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하는 삶은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안철환  바람들이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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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淸明이다.

모든 사물이 맑고 밝은때, 절기 이름처럼 날씨가 풀리고 하늘이 차츰 맑아졌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말처럼 이때에는 땅에 무얼 심어도 다 잘되는 시기인만큼 씨 뿌리는 농부의 손길이 바빠진다. 바람들이농장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것이 밭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틀밭’.
“이 틀밭이 중요해요. 흙에 있는 좋은 양분, 거름이 폭우가 오면 다 쓸려가거든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틀밭을 세우는 거에요.”
목발 짚은 농부, 안철환 씨(53, 바람들이농장 대표, 2012년 연구비 수혜자)의 이야기다.

바람들이농장의 틀밭은 거름의 유실을 막아준다.
바람들이농장의 틀밭은 거름의 유실을 막아준다.
안철환 대표의 간단하고 작은 아이디어가 발전하여 실용화 가능한 퇴비화 설비로 발전했다.
안철환 대표의 간단하고 작은 아이디어가 발전하여 실용화 가능한
퇴비화 설비로 발전했다.

자연 친환경 농업, 쉽게, 편하게 내 방식으로
바람들이농장은 1,600평은 50여 명의 회원들이 가꾸고 있고, 나머지 400평은 안철환 씨가 벼와 마늘, 양파, 수수, 팥, 콩, 쪽파와 대파,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키워 자급한다. 건강한 농산물을 기르기 위해 거름을 투입해 영양분을 공급하고, 틀밭으로 거름 유실을 막고 있다. 얼마나 귀한 거름을 주길래 틀밭까지 만들어 빗물에 흘러내려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농장 주변 곳곳에 놓인 ‘고무통’이 눈에 들어왔다. 고무통을 열어보니 음식물 찌꺼기가 들어 있다.
“이게 다 음식물 찌꺼기에요. 지금 더 삭아야해요. 우리는 라면 국물도 그냥 안 버리고 여기에 넣어요. 봐요. 냄새 전혀 안 나죠?”
안 씨는 버려지는 음식물 찌꺼기를 활용해 ‘퇴비’를 만들고, 자원으로 되돌린다.
“저는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농사를 짓는데 기계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죠.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이미 조상들이 순환의 원리에 의해 환경에 맞게 농사짓는 것이 나를 위한 농법이었어요. 일본에서는 소력小力 농법이라고 해요. 힘을 적게 쓰는 거죠.”
안 씨는 자신에게 맞는 농사 방법을 터득하고 몸에 익혔다. 그것은 손으로 땅을 일구는 전통농업 방식이었다. 밭을 갈지 않고, 멀칭하지 않고, 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사람의 손이 덜 가면서도 작물은 건강하게 키웠다. 이러한 안 대표의 노력은 직접 거름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텀블러식 퇴비통. 에너지를 적게 투입하며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텀블러식 퇴비통. 에너지를 적게 투입하며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작은 아이디어, 발명이 아닌 발견에서 시작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음식물 자체에 염분이 많은 것도 문제이고, 적정한 수분 관리와 탄소와 질소의 비율을 맞추기 어렵다.
발효에는 공기를 좋아하는 호기발효, 반대로 공기를 싫어하는 혐기발효가 있는데 김치, 된장, 젓
갈 등은 대표적인 혐기발효를 활용한 것이다. 음식물 찌꺼기의 퇴비화는 호기발효 원리를 이용한다.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톱밥, 왕겨 등을 넣어 공극(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 사이
에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발효시키는 것이다.
“음식물과 똥, 오줌이 좋은 거름이 된다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농사짓는 것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이걸 현장에서 직접 보고 알게 되면서, 어떻게 적용할까 궁리를 한 거죠.”
‘잿간식 뒷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농장에서였다.
“깨끗했어요. 인분에 재 대신 왕겨를 뿌려 한쪽에 쌓아두었죠. 이 왕겨로 공극을 만들어내고, 호기 발효를 시키고 있었던 거죠. 바로 이거구나 싶었어요.”
인분과 음식물 찌꺼기, 그리고 톱밥과 왕겨 등을 섞으면, 호기발효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해낸 것. 3개월이면 퇴비화가 가능했다. 새로운 발명이 아닌, 발견에서 시작한 연구였다.
발로 뛰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경험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안철환 씨는 직접 퇴비 만들기에 나선다. 음식물 찌꺼기와 왕겨, 톱밥 등을 섞어 두엄을 만들어 비닐로 덮어두었던 것. 하지만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안이 따뜻하고 먹을 게 있으니까 쥐가 많이 오는 거예요. 이 쥐를 잡아먹으려고 뱀도 오고요. 그
리고 삽으로 뒤섞기에도 힘들었어요. 자세가 안 나오니까요. 삽으로 어정쩡하게 퍼 올려야했죠. 이게 숙제였죠.”
이때 찾아낸 것이 바로 커다란 고무통이었다. 공기를 잘 통하게 하기 위해 바닥과 벽면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음식물 찌꺼기와 톱밥, 왕겨 등을 넣었다. 한두 번 뒤섞어 주는 일도 한결 간편해졌다.
농장 곳곳에 고무통들이 세워졌다. 바람들이농장의 회원들이 함께 음식물 찌꺼기와 똥오줌을 모아왔다. 이렇게 귀한 거름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철환 씨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저비용·저 투입, 에너지 자립의 자연 순환식 퇴비화 실현은 지
난 2012년,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실용연구지원사업의 연구과제로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체계를 단단히 했고, 또한 퇴비화 설비로서의 실용성과 활용성을 인정받았다.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순환하며, 땅의 힘을 키우는 농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안 대표가 추구하는 것이다.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순환하며, 땅의 힘을 키우는 농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안 대표가 추구하는 것이다.

발전하는 무동력 자원 순환식 퇴비화 설비
“원리가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니까 특허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예요. 이 자체로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거죠. 제품화를 하려면 뭔가 장치가 필요했어요.”
배기관에 구멍을 내서 고무통 중앙에 꽂아 ‘수직 유공관’을 만들었다. 내용물을 섞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기가 들어갔다. 그리고 에너지 투입을 줄일 수 있도록 퇴비화 설비 통이 스스로 굴러가며 내용물이 섞일 수 있는 텀블러식도 실현시켰다. 이 텀블러식 퇴비 통은 제품화되어 지난해 200개가 생산되어 농장과 학교, 옥상 텃밭 등 60군데에 판매되었다. 특히, 학교에서는 급식 잔반을 처리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올해는 50여 군데 150개가 판매될예정이다. 스크루식(Screw, 회전축 끝에 나선면을 이룬 금속 날개가 있어 회전을 하면서 내용물을 밀어내는 방식) 퇴비통도 구상 중이다. 에너지 투입 없이 자연력으로 좀 더 쉽게, 편하게, 힘을 덜 들이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름에서 시작해 다시 씨앗으로 순환하는 삶, 자급하는 삶
요즘 자투리 공간에 텃밭을 가꾸고, 베란다에 상자 텃밭을 키우며 도시 농부를 자처하는 도시민들이 늘고. 귀농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안철환 씨가 대표로 있는 텃밭보급소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도시농부학교를 연다.
“외부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순환하는 삶, 자급하는 삶을 살아야 위기에 빠지지 않아요. 내가 굶어죽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떳떳하게 살 수 있죠.”
거름에서 시작해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의 삶을 살고, 또 그렇게 먹을거리를 길러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의 오랜 본능이다. 모든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하며, 현대사회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땅을 가꾸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누리면서 생명을 순환시키는 세상은 위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안철환 씨는 목발을 짚고 일어나, 선낫으로 풀을 벤다. 풀빛이 청명하다.

글·사진 /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