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올, 내 마음의 외갓집”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고 있는 활기차고 씩식한 아내 김영미 씨, 차분하고 섬세한 남편 임소현 씨.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고 있는 활기차고 씩씩한 아내 김영미 씨, 차분하고 섬세한 남편 임소현 씨.

김영미 내 마음의 외갓집 대표

  강원 영월군, 봉래산이 여름꽃을 한아름 안았다. 보랏빛 라벤더의 짙은 향기에 취해 벌들이 춤을 추고, 외국 정원에서 봄 직한 핑크빛 아나벨 수국, 꽃봉오리가 돌고래를 닮은 델피늄까지 활짝 폈다. “와! 여기는 알프스 같네”, 찾아오는 이들의 탄성을 자주 듣는다는 ‘비밀의 화원’이다.
  수풀만 잔뜩 우거졌던 산자락에 펼쳐진 화려한 꽃밭처럼,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산촌에서 누구보다 다채롭게 사는 ‘특별난’ 부부가 있다. 활기차고 씩씩한 아내 김영미 씨, 차분하고 섬세한 남편 임소현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영미 씨는 5년 전부터 작은 정원에 갖가지 꽃나무를 심었다. 그녀의 작은 정원에 여름꽃이 만발했다.
김영미 씨는 5년 전부터 작은 정원에 갖가지 꽃나무를 심었다. 그녀의 작은 정원에 여름꽃이 만발했다.
정원 가꾸기에 푹 빠진 김영미 씨는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것”이라며 활짝 핀 아나벨 수국처럼 웃었다.
정원 가꾸기에 푹 빠진 김영미 씨는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것”이라며 활짝 핀 아나벨 수국처럼 웃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특별난’ 부부
  “소현 씨!” 밭일하던 김영미 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부르면, 임소현 씨가 어느새 조용히 나타나 아내를 돕는다.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고,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마음이 닮았다.
  5000여 평의 노지에서 채소, 과일 등 200여 가지 농산물을 유기농으로 키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농사의 목적은 ‘자급자족’이다. 김영미 씨는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농사짓는다”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산다”고 말했다.

캡션
김영미, 임소현 부부는 자연의 품에서 땅을 가꾸고 밭을 일구는 ‘자급자족’ 농민이다.

  “예전에는 된장찌개에 호박, 고추가 꼭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지금은 없으면 안 넣어요. 된장찌개는 묵나물만 넣고 끓여도 충분하거든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사는 거죠.”
  자연에서 받은 것은 다시 자연으로 되돌린다. 사람이 먹고 남은 푸성귀는 닭장의 토종닭과 백봉오골계의 몫이다. 생태화장실에는 ‘똥통 번지점프’ 장치가 있어 인분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흙으로 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은 땅에 양분을 공급해 또 다른 생명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돕는다.

자연과 어울리게, 하고 싶은 것은 다 한다
  부부가 사는 귀틀집은 임소현 씨의 작품이다. 8년 전, 그가 직접 산에서 흙을 퍼 나르고 나무를 베서 지은 통나무집이다. 주변과 최대한 어울리게, 동선을 해치지 않게 짓는 것이 목표였다. 김영미 씨는 “저도 남편도 성격은 정말 급한데, 무엇이든 절대 성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만 고민한다.

캡션
‘내 마음의 외갓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캡션
귀틀집은 임소현 씨, 정원은 김영미 씨의 작품이다.

  “산골의 삶을 최대한 즐기면서 살려고 해요. 도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넘치지만 가장 부족한 것이 자연을 느끼는 거잖아요. 우리가 가진 환경을 최대한 누려야죠. 해마다 여기를 어떻게 꾸며볼까, 저기를 어떻게 만들어볼까 고민해요.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를 자꾸 만들 궁리를 하는 거죠.”

캡션
정원을 가꾸는 김영미 씨.
02
김영미 씨의 정원에는 진한 라벤더 향이 가득했다.

  김영미 씨는 5년 전부터 작은 정원에 갖가지 꽃나무를 심었다. “부부는 꽃밭을 가꾸듯이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친정어머니의 한마디에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먹지도 못하는 걸 왜 심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재밌다. 앞으로 영국식 정원을 꾸며볼 계획이라는 그는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한다”며 웃었다.

우프 – 세계 젊은이들이 온다
  ‘내 마음의 외갓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유기농가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제도로, 전 세계적으로 150여 개의 회원국이 있으며 우리나라도 65곳의 농가들이 가입되어 있다. ‘내 마음의 외갓집’ 역시 우프코리아 소속으로, 우프를 통해 세계 각국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 영월을 찾는다.
  “그동안 우리 집에 다녀간 우퍼(자원봉사자)가 족히 100명은 될 거예요. 우퍼가 오면 상부상조하니 서로 좋아요. 자급자족을 위한 농가 살림에는 일이 끝도 없거든요. 우리는 부족한 노동력이 해결되어 편하고, 우퍼는 크게 부담 없는 농작업을 체험하듯 도우며 머물다 가니 좋지요.”

임소현 씨와 우퍼들이 함께 만두를 빚는 모습. 그동안 100여 명의 우퍼가 ‘내 마음의 외갓집’을 찾았다. ⓒ 김영미
임소현 씨와 우퍼들이 함께 만두를 빚는 모습. ⓒ 김영미
임소현 씨가 뉴요커 우퍼와 송편을 빚고 있다. ⓒ김영미
임소현 씨가 뉴요커 우퍼와 송편을 빚고 있다. ⓒ김영미

  처음에는 우퍼들과 의사소통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영미 씨는 남편이 외국인 우퍼에게 손짓과 발짓을 동원해 화장실을 알려주던 기억을 되살리며 웃었다.
  “외국 친구에게 (주변을 둘러보며) ‘쉬~ 에브리웨어(everywhere)(힘주는 시늉하며) ‘응~ 히어(here)’ 하면서 생태화장실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부부에게는 전 세계에 100명이 넘는 친구가 생겼다.

사람이 모이는 ‘내 마음의 외갓집’
  부부는 농사 외에도 B&B(Bed and Breakfast) 형태의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지인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쌈짓돈을 건네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별도의 숙박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이 직접 만든 손님방은 화려하진 않아도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고, 정갈한 침구와 가구가 마련되어 있다.

정원 앞에 위치한 민박동의 이름은 ‘꽃뜨락채’다.
정원 앞에 위치한 민박동의 이름은 ‘꽃뜨락채’다.

아담하면서 정갈하게 꾸며진 민박동. 김영미 씨의 섬세함이 돋보인다.아담하면서 정갈하게 꾸며진 민박동. 김영미 씨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이래 보여도 침대랑 이불이랑 다 고급이에요. 시골에 와서 어쩔 수 없이 겪는 불편함을 빼고는, 편안하게 쉬어간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김영미 씨는 지난 5월 대산해외농업연수를 통해 묵었던 독일 농가 민박을 떠올렸다.
  “독일에서 농가 민박을 운영하는 부부가 허름한 집에 살면서 손님 숙소는 정성을 다해 꾸며 놓은 걸 보고 감동을 느꼈어요. 우리랑 비슷한 거죠.”
  부부는 돈보다 사람을 번다. 두 사람은 손님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게 새로운 식구食口를 맞아들인다.
  그리고 팜파티를 준비하거나, 꽃꽂이 원데이클래스, 요가교실 등 농촌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캡션부부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려져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퍼 전용 숙소의 벽면에는 그동안 ‘내 마음의 외갓집’에 다녀간 우퍼들이 써놓은 메모가 가득하다.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같은 짧은 글귀들 사이에 있는, 꽤 긴 편지가 눈에 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찾아온 영월.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이곳에 사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있는 동안 식구처럼 정겹게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찾아올 마음 속의 외갓집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뜻을 나누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며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부부에 공감한 이들이 계속해서 ‘내 마음의 외갓집’ 문을 두드린다.

글·사진 이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