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농부라니, 농사지어 생활을 해결하는 직업농이나 부농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짓고 싶은 농사는 두 사람 분량의 자급 수준이다. 땅을 파고, 거름을 넣고, 씨앗을 넣고, 수확하는 과정을 손수 할 수 있으면 된다. 고추 오이 가지 열무 등 제 철 채소를 가꿔먹고, 한번 심으면 몇 해씩 두고두고 돋아나는 부추나 더덕 도라지 당귀 취나물을 조금씩 소유하면 대만족이다. 도라지와 더덕은 꽃이 예쁘고 당귀와 취는 향이 좋아서 꽃도 보고, 향기도 맡고, 식용을 겸하니 일석삼조다. 일찍이 공자님께서도 3가지 좋은 직업에‘농사’를 추천했으니 작물을 가꾸는 보람이 뛰어난 까닭이리라.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지어먹으면 원산지나 푸드 마일리지를 염려할 필요도 없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FTA도 끄떡없다.
많은 땅을 거느리고 수십 년 농촌에 살면서도 나는 아직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푸성귀전량을 사다 먹었다. 채소 한 잎 가꿔 먹을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얘기다.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게 마련일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돼지를 너무 열심히 키운 탓인 것 같다. 평생을 돼지농장 안주인으로 오로지 돼지 키우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또 집안 대소사의 결정권자가 아닌 며느리로 오래 살았던 것도 이유일법하다. 옛날 며느리들은(내가 어느새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른들의 분부를 고분고분 따라야지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밭을 일구는 일, 모종을 고르는 일도 권한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들일 잘 하는 사람, 채소를 잘 키우는 사람이 무척 부럽다. 손수 키운 배추나 무를 한 아름씩 안고 가는 마을 아낙들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바늘귀보다 작은 씨앗이 아름드리 배추가 되고 무가 되는 것을 보면 농사꾼은 마술사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씨앗 하나가 천 배 만 배 불어나 사람을 먹여 살리니 마술 중에도 대단한 마술 아닌가!
다 늦은 나이에 꿈이 이루어진 것은 그나마 축복이다. 돼지농장 안주인과 며느리의 삶에서 벗어나 마침내 농부農婦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요즘 농부수업에 열심이다. 초자농부에게는 귀와 눈이 보배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스승이요 교과서다. 길 가다가도 멈춰 서서 밭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뭘 심나 보고, 고랑을 얼마나 깊고 넓게 파는지 살핀다. 주민자치센터에 요가 배우러 가서도 중요한 농사정보를 얻는다.
“호박씨는 몇 개씩 심어요?”하고 누가 말을 꺼내자“두 알, 세 알”하고 여기저기서 대답들이 돌아온다. 이어누군가가 고추의 연작 피해 사례를 제보하자, 옆자리의 부인이“땅 같이 미련한 게 없다니까”하고 큰소리로 말한다. 아니 땅이 위대하다는 말은 들었어도 땅이 미련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해마다 거름을 듬뿍 넣었더니연작피해 같은 것은 있지도 않더란다. 땅은 미련해서 거름을 주면 준만큼 내놓더라나. ‘땅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래서 나는 들일 잘 하는 사람, 채소를 잘 키우는 사람이 무척 부럽다. 손수 키운 배추나 무를 한 아름씩 안고 가는 마을 아낙들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바늘귀보다 작은 씨앗이 아름드리 배추가 되고 무가 되는 것을 보면 농사꾼은 마술사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씨앗 하나가 천 배 만 배 불어나 사람을 먹여 살리니 마술 중에도 대단한 마술 아닌가!
흐벅지게 넣어봐라. 사람인들 안 먹고 사나? 농사는 사람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녀. 해와 비바람이 도우고 멧돼지와 노루 산비둘기도 도와야 된다고 ….’해박하고 깊이 있는 농사철학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렇다.‘ 흐벅지게거름을넣는것’바로이것이었다. 몇해째내농사가부실했던원인은! 감탄하며귀동냥에 빠져 있다가 늦은 밥 먹고 새벽 장에 가는 장꾼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지각이다! 부랴부랴 텃밭에 거름을 넣는다. 철없는 주인 만나 허기졌을 흙에게 고봉밥 먹이듯‘흐벅지게’넣는다. 돼지농장에서 날라 온 거름이다. 거름이야 무진장 있으니 이랑이 넘치도록 넣는다. 거름을 뿌린 밭에서는 며칠째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흙은 더럽고냄새나는 것을 먹고서도 어쩜 저렇게 영양가 있고 어여쁜 것들을 키워내는가? 신기하고 아름다운 흙의 꿈, 나도 그런 농부가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