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당숙모 친정 밭까지 고구마를 심어 일이 몇 배나 늘었다. 우리 밭은 풀이 있어도 그만이지만 그 밭에 풀이 있는 것은 흉이 될 것 같았다. 3,000평의 밭을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하게 하느라 하루하루 매달려 살았다.
그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내가 초보 농부로 보이는지 이래라저래라 훈수가 참 많았다. 바닷물 길어다 주면 순이 죽어 웃자라는 걸 막아준다, 억제제를 주면 순이 못 자란다….
약 치고 바닷물 주면 쉽다는 걸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억제제를 주면 순과 고구마는 작고 예쁜 상품이 되겠지만, 고구마 먹을 때 농약도 같이 먹어야 한다. 또 바닷물은 고구마를 오래 저장을 못 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린 것이다.
그렇게 가꾼 고구마를 드디어 캘 때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선 한 포기 캐 보았다. 신기하게도 팔뚝만 한 것이 여섯 개하고 작은 것이 일곱 개 나왔다. 동글동글하니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길쭉하니 쓸 만하다. 그 넓은 밭을 새벽부터 밤늦도록 혼자서 가꾼 지난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이다.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목소리 높여가며 자랑을 했다.
“이것 좀 봐, 당신 도움 없이도 고구마를 이렇게 잘 키웠다구. 내일부터 캐야겠어.”
“어이구, 그 밭은 왜 해가지고 사서 고생을 한담.”
칭찬은커녕 타박만 돌아온다. 고구마 캘 때가 되도록 밭에 가본 적이 없는 남편이다.
다음 날, 그런 사람을 앞세워 밭에 나갔다. 남편은 경운기 쟁기를 고구마 고랑에 대고 시동을 걸
었다.
그런데 아뿔싸! 몇 발짝 가기도 전에 반 토막 난 고구마들이 나뒹굴었다. 길쭉하게 생긴 고구마들이 쟁기 날에 잘려버린 것이다. 나는 팔로 ×자 표시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이랑 끝까지 가고야 만다.
하지만 남편도 허연 속살을 보이며 뒹구는 고구마를 보니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안되겠다 싶은지
기선씨에게 전화를 건다.
“아우야. 너네 고구마 캐는 전용 쟁기 샀지? 그 쟁기 좋은지 내가 먼저 좀 써 보자.”
남편은 부리나케 가서 차에 쟁기를 싣고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처참했다. 고구마가 다 으깨지는 것이다. 나는 또 손을 들어 ×자 표시를 하
며 소리를 질렀다.
“아 참, 이게 뭐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3,000평을 여자 혼자서 봄부터 무더운 여름 지나 가을까지 가꾼 고구마밭
이다. 수확 때에 이르러 전에 없이 남자가 등장해 일을 망쳐 놓으니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을 억누르고 깨진 고구마를 주워 모으고 있는데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그 고구마 집에 가져가면 쓰지도 못하는데 이 아주머니들 다 나눠 드리고 가자.”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무리 기계를 실험해 본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망쳐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놓고 내 고구마를 나눠 주자니. 그동안 힘들고 지친 것이 한 번에 몰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옆 밭 할아버지가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남편에게 호통을 치셨다.
“저 사람 마누라 잡겠네. 아 이 사람아, 자네 집사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 다 지은 농사 한순간에 망치다니. 에이 나쁜 사람, 그만 캐게!”
그러자 남편은 누가 하라 했느냐면서 오히려 큰소리다. 남들에게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남들에게 잘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남편 잘 만났다며 부러워들 한다. 저렇게 자상한 남편과 사니 얼마나 행복하냐는 것이다.
“그래요? 그럼 사흘만 빌려 줄 테니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가지세요. 가능하면 반품은 안 했으면 좋겠네요.”
※필자 박희경: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으로 충남 당진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고구마, 고추, 쌀을 재배하고 있다. 당진사랑 명예기자로 활동하며 지역 소식 전달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