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깃든 낙농인,
이선애 김호기 부부를 만나다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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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만나러 가는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목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농촌의 일상 중에서 10월의 분주함은 짐작하기 쉽고, 수확 후의 논에서 볏짚을 직접 말아 소먹이를 준비하는 축산농가의 피곤한 하루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창 좋은 날이라 체험신청으로 도시 가족들의 방문이 줄을 서리라는 예상도 했다.
그러나 안팎으로 바쁠 농가의 모습을 짐작하면서도 웃는 표정이 유난히 좋은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천안시 성남면에 자리한 효덕목장에 다다랐다.

이선애 씨가 만든 가우다(Gouda) 치즈
이선애 씨가 만든 가우다(Gouda) 치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목장은 체험객들로 가득했다. 마당 한편 송아지 우유주기 체험방에 앉아있는 어린 젖소와 주변의 오리와 강아지가 정겹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선애 씨의 안내로 체험장에서 우유로 아이스크림 만들기 체험을 끝낸 가족들이 마당으로 나왔고, 남편 김호기 씨는 150마력 트랙터에 달린 체험마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안전사항과 관련한 몇 가지 당부를 전달하고는 경쾌한 경적을 울리며 출발을 했다.
“남편이 어젯밤에도 젖은 논에서 짚을 말다가 기계 호스가 터져서 고생을 했어요. 요새는 새벽까지 일해야 해요. 내일 비가 온다니 마음이 더 바쁜데 꼭 이럴 때 기계까지 탈이 나서….”

소에게 먹일 풀작업이 한창이다.
소에게 먹일 풀작업이 한창이다.

목장, 그리고 유가공의 첫발
“1986년 어미 소 2마리와 송아지 2마리로 처음 목장을 시작했어요. 남편이 어릴 때부터 집에서 젖 짜는 일을 돕기는 했지만,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때였어요. 1995년에 논산에서 시집을 왔을 때 시어머님께서는 절대로 젖 짜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그게 여자의 일이 된다고….”
현재 착유우 60마리를 포함해서 총 80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이선애 씨는 치즈, 요구르트 등 유가공과 체험교육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일만 했어요. 부모님 상중에도 젖은 짜야 하잖아요. 지금은 헬퍼 제도가 있어서 여건도 좋아지고, 일하는 젊은 태국인 부부도 있어서 도움이 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다 손으로 해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눈사태로 축사가 폭삭 주저앉은 적도 있고, 구제역이다 브루셀라다 전염병이 돌면 잠도 제대로 못자요. 특히 이런 체험농장을 하는 경우에는 메르스나 세월호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타격이 워낙 크니까 힘이 들 수밖에 없었죠. 최근에는 우유와 관련한 왜곡보도가 많아서 마음이 많이 상했어요.”

농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이선애 대표는 천상 농민이다.
농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이선애 대표는 천상 농민이다.

천직이 되어 버린 농업,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철학
그래도 이선애 씨는 한 번도 농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고 여긴다고 했다. 자녀 중 누구라도 가업을 잇겠다 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한다. 부부의 다섯 남매 중 농수산대학교를 다니는 둘째 딸 남영은 고창목장에서 실습 중이다.
“처음에는 부모의 영향으로 농업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지금은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일인 것 같아 좋아요. 실습 나가서 기계도 만지고 하는데 잘 다룬다고 자랑하면서 전화도 왔더라고요.”
이선애 대표는 현재 유가공과 관련한 전문 6차 산업에 주목한다. 유제품뿐만 아니라 식생활 전반에 대한 소비자 교육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농업 특히 유기농, 우유와 유제품 관련해서 쉽게 정보를 주려고 해요.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과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교육을 하는 거죠. 당장 학교 교사들도 농업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제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텃밭의 농산물과 결합해서 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것도 해보려고요.”
효덕목장의 대표 김호기 씨, 썬러브치즈를 비롯하여 유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체험농장의 대표 이선애 씨, 상도 많이 받았다. 특히 천안시에서 최고의 농업인에게 주는 ‘2013년 최고농업인상’은 이선애 씨가 최초의 여성 주인공이기도 했다.

가족농과 소농이 행복한 농업을 기대하며
“얼마 전에 축산으로 유명한 일본 북해도를 다녀왔어요. 거기 가서 보고 큰일이다 싶었어요.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낙농정책은 불안하고 오히려 낙농협회나 기업들의 농업 진출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로 가고 있더라고요. 체험농장 등의 6차 산업도 워낙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니 가족농가나 소규모 농가들이 버티겠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제 갓 출발하는 가족목장을 중심으로 체험형 6차 산업을 좀 더 지원하고 밀어줘야 하는데, 큰 법인이나 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농업 예산의 지원이 가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남편 김호기 씨가 목소리를 높인다. 고향을 지키며 4마리 젖소로 처음 농사를 시작하고, 남다른 철학과 고민으로 낙농과 유가공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대를 이어 농촌 현장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자녀의 미래까지 농업에 투자한 농투성이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살아있는 농업 정책이고 가장 현장성이 있는 농촌의 지표다.

김호기·이선애 씨 부부는 남다른 철학과 고민으로 유기낙농업을 이어간다.
김호기·이선애 씨 부부는 남다른 철학과 고민으로 유기낙농업을 이어간다.

체험가족들을 내려주고 배웅하기 직전 기념촬영을 하는 것까지가 김호기 씨의 역할인 듯싶었다. 다른 때 같으면 여유롭게 치즈, 피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모든 체험과정에 참여하여 구수한 입담도 거들 것인데, 요즘은 틈만 나면 트랙터를 몰고 짚을 말기 위해 논으로 나가야 한다.

작업하는 논이 질퍽하다 하는데, 다음날 비가 온다 하는데, 마음이 바쁜데 기계가 고장이 나서 애를 먹인다 하니, 이 모든 상황이 우리네 농업의 현실 같고 농민의 마음 같다. 그런데도 육중한 트랙터를 몰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들녘으로 나가는 김호기 씨, 체험가족들을 돌보는 와중에도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선애 씨의 모습에서 한국 농업의 미래를 본다.
모든 체험이 끝났음에도 부모의 재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 목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경쾌한 모습에서 한국 농촌의 미래를 본다.