 무뎌지는 이유
밥집이 지켜온 미덕 중의 하나는 재래시장, 전문시장과 업종이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밥집의 주방장이나 주인은 상당수가 직접 그런 장에서 재료를 산다. 더 좋은 재료를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필자는 20년에 걸쳐서 시장을 보고 있는데, 과거보다 이들 영세 업주들이 새벽시장, 아침시장에서 훨씬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낀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비용을 무는 대신 장을 볼 수 없다. 재료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시장 나가는 물건, 프랜차이즈 나가는 물건이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 업소의 구매행위는 전통적 도매시장이 유지할 수 있는 활력이다. 더 나은 맛, 더 싼 재료를 위해 밥집 주인이 시장에서 따지는 중요한 원칙은 제철이다. 제철은 맛도 좋지만, 대개는 물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반은 사실상 메뉴가 없다. 그날 좋은 재료를 써서 최선의 식사를 준비한다. 같은 값일 때 백반집이 더 푸짐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백반집은 제철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가지고 있다. 매일 장을 보니까. 제철은 과거 24절기에 따라 달라졌다. 최근에는 하우스 재배가 활성화되었지만, 그래도 제철은 존재한다. 대체로 계절이 당겨지고, 출하 시기가 이중 삼중일 때가 많다. 이런 영농방식에 밥집 주인들도 적응하고 있다. 어쨌든 장을 보는 밥집에서는 제철의 재료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손으로 일일이 벗긴 머윗대조림, 고구마순 김치를 어디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대량으로 재료를 계획하여 준비하고 메뉴를 짜는 ‘업체의 식탁’은 고정 메뉴가 많고 메뉴 교체도 아주 늦다. 그날, 그 주의 시장 재료 이슈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혀가 제철에 무뎌진 것도 이런 음식 시장의 변화에 기인한다.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중국집의 짬뽕조차 과거에 제철 개념이 아주 강했다. 해산물이 나오는 철이 달랐기 때문이다. 냉동기술이 발달하고, 저가형 배달 매출이 늘면서 재료를 고정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중국집 주인은 알게 되었다. 배달은 오랫동안 배달원을 고용하여 월급을 지출해야 했으므로 재료비의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음식값은 올리기 힘들었으니까. 중국집이 하향 평준화된 것과 제철 재료 간의 상관관계가 또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들은 냉동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농수산물의 유통시스템에도 개별 시장과 동네 상인의 비중이 컸다. 물론 마트가 있었지만. 재료는 제철이 아주 강조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무와 배추 말고 채소의 제철을 잘 알고 있는 소비자들, 심지어 요리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주문만 하면 냉동이든 수입이든 저장품이든 공급해주는 도매상이 있으니 말이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봄을 예로 들어서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 딸기, 브로콜리 등 나오는 시기가 명확했다. 가을에 아스파라거스를 찾으면 시장 상인은 당황해 했다. 그러나 20년 만에 다시 찾았던 이탈리아는 달라져 가고 있었다. 그곳 역시 세계화의 파도에 힘겨워했다. 오랜 전통인 슬로푸드의 고향 이탈리아도 무너지고 있었다. 마트의 냉동식품 코너는 엄청나게 확대되어 있었고, 가을인데도 아스파라거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계절이 정반대인 지구 남반부산 칠레와 뉴질랜드에서 온 것이었다. 수산물 양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라였는데, 수입 양식 어류도 많았다.
밥집은 살아남을까
다시 백반으로, 밥집으로 돌아가자. 솔직히, 미래를 짊어진 젊은 셰프들에게 밥집을 하겠느냐고 물으면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고단하며, 미래 성장 가능성도 없는, 서두에서 묘사했듯이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시스템에서 누가 밥집을 하겠는가. 내국인의 기피로 많은 외국인들이 밥집에서 일한다. 그러나 요리를 담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설거지 같은 단순 육체노동을 하거나, 차라리 홀에서 일한다. ‘요리사’로 일한다고 해도 납품받은 완제품을 ‘봉지만 북 뜯으면 요리가 끝나는’ 프랜차이즈점에서 일하는 걸 선호한다. 밥집의 주방 내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그다지 좋아할 일이 아닌 것이다.
밥집은 살아남을까. 나는 이 상태로는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미래의 셰프들이 하지 않으면 누가 그 몫을 담당하겠는가. 적절한 노동과 휴식, 적정 이윤, 적정 재료의 수급이 있어야 한다. 음식 값은? 이 문제는 정말 아슬아슬하다. 보라. ‘차라리 사 먹는 게 싸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집에서 재료 사다가 밥하면 상당한 금액이 나올 때 주로 하는 얘기다. 월급, 월세, 재료비, 감가상각비, 세금 등을 따져서 도저히 남을 수 없는 가격이 현재의 백반 값이다. 상당수가 주인의 노동력, 즉 자기 인건비는 계산에 넣지 않고 굴린다. 좀 되는 집에서도 ‘내 인건비만 겨우 건지는 정도’다. 과거에는 저녁에 술을 팔아서 벌충하곤 했는데, 워낙 시장에 들어오는 술집과 밥집이 많아서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최소한 백반집의 밥값은 올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신문 칼럼에 우리나라 밥값은 가치에 비해 너무 싸다, 비슷한 소득 수준의 나라와 비교해서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백반 파는 밥집에서 주로 거론되는 문제점인 위생, 재활용 등도 밥값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댓글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오륙천 원 하는 밥값이 오르면, 위생이야 어찌 되었든 당장의 생존으로 한 끼를 먹어야 하는 많은 저소득자들, 부양해줄 가족 없는 가난한 노인들, 거두는 이 없는 아이들은 어쩔 것이냐는 글이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내 생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정상적인’ 밥값은 올라야 한다는 내 생각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밥값이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으로 유지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믿는다. 무슨 인간성이 무너지는가. 그렇다. 더 좋은 재료를, 최대한 깨끗하게 손질해서, 일하는 직원들의 인간다움을 보상해주면서, 숟가락 젓가락 통도 손으로 주물럭거려야 겨우 내 것을 꺼낼 수 있는 요상한 위생 상황도, 반찬 재활용의 욕망을 과감히 짓누를 양심이라는 인간성이 무너지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누군들 제대로 하고 싶지 않겠는가. 현실의 고단함이 그런 생각을 거두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타성으로 밀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5.8%이다. 그나마 자급률 92.1%인 주곡인 쌀을 제외하면 더 크게 떨어진다.(2019년 기준) 이 얘기를 듣는 많은 이들이 믿지 않는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농업을 정책적으로 포기하다시피 한 그간의 허물이 만들어 온 퇴적물이다. 70년대와 80년대, 관변 농업 언론은 물론이고 텔레비전과 신문마다 추수기에는 나락을 가득 베어 든 농부가 환하게 웃는 장면을 1면 톱으로 실었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인지는 우리가 다 안다. 밥값도 그렇다. 한식을 예찬하는 온갖 언론과 정책의 미사여구들 이면에 무너져 가는 밥집이 있다. 한 번이라도 먹어본 이가 없는 신선로와 삼색도미찜만이 한식이 아니라, 저잣거리 우리 동네의 6000원짜리 백반도 진짜 한식이다. 문제 해결은 이것을 알아채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필자 박찬일: 광화문 몽로, 로칸다 몽로, 광화문국밥 셰프.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만든 이탈리아 음식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 후 젊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슬로푸드, 로컬푸드 개념을 양식당에 최초로 적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재료의 원산지를 꼼꼼히 밝히는 방법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울진산 피문어, 진도산 보리싹, 서산 바지락처럼 선명한 원산지를 메뉴판에 적어놓아 화제를 모았다. 셰프를 맡고 있는 ‘광화문국밥’이 2020-2021 2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 그루망’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